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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을 왜 보냐구?” -정직하니까

UFC(종합격투기)와 GSP(조르주 생피에르)

by 쓰는사람 명진



“여자가 왜 이런 개싸움을 보니?”


잔혹스포츠라 불리는 UFC(종합격투기)를 보며 러닝머신을 뛰고 있는 내곁으로 친구가 다가와 한마디 던진다. ‘정직하잖아. 배경도, 눈속임도 없이 맨몸에 글러브 하나로 싸우는게. 세상엔 보이지 않는 적이 너무 많은데, 몸뚱이 하나로 싸우는 게 얼마나 정직하냐…’라고 말하려다 피가 튀는 장면으로 흘끗 보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친구에게 플랜 B로 대답했다.


“GSP가 잘생겨서..에헤헤”


조르주 생피에르, 줄여서 GSP로 불린다



취향이란 변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취향의 유효기한은 얼마일까?

이성에 호감이 시작된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의 이상형은 빡빡이+갑빠였다. 어쩌면 흠모했던 오빠가 공부한다며 밀어 버린 짧은 머리에 대한 선망과 동경이었으리라. 나의 첫 기준은 나이와 함께 빡빡이+천재래퍼,빡빡이+카리스마 팀장님으로 대상을 바꿔가며 매혹했고, 마침내 캐나다에서 빡빡이+UFC챔피언에 정착했다.

몬트리올이 배출한 웰터급 전설. 그가 경기를 뛸 때면 시내 분위기는 술렁이고, PUB(맥주집) 마다 함성으로 들끓었다. 나는 격투기에 1도 관심 없었지만, 친구들이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마시며 환호하던 그 열기에 끌렸다. 솔직히 처음엔, 아무나 이겨라 하는 심정으로 봤다.


격투기는 남성성을 상징한다던데, 맷집과 파괴력, 승자와 패자, 핏빛 승리로 뒤섞인 첫 경기는 상상 초월하게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고작 한 라운드에 5분씩 3라운드인 경기였건만 5분 안에도 옥타곤이란 육각 케이지 안에서 사람이 쓰러지고 피가 튀었다.


‘난 UFC랑은 잘 안 맞는 거 같아...’라고 말하려는 순간 흥분한 친구가 TV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Go! GSP Go! Georges St-Pierre!!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인 챔피언전의 GSP가 화면 속에 등장하자, 일순간 PUB(맥주집)이 소란해졌다. 휘파람과 함성소리는 마치 올림픽 경기를 보는듯 들썩였고 이는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스테디움을 연상시켰다. 흥분한 친구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나를 붙잡고 GSP 자랑을 해댄다.


“그거 알아? GSP 어릴 때 괴롭힘을 당했는데 자신을 지키고 싶어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데, 그리고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어느 노숙자가 구걸하길래 돈을 쥐어 줬는데 그게 과거의 그 친구라는 거야. 이게 진짜 복수지. 그렇지 않냐?”


거칠게만 보였던 파이터의 과거에도 괴롭힘이 등장을 한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공감이 일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왕따낙인을 흩뿌리며 나와 아이들을 괴롭히던 어린 시절 누군가의 얼굴도 동시에 떠올랐다. ‘나도 그때부터 격투기를 배울걸 그랬나? 그랬음 나도 지금쯤 멋지게 복수에 성공할 수 있었으려나?’


5분씩 5라운드를 치르는 챔피언전을 보는 내내 혈투가 벌어져도 화기애애한 응원이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간 패한 적이 없는 선수인데, 이번 경기의 결과 또한 답정너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화면 속 챔피언의 노련한 공격이 이어지면 둘러 않은 친구들은 마치 자신이 선수인양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로망인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경기를 보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싸움이라곤 해본 적 없는 순둥이들인데, 지금은 그 누구보다 눈빛을 불태우며 집중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로 정의 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이 살고 있나 보다. 순한 성품 속에 전사의 본능 한 조각을 어딘가 품고 살겠지. 착하게만 살다 지친 날을 위해,

용감하지 못해서 지친 날을 위해

우리는 이기는 편에 서서 대리만족이란 카타르시스를 즐기고 있나보다. 그래서 우린 영화에선 악역보다는 주인공에게, 경기에선 못하는 팀보단 잘하는 팀을 응원하나 보다. UFC 역사상 가장 완벽에 가까운 파이터란 수식을 받는 그가 사랑받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GSP는 승리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겸손해졌다. 기싸움도, 트래시 토크 (상대 도발하기 위해 자극하는 말) 없는 무공해 파이터. 대부분의 선수들이 시합 전엔 입으로 싸우고, 시합 후엔 큰소리로 자랑하지만 그는 늘 단정한 말투로 말했다.

“파이터는 저의 직업일뿐 격투기가 저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싸움을 직업으로 삼은 옛시대 선비 같달까.


GSP, 한국 애칭은 조상필


화려한 옥타곤 위에서도 그는 끝내 겸손했고, 폭력의 중심에서도 자기 무게중심을 지켰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 멋지게 이기는 것보다, 이길수록 겸손해지는 사람이라니. 그는 내가 되고 싶은 두 세계를 넘나드는 자#안테바신의 상징 이었다. 주먹과 품격을 함께 쥔, 정복자이자 구도자.


그때 알았다. 강함이란, 결국 조용한 확신으로 완성된다고. ufc를 통해 나는 싸움을 배운 게 아니라 존중을 배우고 있었다는 걸


그러니, 이다음에 누군가 왜 이런 거친 UFC를 보냐 물으면, 웃으며 대답해 줘야지.


“GSP가 잘생겨서.. 에헤헤...”


우리는 모두 파이터다. 단지 링이 다를 뿐



실제로 본 GSP는 파이터라기 보다 소년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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