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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리스 에테리아

영생은 중요하지 않다

by 안이서

‘영생’에는 큰 책임감이 따른다는 사실에는 에덴스 아크 주민 모두가 동의했다.

한때, 그러니까 죽지 않는 몸을 가졌다고 믿었을 때, 인간들은 신의 심판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여겼었다.

그 결과 방탕함과 무책임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타락시켰다.

타락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타락한 인간에게 신이 벌을 준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고 했던가.

그런 과정을 겪으며 인간들은 절제와 책임의 숭고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죽지 않는 몸, 에너지체를 배양하기로 한 사람들은 인간적인 부분을 내려놓고 한 차원 높은 성품을 택해야만 한다고 정리가 됐다.


[내가 이 수행을 하는 이유는 인류와 우주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인류와 우주에 해를 끼친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

나는 이 맹세에 내 영혼을 바친다.]


에너지체를 배양하겠다고 지원한 사람들 모두가 수행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강률이 그들의 기(氣)를 확인했다.

기의 색상이 어둡거나 혼탁한 자들은 가차 없이 걸러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건, 아갸가 나다니엘의 환생일 수도 있다는 소문 덕에

영생에 대한 갈망을 스스로 내려놓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삶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어. 그래서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설렘도 없지.

솔직히 이 상태로 더 살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지루함뿐이지.”

지루함을 말하는 엘라라의 눈동자에는, 그러나 희미한 희망이 번졌다.

“진짜로 환생이 있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리고 그녀는 수줍은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내가 이번 생에 해보지 못한 경험은 아이를 품는 것 하나였어. 난… 엄마가 되고 싶어.”


[신인류 프로젝트]로 많은 사람들이 부모의 꿈을 갖게 됐다.

이주민 대다수에게 ‘이번 생에 유일하게 해보지 못한 것’은, 자신의 자궁에서 아이가 자라고 출산·양육하는 일이었다.

자궁을 제공하겠다는 여자들, 정자를 제공하고 아빠로서 양육에 힘쓰고 싶다는 남자들의 지원이 넘쳐났다.

에덴스 아크에 새 세계에 대한 열망과 희망의 에너지가 넘실댔다. 좋은 일이다.


강률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 고르기에 집중하고 있는 열두 명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우주를 수호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모인 존재들이었다.

자기 안의 신성을 밝히겠다는 열망만이 그들의 전부였다.

익숙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천사’라고나 할까.

시간이 지나 노바리스 에테리아에 인류가 번성하게 되면,

강률은 물론 이 열두 명 또한 신인류에게 천사 같은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이 미치는 순간, 강률은 강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런 구조를 어디선가 이미 겪은 듯한, 낯설지 않은 감각.

‘미래의 예지인가? 아니면, 기억 속에 지워진 과거의 잔상인가?’

우주는 웬만한 정보는 강률의 송과체를 통해 즉시 전달해 준다.

하지만, 어떤 정보들은 누가 일부러 차단한 것처럼 단절되어 있었다.

‘아갸가 나다니엘의 환생인가?’라는 질문에도, ‘스승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라는 물음에도

우주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 기시감은 과거의 경험인가, 미래의 조짐인가.’

……


엘라라는 아갸가 나다니엘의 환생이라 믿었다. 강률은 그 믿음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우주가 직접 대답해 준 적은 없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우주에는 ‘우연’이란 법칙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갸와의 예상 못한 만남, 같은 유인원종보다 강률에게 더 깊은 유대감을 맺은 일, 그리고 그가 에덴스 아크로 돌아가야 한다고 종용하던 순간까지—

모든 것은 아갸의 의식이 아닌, 그녀의 무의식이 이끈 필연의 흐름이었다.

그래서 강률은 나다니엘의 환생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세라이아는?

스승님의 환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률의 가슴을 스쳤다.

아갸를 나다니엘의 방에서 발견한 그날 이후, 둘은 마치 한 몸처럼 붙어 다녔다.

지난 4년간 강률이 쏟은 돌봄과 교감이 무색하게, 아갸는 이제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며칠 동안 강률은 허무와 배신의 에너지에 휩싸여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갸에게 느낀 섭섭함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세라이아를 향해 솟구치는 낯선 감정이었다.

그의 눈빛 하나, 손끝의 움직임 하나에도 이서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 강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

그 후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어 본 적이 없었다.

이서가 그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삶의 기준이었다.

따스함, 배려, 순수한 미소, 통찰, 단정한 태도……

그녀가 세운 그 기준이 너무 높아서, 아무리 화려한 외모라도 강률의 눈에는 닿지 않았다.

그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을 지켜 왔다.

세라이아가 정말로 이서의 환생이라면—

‘이렇게까지 무심하면 안 되잖아…….’

그때도 그랬다.

차가운 우주 한가운데, 그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갔던 그녀.

그 외로움과 참담함은 아무도 모른다.

세라이아가 이서라면, 전생의 인연이 이끄는 법칙에 따라

한 번쯤은 그에게 다가와 미소라도 지었어야 했다.

하지만 세라이아는 언제나 아갸 곁에만 머물렀다.

그는 아갸를 피붙이처럼 아꼈고, 강률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강률은 마침내 우주의 신에게 물었다.

‘왜죠? 스승님은 왜 저를 그렇게 쉽게 떠나셨죠?

제자에 대한 애정이 손톱만큼도 없었던 건가요?

아갸가 나다니엘의 환생이라면, 제 직감이 맞는다면—

세라이아는 스승님의 환생입니까? 왜 대답하지 않으시죠?’


우주는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강률은 점점 더 깊은 우울의 공간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자신이 끝없는 우주 속에 홀로 서 있는 별 하나가 된 것 같았다.

그리움과 외로움만이 남았다.

‘지금까지 혼자였는데,

앞으로도 혼자이지 않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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