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설이 가까워졌고 아버지란 인간에게 전화가 왔다.
[승현아, 네? 아빠 바빠서 명절엔 못 가니까 네가 나 대신 할머니에게 인사 좀 하고 와라]
[네?]
나는 순간 귀를 의심해야 했다? 지가도망쳐놓고 나보고 친정에 다녀오라고? 순간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아버지 없이 동생하고 둘이 다녀오라고요?]
[어]
솔직히 욕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네가 가기 싫다면 안 가도 된다라고 말씀하셨지만
할머니께서는 그 인간이 도리를 다하지 않는다고 해도 너는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해야하기에 가야 한다.
너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의하기 어려웠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지만 정말 알았다 가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생각하기에 그때 싸우고 안 가는 게 맞았는데,라는 후회를 무척이나 많이 한다.
결국 당일아침 동생을 만나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고 출발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하고 큰아버지가 동생을 데려갔다.
나는 대화가 안 통할걸 알았는지 동생보고 아버지랑 어머니 사이를 다시 좀 연결해 보라는 특명을 내렸단다.
처음으로 돌아가 큰아버지고 뭐고 싸울까 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삼자에게는 너무나도 가볍게 자기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말하는구나 저런 게 어른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도 세상이 싫었다.
정말 가족이란 가치자체가 혐오스럽고 둘째 큰아버지가 왜 가족하고 연을 끊었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그날 다녀와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나보고 x발 다시 보낼 생각하지 말라고 갈 거면 당신 혼자 가라고 화를 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니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양심은 남아 있었던 걸까? 차마 미안하다고 말을 못 했던 거 보니 대충 무슨 상황을 겪어온지 자기도 아는 것이겠지...
동생과 나는 말이 없었고 나는 그냥 외할머니에게 인사드리고 연구실로 갔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도 뭘 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고 게임생각도 안나는 그런 상황이었다.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그냥 랩실에서 워크스테이션으로 실험을 굴렸다.
피시방을 가서 시간을 버리는 것 자체를 나 자신이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냥 그렇게 실험을 굴리며 주변에 말도 못 하는 것들을 씹어 삼키며 내속을 조용하게 태웠다.
주변은 행복하고 아직 대학생인 친구들은 취업 힘내라고 용돈까지 받았다고 단톡방에 이야기를 하며 얼마를 받았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지켜보며 오히려 더 피폐해졌었다.
고독했다. 썼다. 왜 나는 이런 집안에서 태어나서, 왜라는 질문이 무한하게 나를 감쌌고 조용히 실험을 굴리며 혼자 담배를 한 갑을 태운 걸로 기억한다.
은은한 광기로 데이터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다. 아니 돌아버린 걸 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란 게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고 결국은 타인이구나 라는 사실은 깨달은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나에게 아버지는 없는 거다 그리고 말하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몇 달 후, 그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아프다고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그래서요?]
[할머니 돌아가시면 너 도와야지]
[제가요? 왜요?]
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놀라울 정도로 차가워진 것과 사람의 죽음에 담대해져 정말로 남으로 보고 있구나를 깨달았다.
[아니 그래도 사람 된 도리로써 너도 와야 하지 않겠냐?]
[당신은 사람 된 도리를 지켜서 그런 일을 했어요?]
[....... 나중에 통화하자]
그는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후회였을까 회한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미안하다 생각했을까?
솔직히 별로 상관없었다. 내가 고려해야 될 사항이 아니었고, 내가 받은 상처를 알고도 도망친 비겁자에게 신경 써줄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가족이 타인보다 못해지는 게 여러 행동이 쌓이고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그게 내일이 되니 참으로 씁쓸했다.
그날 전화 이후 어머니에게 이혼을 본격적으로 권하였고 어머니도 동의했다.
그때를 되돌아봐도, 나는 그릇이 영 큰 인간은 못되구나 지금 봐도 조금 슬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