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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리스 에테리아

피어나는 감정

by 안이서

피어나는 감정


“강률 지도자님이 하이브리드인간 계획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저야 백 번 찬성이지요. 영성지능이 높은 개체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자기 후손의 어머니가 엘라라였으면 한다고 했어요.”


며칠 전 도리안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엘라라의 마음속에 이상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엄마가 되어보고 싶다’는 말은 그저 흘려버린 농담 같은 소리였다.

비록 외모는 마흔 중반쯤으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백 살을 훌쩍 넘었다. 과연 그런 몸을 생물학적으로 ‘여자’라 할 수 있을까. 이 자궁에서 생명이 자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바람은 실현될 리 없는 넋두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강률은, 그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뤄주려 하는 것이다.

‘날, 이렇게까지 배려해 준 사람이 있었나?’

아주 먼 기억이지만(벌써 7~80년 전이다) 나다니엘도 엘라라에게 한없이 친절했었다. 비록,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닌 것 같아.”

라고 말했지만, 그는 이혼 후에도 엘라라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여전히 사랑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에 대한 예의이고 책임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고마움과 섭섭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마 강률도 그런 배려일 거야. 아이를 가져 본 적 없지만 엄마가 되고픈 한 여인에 대한 배려.’

생각은 그리하지만, 가슴은 울컥하며 울음이 신음소리처럼 흘렀다.


도리안에게 이야기를 듣고 보름이 지났건만, 강률은 여전히 정자를 기증하지 않았다.

아무리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녀가 엄마가 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백 살이 넘은 여인의 자궁을 젊은 시절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 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강률의 유전자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가 도저히 용기를 내지 못하겠다면,

‘내가 도울 수밖에.’


엘라라는 강률의 방문 앞에서 깊은 숨을 내쉬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신이지만, 남자와 마지막으로 몸을 섞은 게 언제였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몸은 기억 못해도 괜찮다. 지금 필요한 건 그녀의 입과 손뿐이다.

자전거를 오래 두었다가 다시 타듯, 손끝이 알아서 움직일 것이다.

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강률은 자신의 몸을 단련 중이었다.

몸 중 단 한 곳, 남자의 쾌감을 쏟아내는 그곳이었다.

몽정은 두 번 있었다. 처음엔 당황했고, 두 번째는 짧은 순간 천국에 닿은 듯 황홀했다. 그러나 그 두 번은 모두 무의식의 일이었다.

그는 노바리스 에테리아에 온 이후로 자위를 한 적이 없었다.

영성체인 자신이 육체의 욕망을 느낀다는 건 어불성설이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인류의 생명을 잇기 위해선, 그 욕망이 필요했다.


실험실의 좁은 공간에서 혼자 흥분해야 하는 장면이 머리에 그려졌다.

명색이 영성 지도자인데, 너무 빨리 끝나면 민망할 것이고, 너무 오래 걸리면 자신조차 지쳐 버릴 것이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했다.

손끝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몸은 곧 반응을 멈췄다.

억지로 끌어올린 흥분이 금세 식어버렸다.

마치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라고, 몸이 스스로의 욕망을 거부하는 듯했다.

‘사정할 수 있다는 게…… 착각이었을까.’

그가 이불을 적셨던 것은 정액이 아니라 소변이었을지도 모른다.

낙담하던 그 때,

노크 소리.

심장이 놀라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른 이성을 찾은 강률은 반사적으로 정신을 집중해 옷을 만들어냈다. 에너지의 파동이 그의 알몸을 감쌌다.


숨을 가다듬고 문을 열자, 엘라라가 서 있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 반은 장난기가 섞인 관능적인 미소를 지은 채 강률을 바라보았다.

땋아 내린 머리, 눈가의 건조한 주름, 잔잔하고 따뜻한 미소. 강률의 모든 것을 다 받아줄 수 있을 것처럼 깊은 회갈색의 눈동자.

머릿속은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생각이 어딘가에 자꾸 걸려 넘어졌다. 그러다 그녀가 아름답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생각이 홀연히 일어났다.

강률은 방금까지 자신이 몰두했던 극히 개인적인 행위를 알아채기라도 할까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방금 실패했던 육체의 욕망이 갑자기 꿈틀거렸다.

죽은 욕망을 키워 줄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다. 눈앞의 사람이 엘라라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지혜롭고 따뜻한 에너지 속에 뜬금없이 날아오는 장난기들 앞에서 설렜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무의식이 사랑하는 사람이 엘라라였고,

그때부터(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 엘라라였다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강률을 덮친 것이다.


두 사람의 눈이 서로를 담았을 때 신묘하면서도 진지한 분위기가 번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동공이 확대되며 흔들렸다.

엘라라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공간에 열기가 들어차며 두 사람을 휘어감았다.

둘 다 당황했지만 자연의 법칙처럼 스스럼없기도 했다.

“날…… 원하는구나.”

엘라라의 말에 강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엘라라의 손을 잡았고 두 사람은 밀물에 밀리듯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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