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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현 Jan 16. 2024

헨리포드의 등장과 규모의 경제로 쇠락한 전기차

전기차 시장을 죽여버린 컨베이어 벨트

 지난 장에서 1910년도까지만 해도 미국기준으로 전기차가 가솔린차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 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다. 위인이라고 불리는 포드가 아무리 자동차를 많이 찍어 낸다고 해도 얼마나 많이 찍어냈길래 전기차가 죽은 거냐 질문이 나올만한다.

 포드의 주식 기록으로만 본다면 1903년 포드 자동차 창업 당시에 자금을 대었던 주주들은 1919년 주식을 양도할 때 정확히 2500배로 불려서 1만 달러를 투자한 사람은 2500만 달러를 받아갔다.


Model T

 포드라는 사람을 이야기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사업가라는 시선 또한 있는 반면 약간의 편협한 시각을 가져 1등을 빼앗긴 사람이라는 평도 있지만  1913년에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을 만들어 대량 생산의 기틀을 마련하고 1914년에는 기계한테 일자를 빼앗길까 걱정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일당 5달러까지 올린(포드전에는 길게일하고 1~2달러 받는 경우도 흔했다)

 

 사실 산업혁명의 태동을 일으켜 가솔린차의 대중화를 최대로 이루어냈으며 수많은 평가가 교차하지만 포드의 말 중 가장 필자의 마음을 울리는 말은 하나다 "얘야, 그 ‘현대’를 발명한 게 나란다"


  당시의 일화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주자면 핸리포드의 사생아가 "할아버지 이젠 세상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현대(modern)라는 이야기를 말하자" 포드가 한 말이 바로 "얘야, 그 ‘현대’를 발명한 게 나란다"라는 말이다.

이 말 자체가 핸리포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당시 포드의 혁명적인 생산량을 수치적으로 이야기해 주자면 출고시간이 1/8로 줄어들고 생산단가가 30% 감소한 것만 봐도 물리적인 기적을 이루었다. 보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싸게 파는 것만으로는 분명하게 전기차의 수요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가? 내연기관차가 이로만 죽었다는 건 조금 애매해 추가적인 이유를 이야기해 주자면


 사실 지금의 전기차가 확산이 안 되는 이유와 비슷하다는 게 꽤나 유머러스한데 충전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적어  도시외곽에서는 사용이 불가능 정도라는 말이나 왔고 가장 큰 건 결국 배터리 양이 부족해장거리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는 게 주를 이룬다.


그와 동시에 포드의 산업혁이명이 가져오고 미국의 경제가 호황을 이루며 도로가 발달하고 기반산업이 발달한 것이 자연스레 주행거리가 짧아졌다. 한마디로 능력도 있었지만 시대 또한 잘 타고난 위인이다 정도에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다.


그 이후에는 뭐 지루하게 자동차의 표준이 어떤 학회에서 정해지고 계속 발전하고 구조적으로 좋아지고 이런저런 내연기관의 발전이 이루어지다 한인물의 등장으로 또 자동차 시장은 쇼크를 경험하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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