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리스 에테리아

새 생명

by 안이서

에너지(정보)


강률과 수행자들은 보기에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 차를 타고 이동했다. 에덴스 아크에서 서쪽으로 100Km 정도 가니 폭포가 보였다. 그 주변으로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었다. 사이사이 사람이 가부좌를 틀 정도로 큰 바위도 보였다. 우거진 가지와 나뭇잎으로 빛이 가려진 곳의 바위에서는 오색의 형광빛이 나왔다. 은은한 폭포 소리와 새 소리, 선선한 바람, 바람에 잎이 쓸리는 소리가 자연의 에너지와 어우러져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수행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모두 차에서 내려 강률 주위로 모였다.

“오늘은 우주의 에너지와 자신의 에너지를 조화롭게 하는 수련을 할 겁니다. 일단 각자 편한 자리를 찾아서 단전호흡을 하세요. 하다보면 정수리에 있는 백회에서 에너지가 들어오는 게 느껴질 겁니다. 그때 자신의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여 봅니다. 자신의 에너지와 우주의 에너지가 어우러지는 것을 느끼면 몸은 자연스럽게 에너지의 흐름을 타게 될 겁니다.”


수행자들은 흩어져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시점을 자신의 콧등에 두고 호흡을 시작했다.

강률의 눈에는 그들의 에너지가 다 보인다. 단전에 모인 선홍색 에너지가 많이들 자라 있었다. 그들 중 카를로스의 에너지는 두 배가 컸다. 조금만 더 하면 임계점을 넘어 불의 기운이 상승하며 막힌 혈들이 뚫릴 것이다.

강률은 자신이 처음 수행하던 때가 생각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에너지가 몸 안에서 도는 것을 느꼈을 때 얼마나 신기하고 신나던지.

강률의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슴을 짓누르던 엘라라를 대충 위로하고 나온 것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강률은 그녀의 단전 부위에서 에너지가 뭉쳐 있는 것을 보았었다. 꽤나 단단한 에너지였다. 수행만 열심히 해 준다면 그녀도 몇 년 안에 에너지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체를 만들면 육체는 죽어도 엘라라의 영혼은 에너지체에 머물며 영원히 강률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 있는 데, 왜 죽음을 생각하는 거지?’

강률의 관심이 엘라라에게 향하자 엘라라의 감정 에너지가 포착됐다. 그녀는 여전히 불안해 하고 있었다.



새 생명?


진찰실 안에는 온도가 아니라 기운이 먼저 차갑게 느껴졌다.

에어컨 바람은 직접 닿지 않는데도, 공기가 얇게 식어 피부 위를 미끄러지는 듯했다. 벽은 지나치게 깨끗했고, 흰색은 따뜻함을 품기엔 너무 무표정했다. 형광등 불빛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을 만큼 균일했지만, 그 균일함이 오히려 숨 쉴 틈을 줄였다.

의사의 책상 위에는 정돈된 서류와 반짝이는 금속 도구들이 각도를 맞춰 놓여 있었고, 그 질서정연함 속에서 사람의 체온은 잠시 통계나 수치로 환원되는 것 같았다. 시계 초침 소리는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 고요를 쪼개며 시간을 재촉했다.


엘라라의 눈에 보이는 진찰실은 냉랭함 속에 공허가 꽉 들어찬 것 같았다.

본인은 죽은 후 자신의 육체를 보지 못하겠지만,

죽은 몸의 느낌은 지금 이 진찰실과 비슷할 것 같았다.

“내 삶이 얼마나 남은 건지 알고 싶어.”

엘라라의 설명이 끝나자 도리안의 손가락 위에서 한없이 원을 그리며 회전하던 펜이 멈췄다. 도리안은 펜을 책상 위에 던지듯 놓고 팔짱을 끼며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골똘한 표정이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도리안은 이마를 살짝 찡그린 후 뒤로 젖혔던 상체를 다시 앞으로 내밀어 엘라라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엘라라의 증상……, 왜 린다의 임신 초기 증상과 똑같은 거죠?”

그 말에 엘라라는 기도 안 찬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번 웃어보였다. 희망이라고는 없는 서글픈 웃음이었다.

“도리안, 지금 난 농담할 기분이 전혀 아니에요.”

도리안도 진지한 표정을 풀지 않고 대꾸했다.

“저 역시 농담 아니에요.”

엘라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 밖을 바라보았다.

강률과 함께한 이후로 자신이 얼마나 삶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 죽음이 얼마나 두려운지

엘라라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의사인 도리안에게조차.

그래서 그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얼굴을 숨겼다.

“일단 전신 MRI로 스캔해 보죠.”

도리안이 말했다.

그 말에 침착을 유지하던 엘라라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MRI 스캔이면, 10초 안에 모든 증상이 드러날 것이다.

‘그냥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살다 가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어릴 적 지구에서 그녀의 친척 아저씨가 의례적인 건강 검진을 받고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얼마 후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진단 받기 전에는 통증도 못 느끼고 일상적인 삶을 살았는데, 진단 후 갑자기 통증을 느끼더라는 얘기도 기억이 났다. 유전자 조작 기술이 일상화가 된 후에야 병으로 죽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지만, 인간의 몸이 그렇게 병에 취약하던 때도 있었다.

‘내가 여기에 왜 온 거지?

위로 받고 싶어서였나?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서?

강률에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죽음을 앞당기려 온 건가?’

엘라라는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검사는, 안 하는 게 좋겠어요.”

진찰실에서 급하게 나가려는 엘라라의 팔을 도리안이 간신히 붙잡았다.

“엘라라, 엘라라. 기다려요.”

지금까지 도리안이 봐 온 엘라라는 이렇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감정을 조절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에게 보이는 행동들은 호르몬 분비에 따라 울고, 웃던 린다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몇 개월 전부터 엘라라와 강률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정을 과시할 인물들도 아니어서, 두 사람의 관계를 여전히 눈치채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처음 도리안이 그 사실을 알아챘을 때, 그는 적잖이 놀랐다.

두 사람 모두 이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들이 의외로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도리안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리카의 콧구멍이 미세하게 벌렁거리는 것을 보았다.

말리카는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존감은 낮은 여자였다. 값비싼 물건이든 사람이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데 쓸 수 있다면 무엇이든 이용했다. 에덴스 아크에서 가장 신비롭고 강한 남자, 강률은 당연히 그녀 곁에서 빛나는 장식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엘라라가 있었다.

게다가 몇 년 만에 돌아온 말리카를, 강률은 사람들 앞에서 조금의 배려도 없이 밀어냈다.

핏줄이 터진 듯 충혈된 말리카의 눈을 바라보며, 도리안은 그녀 안에서 자라나는 증오를 읽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강률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존재였다.

의사이자 과학자인 도리안은 본능처럼 그의 몸을 연구하고 싶어졌지만, 강률의 신체는 이미 정형화된 생물학의 틀 안에 있지 않았다. 관찰도, 측정도 불가능했다.

‘신적인 존재.’

도리안은 속으로 그렇게 정의했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생각이 밀고 올라왔다.

‘신과 사랑을 나눈 여인에게…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엘라라. 나는 의사예요. 이곳의 누구도 아픈 채로 두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MRI를 찍어봐요.”

도리안의 말에 엘라라의 긴장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요즘 너무 감정에 젖어 이성이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전신 MRI 기계에 자신의 몸과, 아직 알 수 없는 미래를 맡겼다.

기계가 작동하자, 스캔 신호가 엘라라의 몸을 빠르게 훑어내려갔다.

도리안은 기계와 연결된 화면에 두 눈을 고정했다.

‘삐입.’

경고음이 울렸다.

엘라라의 자궁 안에 작은 점이 보였다.

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분명했고, 그림자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또렷했다.

자궁 내벽 한가운데, 쌀알보다 작은 형태가 미약한 밝기를 띠며 반응하고 있었다.

도리안은 설정을 바꾸고 해상도를 높였다.

신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화면을 분석하던 인공지능이, 숫자를 띄웠다.

[5주]

도리안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에 억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기적’을 떠올린 적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의심 섞인 상상이었을 뿐이었다. 믿지 않았던 그 단어가, 지금 그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검사가 끝난 엘라라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도리안에게 다가왔다.

도리안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엘라라…….”

목소리에 물기가 스며 있었다. 금방이라도 넘칠 것처럼 흔들리며, 그는 말을 이었다.

“당신 뱃속에 아기가 있어요.

…지금, 5주째예요.”


엘라라는 한참 동안 도리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은 의미를 이루지 못한 채, 귀를 스쳐 지나가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외계어 같기도 했고, 아니면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는 상태인지도 몰랐다.

도리안이 빙그레 웃었다.

“엘라라, 당신은 신의 아이를 가졌어요.”

그제야 비어 있던 공간으로 무언가가 밀려 들어왔다.

마치 떠나 있던 영혼이 한꺼번에 되돌아온 것처럼, 온몸이 충격에 반응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치솟았다. 다리가 풀리며 몸이 뒤로 기울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그녀를 받쳤다.

두 팔이 그녀의 몸을 감싸 안았다.

강률이었다.

그는 엘라라를 꼭 끌어안아 안정을 시키듯 머리에 입을 맞췄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지금 극도로 긴장해 떨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왜 왔어?”

엘라라의 목에서 음이 빗나간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강률은 그녀를 감싸고 있던 팔을 조금 풀어, 몸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당신이 느껴져서.”

엘라라의 몸은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강률은 그녀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웃고 있었지만, 분명 울고 있었다.

엘라라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 임신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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