주말도 없긴 해...
사회생활 시작 후 10여 년을 쉼 없이 일했다.
물론, 이직을 위해 1~2주 정도의 짧은 휴식은 가져본 적이 있지만,
흔히 말하는 의미의 ‘휴식’을 위해 쉰 적은 없었다.
그렇게 회사에 묶여 있던 중, 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창궐했고, 회사는 휘청거리며 긴축을 시작했다.
처음엔 나보다 윗사람들이 잘려 나갔다.
솔직히 내 이기심은 내가 대상이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연봉이지만 연비가 좋지 않은, 말 그대로 ‘비효율적인’ 윗사람들이 빠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상황이 심각해졌다. "이 정도 직급까지 자른다고?"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들의 부재는 곧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광고는 협업이 필수적이다.
제작 부서 안에서도 서로의 협업이 필요하지만,
특히, 타 부서인 기획과의 협력은 더더욱 중요하다.
기획 부서도 칼바람이 불며 우수수 잘려 나갔다.
말도 안 되는 직급의 친구가 브리프를 해주었고,
당연히 그 내용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처음으로 느끼는 극한의 힘듦이었다.
내 이기심에 퇴사 날짜를 통보하고,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팀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급한 불을 끌 때까지만 있다가 퇴사하겠다 회사와 조율했고,
몇 달 더 다니다 퇴사했다.
퇴사 후 취업 시장이 얼어붙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내 연차와 경력을 원하는 회사들은 꽤 많았다.
하지만 그 자리들 역시 자의든 타의든 누군가 비워서 생긴 자리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느껴졌다.
처음으로 쉬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취업을 멈췄다.
백수로 맞는 평일은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계획이 없다는 것.
주말의 휴일은 반복되니 계획 없이 보내도 아깝지 않았다.
어렵게 얻은 휴가는 하루하루 소중하니, 계획을 세워 꼼꼼히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라도 했다.
P인 나도 그때만큼은 J 흉내를 내며 움직였다.
그러나 백수의 평일은 다르다. 계획이 없다.
백수로 맞이한 첫 달, 나는 무조건 오래 자려고 했다.
처음 사흘 정도는 습관처럼 아침 7시쯤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어 10시쯤 일어났다.
나흘째가 되니 10시를 넘겨 점심때까지 자기도 했다.
'잠자는 게 이렇게나 지겨웠던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만 자는 백수의 하루는 생각보다 무척 빠르다.
점심 즈음에 일어나 첫끼를 먹고 커피 한잔 하러 나가 산책하면 곧 저녁 먹을 시간이다.
하루하루 같은 패턴의 연속이다.
열흘정도 지나자 8시쯤이면 자동으로 눈이 떠졌고,
그 뒤로는 다시 잠들지 않아 하루가 너무 길어지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끊임없이 코로나로 인한 실업 이야기가 나왔고,
재취업 생각은 점점 사라져 갔다.
한 달이 지나자 카드값 청구서가 도착했다.
대출 이자, 통신비, 관리비, 가스비, OTT 구독료 등 고정비용이 빠져나갔다.
거짓말 조금 보태, 나는 집에서 숨만 쉬고 있었는데도 꽤 큰돈이 빠져나갔다.
퇴직금이 들어왔지만, 그 돈은 마치 내 돈 같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꽁돈처럼 느껴졌다.
'퇴직금만 다 쓰고 나서 취업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첫 달을 기준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우와, 그래도 꽤 오래 쉴 수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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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백수의 평일은 계획이 없다.
그래도 코로나라는 통제안에서
즉흥적인 여행도 꽤 다녀왔고,
즉흥적인 소비도 꽤 했다.
그래서 시간은 단축됐다.
벌써 퇴직금으로 쉴 수 있는 마지막 달이다.
하지만 코로나도 이제 끝이 보였다.
무계획의 몇 달은 10여 년 동안 챗바퀴처럼 달려온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돈도, 커리어도, 흔히 말하는 의미의 휴식도 주지 않았다.
언젠가부턴 그저 지루했다.
몇 달을 그렇게 무계획으로 보내고 다시 취업준비를 할 때, 깨달았다.
내게 필요한 '쉼'이란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정말로 지쳐 있었던 건, 사람들 사이에서 1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얽혀있던 관계였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이기심을 억누르는 경우가 많았고,
나 자신을 지키기보다 그들의 일방적인 타협 안에서 살아왔다.
그렇기에, 내가 정말 원했던 휴식은 물리적인 쉼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나 자신을 찾고 회복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였다.
내 이기심을 채우고 싶었던 거다.
쉬는 몇 달 중 그 이기심을 채우는 데는 몇 주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 뒤에 쉬었던 몇 달은 그저 무의미한 시간, 잉여의 휴식일뿐이었다.
진짜 쉼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이기적인 과정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거다.
이기적인 쉼을 통해 나를 다시 찾았고, 이제는 사람들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내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렇게 긴 시간은 필요 없었다.
당신이 지금 '쉼'을 고민하고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서라도 당신에게 필요한 '이기적인 쉼'이 무엇인지
당신의 쉼이 그저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라
이기적인 쉼이길 바라며 이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