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니엘의 환생
강률의 환영회는 난장판으로 끝났다.
그는 말리카를 향해 한 치의 자비도 없이 쏘아붙였다.
“당신 같은 사람이 영생을 얻는다면, 이 땅은 곧 악으로 물들겠지. 성적 타락, 끝없는 거짓말, 나르시시즘으로 가득한 인간아! 아니, 당신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도 없어. 당신을 감싸고 있는 저 역겨운 기운을 봐.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어. 당신 같은 존재는, 있어서는 안 돼.”
말리카의 두 눈이 커졌다. 공포와 절망이 그녀의 얼굴 위로 번졌다. 그때 그녀가 받은 상처는 단순한 모욕이 아니었다. 영혼 깊숙이 파고드는 실재(實在)의 상처였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는 더 안쓰럽게 보였다. 누구는 강률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미리 걸러내려 한다고 여겼다. 자기가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만 에너지체를 배양하도록 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몇몇은 강률에게 야유를 보냈다.
승강기 안은 숨 막힐 만큼 조용했다. 엘라라와 강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땡—.’ 13층에 도착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문이 열리자,
묵직한 첼로 소리가 그들을 맞았다.
어딘가에서 쇼팽의 녹턴 20번이 흐르고 있었다.
그 음을 듣는 순간, 엘라라의 귀가 움찔했다. 나다니엘이 생전에 즐겨 듣던 곡이었다. 엘라라는 그 음악이 늘 청승맞고 쓸쓸하다며 싫어했었다.
강률은 그녀의 에너지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감지했다.
엘라라는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며 승강기 밖으로 나섰다. 두 사람은 소리의 근원을 찾아 복도를 걸었다.
문 하나가 살짝 열려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첼로의 음색이 복도 공기를 휘감으며 퍼져 나갔다. 그 음은 어둠 속을 천천히 떠다니며, 오래된 기억을 깨우는 듯했다. 엘라라는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막으려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그 방은 나다니엘의 방이었다.
30년 넘게 잠겨 있던, 아무도 들어갈 수 없던 그 방. 지금은 열려 있었다.
‘설마…… 나다니엘의 영혼이 돌아온 걸까.’
엘라라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령이라도 좋았다.
죽기 전, 그를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만약 그의 영혼이 여기에 있다면, 꼭 묻고 싶었다.
“저승에는 당신 곁에 내가 설 자리가 있나요?”
그들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의자 끝에 엉덩이를 반만 걸친 채, 두 다리를 책상 위로 꼬고 음악에 취해 있는 유인원 한 마리가 있었다.
엘라라는 숨을 삼켰다. 너무도 행복해 보여 놀라는 소리를 내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 침묵을 깨뜨린 건 강률이었다.
“아갸!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카를로스는 어디 있지?”
아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나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였다.
음악의 여운을 즐기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엘라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는 낯설고도 익숙했다.
“설마……”
그녀는 이내 급히 다가가 아갸의 얼굴을 응시했다.
“정말…… 네가 나다니엘이야?”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은 아갸는 책상에서 다리를 내리고 방을 둘러보았다. 혼란스러운 눈빛이 허공을 헤맸다. 그리고 강률을 보자, 겁에 질린 듯 그의 뒤로 숨어버렸다.
엘라라는 여전히 아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이 방은 나다니엘의 지문이 닿아야만 열려. 그리고 지금 흘러나오는 이 음악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곡이야.”
아갸가 강률의 뒤로 숨은 건, 엘라라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부터 빌려온 감각 속에 있었다.
그 ‘다른 존재’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재생했고, 의자에 앉아 도파민의 잔잔한 물결을 누렸다. 그리고 엘라라가 들어왔을 때, 마치 오랜만에 재회한 듯 ‘그동안 잘 있었어?’라는 의미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의식이 현실로 돌아오자, 아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 겁에 질린 채 강률의 뒤로 숨은 것이다.
엘라라는 조심스럽게 아갸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얘야. 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난 그저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
그녀는 천천히 아갸의 손을 잡아 강률의 뒤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강률이 따라나서려 하자, 엘라라가 손바닥을 들어 그를 막았다.
“이 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어. 잠시만 기다려.”
문이 닫혔다.
‘찰칵.’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엘라라는 아갸의 손을 이끌어 문손잡이를 잡게 했다.
‘찰칵!’
잠김이 풀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그리고 문이 천천히, 스르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