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리스 에테리아

이별의 직감

by 안이서

이별의 직감


아갸의 이용가치는 다 했다.

아갸의 몸에서 난자를 모두 채취한 뒤로, 인간들의 불편해하는 에너지는 날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아이들이 될 모체가 동물이라는 사실을 매일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제발 안 보였으면.’

그런 마음들이 에덴스 아크 곳곳에 둥둥 떠다녔다.

“이곳을 떠날까?”

세라이아가 물었다.

서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안에서 밀려오는 슬픔은 사람들의 불편한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구에서 처음 세라이아를 만났을 때 겪어야 했던, 다름이 불러오는 서글픔이었다. 어디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난 너와 다른 모습으로 있고 싶지 않아.”

세라이아와 서루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자신들의 육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향한 감정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섰다는 것을. 역겨움, 분노, 그리고 살의까지.

“조만간 그들은 행동으로 옮길 거야.”

서루가 말했다.

세라이아는 서루를 끌어안았다. 두 개의 에너지가 일렁이며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만약 누가 널 해친다면, 난 바로 너를 따라갈 거야.”

그 말에 서루의 에너지가 그녀의 품에서 미세하게 흩어졌다. 환생을 한 사람은 기억이 초기화된다. 그건 세라이아도 마찬가지다.

“넌 여기에 있어. 다시 태어난 나를 찾아줘.”

언제, 어디에서, 누구로 태어날지 알 수 없었지만 세라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에서 나다니엘이 이서를 찾아 헤맸던 것처럼,

“이번엔 내가 널 찾을게.”



수년 전부터 꽃들을 구해 간신히 조합해 낸 향이었다.

앰버와 바닐라, 그리고 대망의 머스크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남자를 유혹할 때 실패가 없었던, 바로 그 향.

다시 생각해 보니 한 명 있었다.

나다니엘.

첫날 밤, 방에 들어온 그는 코끝을 찡그리며 말했다.

“콧구멍이 향으로 막힌 것 같아.”

그리고는 창이란 창을 모조리 열어젖혔다.

어찌나 뻘쭘하던지.

말리카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나다니엘, 나다니엘. 어떤 상황에서건 생각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그 인간을, 이제는 그녀의 인생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말리카는 문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누구?”

“야미요. 오라고 했잖아요.”

문이 열리자, 야미의 앞에는 시스루 가운만 걸친 말리카가 서 있었다. 여전히 아름다웠고, 요염했다. 하지만 섹스라면 이미 넘칠 만큼 한 사이였다. 마음이 동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방에서 흘러나오는 향.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그 향은, 야미의 뇌에 직접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지금 눈앞의 여자, 관능적이지?’

‘그녀를 안으면, 네 욕망이 충족될 것 같지 않아?’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었다.

향이 먼저 들어와 판단을 밀어냈다.

야미는 알 수 있었다.

이미 한 발 늦었다는 것을.

향으로, 뇌가 마비되고 있었다.


관계는 성공적이었다.

말리카는 보통 요구하는 쪽이었다. 이런 식의 극진한 대접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어떤 여자에게서도 받아본 적 없는 종류의 호사였다.

“원하는 게 뭐예요?”

야미가 물었다. 이유 없는 친절일 리 없었다.

“이곳에 있는 유인원 암컷.”

말리카는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말했다.

“그걸 없애줘.”

기껏 원숭이 한 마리 없애달라고 이 모든 짓을 했다고?

야미는 눈가에 의심의 주름을 잡았다.

“불가능해요.”

“왜?”

비릿한 웃음이 치밀어 오르는 걸 삼키며 야미는 대답했다.

“당신의 잘난 아드님이 그 원숭이 옆에 매일 붙어 있잖아요.”

야미의 시선에는 당신도 알고 있잖아라는 말이 실려 있었다.

말리카는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살짝 들췄다.

보안 장벽 너머, 꽃을 구경하는 아갸와 그 옆에 서 있는 세라이아가 보였다. 따뜻한 미소까지.

말리카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원숭이 년이 내 아들을 바보로 만들었어.”

잠시 멈췄다가, 차갑게 덧붙였다.

“난 그런 아들 둔 적 없어.”

몸을 돌린 말리카의 눈이 야미를 꿰뚫었다.

야미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원숭이 하나 없애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을? 그것도 수많은 여자들이 첫사랑처럼 떠받드는 세라이아를?

말리카가 못돼 먹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당신 아들도 없애 달라는 거예요?”

“그 아이는 인간의 존엄을 땅에 떨어뜨렸어.”

말리카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난 그런 존재가 내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 둘 다 없어졌으면 좋겠어.”

말리카에게 세라이아는, 수십 년 전 자존심에 모욕을 안긴 ‘안이서’의 환생일 뿐이었다. 하지만 야미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말리카가 다가와, 다시 애무하며 속삭였다.

“너도 영생을 얻고 싶지 않아?”

야미는 그녀를 밀어내고,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물었다.

“당신은 얻었어요?”

말리카는 빙그레 웃었다.

“아직.”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방법은 알아.”

그녀는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네가 일을 제대로 해내면, 내가 알려줄게.”

잠시의 침묵.

그리고 마지막 질문.

“어때? 영원히 살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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