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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게돈

by 안이서

식당을 나온 다연은 아래로 내려가는 이서를 발견했다. 세상을 음미하는 듯, 여기 저기 시선을 주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바빠서였겠지만, 다연은 이서를 이렇게 뚫어져라 살펴 본 적이 없었다. 그날이 처음이었다. 다연의 눈에는 세상도 이서를 음미하는 것 같았다. 세상이 이서를 품듯, 이서가 세상을 포용하듯 경계 없이 서로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다연의 심장이 갑자기 찡~ 하게 울렸다. 묘한 울림이었다. 다연은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다.

‘혹시 그 제 3의 눈이라는 게 열린 건가? 왜 세상이 현실적으로 안 보이고 환상처럼 보이지?’

그때 다연의 ‘폰인브레인’이 울렸다. 뇌 속에 송수신기를 삽입하는 기술이 일반화 된 건 십여 년 전이다. 생각으로 대화를 할 수 있고, 영상 자료도 뇌에 직접 수신된다.

다연이 ‘수신’이라고 생각했더니 바로 남자의 목소리가 뇌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뉴스, 봤냐? 거기 선원 원장 이름이 ‘안이서’ 맞지?]

아르마게돈 한국 지부의 대장이었다. 다연은 생각으로 대답했다.

[이름은 맞지.]

아르마게돈은 일신교를 따르는 극우 종교 테러 단체였다. 처음에는 세가 미약했다. 거슬리는 손가락 거스러미처럼 신경 쓰였지만, 대수롭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다 나다니엘 위트모어가 새 행성 이주 계획을 발표했다.

“이주민을 모집합니다. 최우선 자격 조건은 종교인이 아니어야 합니다. 우리는 새 행성에서 종교가 없는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이 선언으로 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성을 냈다. “후레자식같으니!”

나다니엘의 계획에 대한 반발로 아르마게돈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 세계에 안 퍼진 곳이 없을 정도로 위력이 대단해졌다.

나다니엘이 종교지도자는 배척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공허함이라는 본능을 가진 존재들이다. 삶이 본인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좌절하고 허망함에 빠지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그럴 때 영적 허기를 채워줄 무언가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나다니엘은 알고 있었다.

아르마게돈은 나다니엘이 종교 지도자가 아닌 영성 지도자를 알아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아르마게돈은 ‘내 안에 신이 있다. 내 안의 신을 깨워 하나가 돼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영성계의 가르침을 ‘악’이라 했다. 그래서 알려진 영성 센터에 첩자를 들여보냈다. [참회와 새 삶 선원]에 들어온 다연처럼.


[아는 거 있으면 빨리 빨리 말해. 그래야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

대장의 채근에 다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눈은 이서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서는 주차장 옆의 자기 숙소 앞 벤치에 앉았다.

다연은 식당에서의 상황을 복기해 보았다. ‘곧 보자’는 나다니엘의 말에 이서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뭐랄까……, ‘그때 안이서의 표정이 어땠더라?’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걸 알았다는 표정. 맞아! 바로 그랬었다.

[안이서가 언제 미국으로 날아간다거나, 나다니엘이 한국으로 방문한다거나 하는 그런 얘기 없어?]

대장이 물었다.

[없었어. 아직 아무 얘기도 없어. 아~씨, 난 안이서랑 말도 별로 섞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정보를 캐지?]

선원에서 마주치는 일이야 다반사였지만, 제자가 스승에게 쉽게 말 걸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른 사형들에게 스승은 어렵고, 존경하는 대상이었다. 안이서가 그런 분위기를 유도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다연도 알고 있다. 삶에 대한 탐구, 인간에 대한 이해, 신과 함께 하는 이서의 삶이 그녀를 거대한 존재로 빚어냈다.

다연은 ‘스승님, 여기 앉아서 보세요.’ 라고 말한 당시가 생각났다. 어려우면서도 편안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도 할 수 있었다.

[여기 사형은 나다니엘이 안이서랑 아는 사이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더라고. 사실 나도 긴가민가 하기하는 해. 나다니엘이 이곳과 연관됐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전혀 없었거든.]

거기까지 말한 다연은 주차장으로 들어와 멈춘 검은 차를 주시했다. 탱크만한 차였는데,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디자인이었다. ‘누가 저런 차를 타는 걸까?’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끊어.]

다연은 그렇게 말했다. 머릿속 잡음이 사라지자 차와 차를 바라보는 이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한참 동안 차도 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연은 성미가 꽤나 급한 사람이라 이런 여백 같은 시간은 견디기 힘들다. 차 안의 존재를 직접 확인해 볼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그제야 차 문이 열렸다.

거대한 키, 섹시함으로 꽉 차오른 몸매를 슈트로 절제한 백인 남자가 내렸다.

“나다니엘……. 나다니엘 위트모어. 와우! 그의 실물을 내가 보게 될 줄이야.”

때마침 강률이 식당을 나왔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

강률은 다연의 시선을 쫓았다. 그곳에 스승 안이서와 나다니엘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나다니엘이 스승을 꼭 끌어안았다. 아담한 스승의 상체가 나다니엘의 몸에 감싸였다. 상상도 못한 장면에 강률은 충격을 받았다.

“나다니엘 맞지? 뉴스 인터뷰 끝나자마자 달려 왔나봐.”

기다리는 답이 안 들리자 다연이 강률을 보았다. 얼굴에 붉은 기가 올라왔다. 주먹 쥔 손은 바르르 떨렸다. 강률의 그런 모습은 다연의 눈에는 과해 보였다.

만약 이서와 나다니엘이 오래 전부터 우정을 나누던 지인이라 치자. 몇 년 만에 절친을 만났다면 저렇게 꼭 끌어안고 반가워 할 수도 있다. 다연은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고 상정했다. 도대체 강률의 눈에 저들은 어떤 관계로 보이기에 이리도 당황하는 걸까? 평생 남자를 만나지 않았던 스승이 외간 남자와 끌어안고 있는 모습? 아니면, 나다니엘이 스승님과 만나선 안 되는 존재라서? 그건 아니다. 뉴스를 보며 강률은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스승님하고 나다니엘이 아는 사이였나봐.”

다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감정은 금방 가라앉았는지 평정심을 찾은 표정이었다. 강률은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숨이 조금 찰 정도로 빠르게 걸으니 곧 이서와 나다니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서는 강률에게 나다니엘을 소개했다.

“내 귀한 친구야. 정말 오랜 만에 만나서 할 얘기가 많을 것 같구나. 오늘 일과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 줘.”

그리고 나다니엘에게 강률을 소개했다.

“내가 아끼는 제자예요.”

강률은 나다니엘에게 눈을 떼지 않을 정도로 강한 관심을 드러냈지만, 나다니엘은 강률에게 그닥 관심 있어 보이지 않았다. 강률은 이서에게 쏠린 그의 시선을 잠시라도 거두고 싶은 마음에

“강률이라고 합니다!”

하며 악수를 청했다. 이서는 슬쩍 강률을 쳐다봤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평소의 겸손한 태도는 어디로 가고, 저런 당돌한 표정과 말투가 나왔을까? 처음 보는 제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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