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
파괴
노바리스 에테리아의 밤은,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부터 숨을 쉰다.
해가 지면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이다.
숲의 뿌리와 잎맥, 바위 틈의 이끼와 물가의 미세한 균사들이 낮에는 숨기고 있던 은은한 광을 토해냈다. 형광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어둠을 밀어내기엔 충분한, 생명이 가진 고유한 호흡 같은 빛이다.
강률과 엘라라는 에덴스 아크 근처 숲으로 산책을 나왔다. 두 개의 달에서 흘러내리는 은은한 빛이 두 사람을 감쌌다. 강률과 엘라라의 마음도 포근하게 안아주는 빛이다. 5개월이 지나니 엘라라의 배가 제법 커졌다.
공기는 약간 서늘했지만, 무겁지 않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나뭇잎들은 서로를 스치며 낮은 음으로 울리고, 그 소리는 마치 언어가 되지 못한 기도처럼 숲 전체에 퍼졌다. 벌레의 울음은 규칙 없이 파동처럼 번지며, 밤의 리듬을 만들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엘라라가 강률의 팔짱을 끼며 이 행복이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말했다. 아니면, 너무 과분한 행복이라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강률은 몸이 무거워진 엘라라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대답했다.
“앞으로 더 행복해 질 건데? 우리 아기가 태어나면 지금과는 또 다른 기쁨이 있을 테니까.”
‘아기’라는 단어만 들어도 엘라라는 심장이 짠해지며 설랬다.
“좀 두렵기도 해.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어떤 모습이 좋은 아빠일까?”
엘라라는 걸음을 멈추고 두 손으로 강률의 뺨을 감쌌다. 그리고 그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강률의 몸은 신과 비슷했지만, 그의 두 눈은 소년 같았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눈 속에 공존하고 있다. 엘라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넌 좋은 아빠가 될 거야. 좋지 않은 아빠는 지금 네가 가진 걱정 같은 것도 안 할걸?”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말을 더 했다.
“그냥 우리는 아기에게 사랑 많이 주자. 우리가 줄 수 있는 사랑 다 주자.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때 숲 저쪽에서 새떼들이 무언가에 놀란 듯 푸드득! 날아올랐다. 동시에 ‘살기’가 강률의 온몸에 비수처럼 꽂혔다.
“에덴스 아크로 돌아가. 빨리! 빨리는 가는데 조심해서 가야 돼.”
갑작스러운 일에 엘라라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강률은 엘라라를 안심시키려 미소를 보이고 몇 걸음 배웅했다.
“별 일 아닐 거야. 얼른 들어가.”
엘라라가 에덴스 아크로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한 강률은 시커먼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숲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갸는 먹을 수 있는 풀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잎 끝에 붉은 빛을 내는 식물인데, 세라이아의 입엔 너무 시큼했다. 하지만 아갸와 같은 유인원들은 입이 심심할 때마다 씹었다.
세라이아는 낮은 풀이 깔린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았다. 아갸를 만나기 전까지는 완전하지 못했던 기억을 되찾은 지금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을 보니 이질감이 느껴졌다. 지구의 달은 하나였다.
그의 머릿속에 한명, 한명 떠오르는 얼굴들은 ‘안이서’였을 때의 제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제자였던 강률…….
세라이아는 우주의 신에게 물었다.
‘신의 뜻이 이게 맞습니까? 지금 당신의 뜻대로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달의 에너지 유전자 후손들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우주의 창조주는 세라이아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달의 정보는 지워졌고, 강률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그의 눈에 지금 강률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진정한 사랑도 찾았고, 아이도 생겼다.
세라이아의 입에서 한탄의 숨이 터졌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는 윗몸을 일으켜 아갸의 위치를 확인했다. 몇 개의 입을 뜯어 손에 쥐고 돌아오는 중이다.
지금 서루는 아갸의 몸속에 있지만, 세라이아가 그 영혼을 분리하지 않으면 서루라는 존재는 없다. 아갸는 그냥 아갸일 뿐이다.
“난 죽음을 기다릴 거야. 그러니까 막지 마. 그리고 앞으로는 내 영혼도 분리 하지 마. 저 몸이 죽을 때 당신이 슬퍼할까봐 싫어. 이젠 정을 주지 마.”
서루는 그렇게 단호하게 요청했다.
도대체 서루가 뭘 잘못했기에 신은 서루에게 시련을 주시는 걸까?
달의 질투심에 살해되고, 우주에서 충격으로 급사하고, 이 땅에 인류를 번성시키려 유인원으로 태어났건만, 이용가치가 다한 지금은 자신의 후손이 인간이라는 명예를 지키려 유인원 아갸를 죽이려는 기회만 엿보고 있다.
그런 생각이 올라오니 세라이아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무도 행복한 강률과 너무도 처참한 아갸의 입장이 자꾸 비교가 돼 자꾸 분노가 치밀어 오르려 했다.
세라이아는 야미의 에너지가 오늘 더욱 악해진 것을 느꼈다. 확정된 살의.
야미의 실행을 도와주려 아갸를 데리고 에덴스 아크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왔다.
하지만 아갸는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모른다. 죽음을 기다리는 서루는 아갸의 의식에는 없다.
아갸가 세라이아에게 신나게 뛰어오다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눈동자가 혼란과 공포로 확장됐다.
세라이아는 자신의 뒤에서 다가오는 흥분된 살기를 모른 척하며 일어섰다. 일어서자마자 날카로운 것이 왼쪽 등을 뚫고 심장을 후벼 파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존엄성에 똥을 뿌린 새끼. 난잡하고 더러운 새끼. 너 같은 건 죽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
야미의 외침이 숲을 찌르고 나무 사이사이에 앉아 있던 새들이 놀라 푸드득 날아올랐다.
야미는 쓰러진 세라이아의 몸을 수십 번 더 찌르고 얼어붙은 아갸에게 다가갔다.
세라이아의 육체는 땅에 쓰러졌지만, 그의 에너지체는 자리에 그대로 서서 아갸를 바라보고 있다.
‘불쌍한 아갸. 무서워하지 마.’
야미의 눈에는 세라이아의 에너지체가 보이지 않지만, 아갸는 볼 수 있다. 아갸는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풀을 떨궜다.
야미가 칼을 세우고 아갸에게 달려들 때 강률이 순간적으로 이동해 왔다.
“안 돼!”
라고 외쳤지만, 피비린내에 이성을 잃고 오르가즘에 정복된 야미의 귀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쓰러진 세라이아와 아갸의 몸에서 피가 땅 위에 흐르자 땅의 빛은 안으로 숨어들었다. 생전처음 보는 처참함에 숲은 기겁을 하고 에너지를 정지시켰다. 지독한 적막이 시간도 붙들어 둔 것 같았다.
강률은 보았다. 아갸의 죽은 몸에서, 어여쁜 소녀의 영혼이 빠져나오는 것을. 나다니엘처럼 자존심 강하고 당찬 에너지였다.
피투성이가 된 세라이아의 몸 위에 서 있는 에너지체. 세라이아의 모습이지만,
‘스승님…….’
전생에 강률의 스승인 이서의 에너지도 간직하고 있었다.
세라이아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막지 않았다. 강률도 진실을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강률이 행복한 것이 그에게 과분하다고 여겨서가 아니었다. 그의 에너지 후손이 지금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아야만 한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들이 지구에서 자행한 짓들이 이 땅에서도 똑같이 재현돼선 안 된다.
강률은 과거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확실히 알아야 이 땅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정의다.
강률은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자신의 본모습에 휘청거렸다. 몸의 중심을 잡았을 때 세라이아와 서루는 이미 사라졌다.
에필로그
30년 후……,
강률의 에너지체는 자기만의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30년의 시간은 그에게 모든 감정을 지워갔다. 인간들이 자기도 모르게 빠져 허우적대는 감정들. 그 감정이 자기인 줄 알고 사는 인간들. 하지만, 감정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
강률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채였다. 가끔 이런 생각은 했다.
‘지난 세월 나와 연결이 돼 있던 존재들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질문은 아니다. 어떻게든 지내고들 있겠지.
자주 이 생각도 했다.
‘엘라라……. 엘라라…….’
그때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강률은 자신만의 공간에 침입한 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강률은 멈칫했다.
인간 소녀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두 눈에 강률의 얼굴을 가득 담고 물었다.
“당신이,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요?”
강률의 소멸한 줄 알았던 감정이, 아주 미세하게 반응했다.
‘엘라라.’
그녀에게 다가가려 할 때 소녀는 안 보이는 줄에 획 당겨지듯 그 세계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렇데 [노바리스 에테리아] 1편의 1부가 끝났습니다.
작년 6월부터 시작한 글이니까 8개월 동안의 작업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교정 시작했는데, 그냥 새로 써야할 것 같더라고요.
어쨌거나 완결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스스로 뿌듯해 하고 있습니다. (토닥토닥... 잘해쪄.)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읽어주신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