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서, 조만간 봅시다.
[참회와 새 삶 선원]에는 텔레비전이 딱 한 대 있다. 식당 겸 휴게실 구석에 있다. 영성 지도자들은 텔레비전을 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빴다. 텔레비전은 식사를 준비해 주는 아주머니를 위한 직원 복지라고 할 수 있다. 그 날은 오랜만에 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날이었다. 얼마 만에 누려보는 휴식인지, 다른 지도자들은 단체로 읍내로 마실을 갔다. 때마침 읍내에 5일장이 열렸다니 다들 신이 났다.
주방 아주머니는 방에 들어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텔레비전 앞에는 강률과 다연뿐이었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찍고 있는 화면인데, 주변에는 보는 것만으로 먼지 향이 콧속으로 밀려올 것 같은 황토색 땅과 지독하게 파란 하늘 말고는 없었다. 여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30분을 달려야 ‘에덴스아크’개발 센터가 나옵니다.」
기자의 차가 30분 달렸나 보다. 멀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물들과 거대한 우주선, 우주선을 받친 발사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우주선은 삼 개월 후, 삼천 명이 넘는 사람을 태우고 우주로 날아갈 것이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자태와 웅장한 크기에 압도된다.
“실제로 보면 입이 떡 벌어지겠지?”
다연이 화면에서 고개도 안 돌리고 물었다. 강률은 다연의 혼잣말이라고 여기고 대답하지 않았다.
기자는 차에서 내려 우주선을 배경으로 섰다.
「외부 침입이나 테러를 막기 위해 ‘에덴스아크’개발사는 센터에서 반경 1킬로미터를 빈 공간으로 닦아놓았습니다. 몸을 숨길만한 곳이 전혀 없기 때문에, 누군가 침입한다면 위성에서 바로 움직임을 포착합니다. 그럼에도, 테러단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연구 직원으로 잠입해 5년 이상을 근무하다, 오늘 새벽 2시 40분 경 에덴스아크를 폭파하려 시도했습니다.」
기자의 말끝에 CCTV영상이 자료 화면으로 나왔다. 두 명의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몸을 낮춰 복도를 지나가는 화면이었다. 다른 CCTV에서는 주차장에서 차 트렁크를 열어 가방을 꺼내는 모습도 찍혀 있었다.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CCTV는 그 내용물을 클로즈업했다.
「인공 지능이 삽입된 카메라가 내용물이 폭탄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자동으로 센터의 경비실과 지역 경찰서에 위험 신호가 울렸습니다. 테러범들은 차로 이동을 하면 소음 때문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걸어서 우주선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영상 속에서 테러범들은 우주선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출동한 수십 명의 경비들에게 둘러싸인 것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 자료화면은 범행 시행 전에 녹화한 그들의 신앙과 나다니엘 위트모어에 대한 신랄한 비판 영상이었다.
“세상에 신은 한 분 뿐이며, 우리는 그 분의 권능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자는 세상의 어떤 타락보다도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는 신의 전사이다. 신에 대적하는 자는 우리의 적이다! 나다니엘 위트모어가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을 개척하려는 이유는 그곳에서 가장 높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이다. 스스로 신이 되려는 오만함이 에덴스아크라는 거대한 관을 만든 것이다. 우주선은 새 행성에 도착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는 웜홀을 만들 기술이 있다고 하지만, 센터에서 연구했던 우리들도 그 방법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다니엘 위트모어는 우리 지구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만 선별했다. 그는 4년 후면 새 행성 ‘노바리스 에테리아’에 도착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우리는 믿지 않는다. 오직 신의 권위에 대적하려는 야망에 휩싸인 과대망상증 환자이다. 미친놈이다!
지구의 소중한 인력 삼천 명이 우주에서 죽도록 방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우주선을 폭파할 것이다. 아마 우리는 폭발 때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 신이 허락한 영광의 죽음이다!
산다고 해도 체포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성스러운 임무를 기쁜 마음으로 행할 것이다. 신을 위한 희생의 보상은 천국이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다니엘 위트모어의 목숨을 직접 끊고 싶지만, 우리에게 그 영광까지는 없다. 형제, 자매들이여! 나다니엘 위트모어를 처단하는 영광은 그대들에게 맡긴다!”
자료 영상이 끝나자 화면은 다시 우주선 앞에 서 있는 기자를 비추었다. 언제 왔는지 나다니엘 위트모어도 옆에 서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의 백인 남자다. 잘생겼다. 몸매도 좋고 키도 컸다. 190센티미터가 넘으니 옆에 선 기자가 하이힐을 신고 있어도 고개를 쳐들어야 했다. 나다니엘은 잘 빠진 양복을 입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옆의 기자는 두 눈에 선망과 유혹의 빛을 담아 나다니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 세계 테러단체들이…, 흠! 나다니엘,”
친밀한 투로 말을 하던 기자의 뺨이 홍조를 띠더니,
“네이드라고 불러도 될까요?”
라고 물었다. 나다니엘은 카메라에서 눈도 떼지 않고 “노.”라고 짧게 대답했다. 기자의 뺨에 설레임으로 물들었던 홍조가 새빨개지며 얼굴 전체로 퍼졌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다니엘은 카메라 화면 말고는 아무 것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기자도 나름 노련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마음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질문을 했다.
“전 세계 테러단체들이 위트모어 회장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두렵지는 않은가요?”
그제야 나다니엘은 기자를 보았다. 그는 사뭇 심각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살인 위협이 심각한 게 아니었다. 신의 뜻을 따른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살인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두렵지 않아요. 나는 개척가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진짜 신의 뜻에 반한다면, 그 전능하신 신이 나를 막겠지요. 전능하신 그 분이 알아서 하실 텐데, 굳이 인간들이 나설 필요가 있나요? 일이 진행이 안 된다면 나도 신의 뜻인가 보다 생각하고 이 계획을 접었을 겁니다. 하지만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고 있어요. 새 행성, 웜홀, 우수한 인재들. 가능성이 열려 있는데 왜 도전을 안 하겠어요?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지요.”
뉴스를 보던 다연이 강률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참, 대단한 사람이긴 해. 그치? 늙지 않는 첫 번째 인간인 것도 모자라 새 행성에서 새 문명을 만들겠다고 위험천만한 도전을 하고 있잖아?”
그러다 열린 문 밖에 서서 화면을 보고 있는 스승, 안이서를 보았다. 고정된 이서의 눈동자에는 다른 배경은 흐릿한 채 나다니엘만 선명하게 맺혀 있었다.
화면 속의 나다니엘은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안이서, 조만간 봅시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기자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위트모어 회장님, 방금 한 말이 무슨 의미죠?”
나다니엘은 뚱해진 얼굴로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의미 없어요. 한 사람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