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리스 에테리아

중심에서 밀려난 자들

by 안이서

중심에서 밀려난 자들


비행선에서 내린 야미와 렉스, 쇼이는 쿠크리로 거대한 잎들을 베며 한참이나 걸어왔다. 날이 선 잎맥이 잘려 나갈 때마다 습한 공기가 갈라졌다. 어릴 땐 정글에 나올 때마다 깔깔대며 할 얘기들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요즘은 부루퉁한 침묵이 수다를 대신했다.

새 인류에 대한 기대, 부모가 된다는 설렘, 우주에 책임을 지겠다는 에너지체 수련자들.

쇼이는 자궁이 미약해 엄마가 될 수 없었고, 세 사람 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우주 수호대에도 거부당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에덴스 아크의 희망 그 자체였다.

지금 그들은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었다. 도리어 에덴스 아크 사회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정글의 끝에는 벼랑이었고, 한 15미터 아래에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셋은 벼랑 끝에 앉았다.

렉스가 오른팔을 주무르며 말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요즘은 풀베기도 버거워.”

렉스와 야미는 동갑이고, 쇼이는 그들보다 두 살 아래다. 십대 시절 한 6개월 간, 야미와 렉스는 쇼이를 두고 라이벌 관계이기도 했다.

“난 너희 둘 다 싫다고! 꺼지라고! 내 마음 속엔 세라이아 뿐이라고.”

하며 앙탈을 부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세 사람은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가 됐다.

벼랑 아래쪽에 작은 동굴이 보였다. 몇몇 유인원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야미는 발치에 있던 돌을 집어 들었다. 아무 말 없이 어린 유인원의 머리 쪽으로 던졌다.

돌은 빗나가고 놀란 유인원들이 위를 올려보고 팔을 휘두르며 “아갸, 아갸갸” 소리를 질렀다.

야미가 벌떡 일어나 다시 돌을 던지며 소리쳤다.

“뭐! 이 원숭이들아! 기분 나빠? 기분 나쁘면 올라와서 까불어 보든가!”

그리곤 쿠크리를 허공에 휘둘렀다. 날이 햇빛을 받아 번뜩였다.

꺼림칙한 에너지를 느낀 유인원들은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야미도 아래에 침을 뱉고는 씩씩거리며 중얼거렸다.

“저것들은 죽여도, 죽여도 어디서 저렇게들 기어 나와.”

렉스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맨날 그 짓거리만 하나봐. 크큭…….”


뒤쪽에서 서루는 조용히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숨이 한 번 길게 새어 나왔다.

‘인간성은 전진만 하는 게 아니었어.’

나다니엘이었을 때, 그는 이주민을 선발하며 지성과 감성, 양심을 중요하게 보았다. 책임 때문에 함께한 이들도 있었지만, 다수는 신중히 골랐다.

‘그들의 자손들이 어떤 유전자를 갖고 태어날 지까지 생각했어야 했나?’

하지만, 그것은 창조주 신의 영역이다.

저들의 악함은 ‘교정’이라는 개념이 닿지 않는 종류였다.

서루는 생각했다.

‘이들의 사악함은 달과 닮았다.’

서루의 생각을 읽은 세라이아가 답했다.

‘달의 에너지 유전자를 이어받은 자손들이야.’

서루도 달의 혼이 불살라지고 새 삶을 시작하게 됐다는 걸 알고 있다. 서루는 세 사람을 보며 물었다.

‘신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달이 저지른 결과를 책임지도록 하지 않고.’

세라이아도 같은 의문을 품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신은 아무런 정보도 내놓지 않았다.

신은 자신이 창조한 것은 잊지 않는다. 숨길 뿐이다.

에너지체들은 신이 허락한 정도까지만 우주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 이상은 정보를 악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라이아가 대답했다.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깊은 뜻이 있겠지.’


쇼이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어보며 말했다.

“누가 우릴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느낌이 이상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길게 빼고 정글을 살폈다. 그 순간 서루와 눈이 마주쳐, 서루는 흠칫 놀랐다. 그러나 쇼이의 시선은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른 곳으로 미끄러졌다.

“있긴 뭐가 있어.”

야미가 짜증 섞인 말투로 면박을 주자, 쇼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러게… 아무것도 없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야미는 쿠크리로 땅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요즘 들어 매일 반복되는 말이었다. 렉스와 쇼이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동물과 인간을 교배한 도리안은 미친놈이고,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를 괴생명체를 뱃속에 품은 린다는 잡것이고,

영생을 얻을 인간을 선별하는 강률은 쌍것이며,

스스로를 우주 수호대라 부르는 놈들은 유치뽕짝한 것들이고,

매일 유인원과 함께 지내는 세라이아는 망할 것이고,

신인류의 어머니라는 아갸는 죽일 것이었다.

같은 말을 반복할수록, 야미와 렉스, 쇼이 세 사람의 분노는 점점 더 단단해졌다.

다른 인간들의 앞길에는 희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 앞에 놓인 것은 오직 절망뿐이었다.

“안 받아들이면 어쩔 건데?”

렉스가 이미 앞날을 포기한 사람처럼 물었다.

‘모르겠다.’

야미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다시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는—어떻게 해야 이 화를 조금이라도 풀 수 있을까.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몰라.”

쇼이가 허공에 보이지 않는 탑을 쌓듯,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야미와 렉스가 동시에 그를 돌아보았다.

현실로 돌아온 쇼이의 눈빛이 번뜩였다.

“생각해봐. 우리가 영생을 하지는 못해도, 죽을 날은 까마득하게 멀어.”

그는 점점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인간들의 지능이 우리 정도라면—종처럼 부릴 수도 있을 거야.”

쇼이는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저것들은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하잖아. 그래서 우리가 다스릴 수 없는 거고.”

그녀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하지만 지능만 있다면? 난 그들을 내 마음대로 부릴 거야. 요리도 시키고, 청소도 시키고, 내 목욕도 시키고.”

웃음을 참지 못한 듯 킥킥대며 덧붙였다.

“일을 제대로 못 하면—혼내줘야지.”

그리고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신나지 않아?”


그 말에 서루의 에너지체는 경악으로 날이 섰다. 세라이아가 서루의 에너지를 진정시켰다.

그 옛날 지구에서 서루의 세계에서 인간들은 모두 같았다. 어느 날 인간과 다른 존재들이 나타났다. 세라이아는 인간과 자신들의 근본이 같다고 했지만, 달은 인간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했다.

“너희는 미개하고, 우리는 고귀해.”

달의 말이 되새김질하듯 서루의 마음에 올라왔다.

나다니엘의 몸으로 꿈꿨던 것은 평등한 세상이었다. 돈으로, 사상으로, 권력으로, 물리적 힘으로 혹은 종교적 교리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억압하지 않는 그런 세상.

‘그 꿈은 불가능한 걸까?’

서루의 에너지체가 검붉게 물들어갔다. 세라이아가 서루의 에너지체를 다독여 검붉은 감정을 밀어냈다.

‘분별을 완화시켜 가는 게 이성과 영성을 성장시키는 거야. 아무런 고난이 없다면 배울 것도 없어.’

세라이아의 말에 서루는 아픈 미소를 지었다.


“꿈도 야무지다! 우리랑 지능이 같은데 네가 시키는 걸 걔들이 왜 하겠냐?”

지금까지 에덴스 아크는 평등한 사회였다. 강률이 우주 수호대를 선별하면서 보여 준 수용과 거절이 이들의 부모 세대에게는 지구에서 겪었던 자연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야미, 렉스, 쇼이 같은 우주 세대에게는 생소한 충격을 주었다. ‘분리, 구분, 구별, 차별’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리고 얻은 깨달음은

“우리는 순수 인간이고, 걔들은 반은 동물이잖아. 우리와는 달라. 같아질 수가 없어. 지능이 같다고 해도 우리보다 아래인 존재들야. 그러니까 당연히 우리말을 따라야지.”

쇼이의 말은 ‘강률이 힘이 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이 그의 말을 수용’해야 하듯, 하이브리드 인간은 순수한 인간들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논리였다.

듣고 있던 야미와 렉스는

어……. 그럴 듯 했다.


렉스는 엉덩이의 흙을 털며 일어났다.

“내려가는 길 없나?”

이왕 나온 김에 사냥이라도 하고 가야 하루를 낭비하지 않은 느낌이 들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야미는 쿠크리를 칼집에 넣으며 왔던 정글 길로 들어갔다.

“그냥 가자. 귀찮다.”

이젠 저 따위 유인원 사냥으로는 쾌감이 채워지지 않았다. 의미 없이 힘만 낭비하는 일일 뿐이었다. 저것들의 두려움에 잠식된 눈이나, 힘도 못 쓰는 반항에 더 이상 도파민이 터지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자극이 필요했다. 그래야 이 패배감에서 벗어나는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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