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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니엘

이서의 청춘

by 안이서

“스승님, 여기 앉아서 보세요.”

라고 다연이 말했지만, 이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리를 떠났다.

다연은 별 생각 없이 강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강률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다연을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다연은 ‘뭐?’하는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았다. [세포재생으로 영원한 젊음을!]이라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방금 나다니엘이 ‘안이서’라고 했지?”

강률의 질문에 다연이,

“그래? 나 잘 못 들었어.”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스승에게 자리를 청하느라 영상의 뒷부분은 놓쳤었다. 다연은 영상을 앞으로 돌려 놓친 부분을 재생했다.


[안이서, 조만간 봅시다.]


“안이서라고 했어. 설마, 우리 스승님을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

라고 말해 놓고도, 강률은 ‘아니겠지. 절대 그럴 리가 없어.’라는 생각을 하며 배시시 웃었다. 세상에 ‘안이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뿐이겠는가. 강률의 생각에 나다니엘은 과하게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이고, 스승인 이서는 과하게 단출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나다니엘이라는 세계적 거물이 산 구석에서 숨다시피 사는 스승을 알 리가 만무했다.


다연의 생각은 달랐다. 나다니엘이 직접 ‘안이서’를 언급하지 않았는가! 새 행성 ‘노바리스 에테리아’에 동행할 영성 지도자가 ‘안이서’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연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사형, 오늘은 좀 편하게 있어도 될까요? 저 여기 교육생으로 온 후로 하루도 못 쉬었잖아요. 오늘은 프로그램도 없고. 네?”

다연의 한 달 동안 일과를 떠올려 본 강률은 그녀의 말이 맞다고 여겼다.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잘 따라오고 있는 기특한 사제였다. 그러고 보니, 질문도 한 번 없었던 것 같다. 다른 교육생들은

‘제3의 눈이 개발되면 미래가 보이냐?’

‘송과체에 진짜로 신이 있냐?’

‘정수리에 기둥이 박히면 하늘의 뜻을 바로 알 수 있냐?’

‘죽지 않는 몸을 진짜 만들 수 있냐?’

‘스승님은 죽지 않는 몸을 완성했냐?’

‘스승님은 왜 제자들에게 에너지 몸을 보여주지 않는 것인가?’

등등 스승님의 가르침 중 본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엄청났었다. 강률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는 선에서 대답을 성실히 해 주었다.

‘제 3의 눈이 열려도 초능력은 안 생길 수도 있다. 또 사람마다 다르게 초능력이 개발되기도 한다.’

‘옛날 우리 조상님들도 머릿속 안에 신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왕관 차크라가 열린다고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건 아니다. 신의 뜻은 단순하다. 회개하고 양심을 따르는 새 삶을 살라는 것이다.’

‘죽지 않는 몸은 에너지체로 지금 보고 있는 육체와는 성질이 다르다. 스승님은 완성하신 걸로 안다.’

‘그대들의 눈이 뜨이면, 스승님의 에너지체도 보일 것이다.’



‘회개와 새 삶 선원’은 미관을 신경 써서 만든 곳은 아니다. 20년 전 처음 영성 교육을 시작했을 때는, 천로산 아래에 20평 단층 건물 하나만 있었다.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교육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늘었다. 감화를 받은 몇 명은 자기 지역에 선원 분회를 열기도 했다. 덕분에 방문하는 사람이 꾸준히 늘었고, 그때마다 천로산 위로 올라가며 건물을 용도에 맞게 하나씩 세웠다. 산 아래 주차장도 만들고, 중턱을 평평하게 갈아 강당도 지었다. 방문객 숙식관, 직원 생활관도 생겼다. 감탄할 만한 경관은 없지만, 이서에게는 가장 소중한 장소였다. 그녀의 젊음을 갈아서 세운 영성 센터이다.


가장 처음 지었던 20평 남짓의 교육관은 지금 이서의 생활관이 됐다. 이곳에서 잠도 자고, 선원 업무도 보고, 글도 쓴다.

이서는 생활관 벽에 기댄 의자에 앉았다. 뒤통수에 까슬한 시멘트 벽면이 느껴졌다. 젊은 시절 이서의 어설픈 솜씨였다. 울퉁불퉁했지만 시멘트를 다 발랐을 때의 성취감이란!

텅 빈 주차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직접 삽을 들고 땅을 고르던 십여 년 전도 생각났다.

‘내 젊음……’


선원에 집중한 젊음 외에 그녀에게 다른 젊음도 있었던가?

이런, 저런 경로로 나다니엘의 소식을 접할 때가 있었다. 처음 화면으로 그를 보았을 때, 이서 나이 22세였다. 나다니엘은 53세. 나다니엘은 20년 전부터 세포재생술을 받아 외모만 보자면 30대 초반이었다.

시선이 오직 그에게만 박히고, 동공이 커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체온이 올라갔다.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면 그걸 한마디로 ‘반했다’라고 표현하는 거겠지?

화면 속의 나다니엘은 네 번째 부인의 얇은 허리를 감싸며 뺨에 키스를 했다. 네 번째 부인의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간, 나다니엘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 그녀는 모델답게 키가 컸다. 가슴선도 뷰티풀! 어메이징! 판타스틱! 했다. 눈, 코, 입도 시원시원해 웃을 때는 세상을 다 품는 여신 같았다. 나이는 이서와 같았다.

그 때 이서는 자신의 외모를 처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내 얼굴이 사람들 눈에 예쁜 편일까? 키가 너무 작은 건 아닐까? 아, 평가하는 걸 포기했다. 자괴감에 빠질 게 분명한데, 그런 감정 느끼고 싶지 않았다. 자괴감 따위!

이서는 다른 식으로 마음이 아팠다. 나다니엘이 자신을 배신이라도 한 것 마냥 원망스러웠다. 그의 품속에서 웃고 있는 저 여자가 상처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인지 모르겠다. ‘나 미쳤나봐.’라고 할 밖에.

지금은 왜 그랬는지 안다. 참고로, 지금 나다니엘의 아내는 아홉 번 째 여자다. 이름이, ‘말리카’였던가? 나다니엘의 취향은 변하지도 않는지, 지금 아내도 25살의 모델 출신이다.

나다니엘의 아내는 비슷한 키와 몸매를 한 다른 얼굴로 바뀌었지만, 나다니엘의 외모는 30년 동안 똑같았다.

22살이었던 이서는 지금 52살이다. 늙었다. 그는 여전히 젊다.

‘이제……야, 당신도 내가 생각난 건가요?’

이서는 허공에 떠 있는 나다니엘의 환상에게 물었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는 느꼈던 강렬한 끌림, 질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후, 그를 볼 때마다 ‘서로를 얼마나 원했었는지’ 전생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이번 생에는 당신과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이서는 포기가 빠른 사람이다. 처음부터 안 될 일은 내려놓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최대의 효과를 내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해야 하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태어났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 목적이 저 바람둥이와의 연애 놀이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구를 떠나겠다고 하지 않는가! 같은 지구 안에 있어도 만날 가능성이 1%미만 일 텐데, 딴 행성으로 간다면 0%이다.

‘그에게는 행성 개척이 목적인가보다. 내 목적은 뭘까?’

자기 삶에 대한 사색과 고찰이 지금의 이서를 만들었다. 그래서 여전히 아름다운 나다니엘에 비해 세월을 그대로 인정한 자신의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서는 두 손등을 보았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처음으로 신경 쓰였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 지금 여자이고 싶은 거야?’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신 차려.’

그때 검은색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교육생은 단체로 받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온다. 더구나 그 날은 교육 일정이 없었다. 개인 자동차가 이곳에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차는 이서와 거리가 가장 가까운 칸에 멈췄다.

‘길을 잘못 들었나? 나한테 길을 물으려고 이 앞에 세운 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차는 되돌아 나가지 않았다. 유리는 검게 코팅이 돼 있어 안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차 안에서는 밖이 훤히 보였다. 이서의 시선이 나다니엘 근처를 오갔다. 나다니엘은 순수한 눈으로 차 안을 꿰뚫어 보려는 이서를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그렇게 바라만 보았다. 나다니엘의 콧등이 주름을 잡더니 막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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