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글이 막히는 이유
지울지도 모르는 글이지만...
나는 강력범죄 생존자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상대로부터 수년동안, 갖가지 종류에 해당하는 큼지막한 범죄를 당했다. 조금이라도 구체적인 혐의내용을 언급하는 것조차 혹시나 그 어떤 나비효과가 있을까 나열하지는 못하겠다.
수사 중에도 계속 저지른 추가범죄 때문에 재판이 1건으로 마무리될 수 없어 아직도 진행 중이고, 내용이 심각하여 수백 명의 탄원서를 받았던 지난 재판의 결과도 다른 많은 사건들처럼 내 안전을 보장하고 가해자의 잘못을 벌하기엔 마뜩지 않았다.
지금은 몇 년째 극소수의 지인들만 연락하고 지내지만, 나는 본래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편이었고 교류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었다.
가해자 역시 본인 나름의 인맥이 넓고 나와 겹치는 지인들도 다수 있었다. 범죄의 내용들은 내게 너무나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것들이었고, 그래서 나는 더욱더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숨을 수밖에 없었다. 툭하면 응급실에 실려가고 입원 권유를 받으며 치료받느라 바빴고, 가족들까지 들먹이며 계속되는 살해 협박에 하루하루 변호사나 의료진 마주하는 것도 버거웠으니까.
공개된 공간에 솔직한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소한 정보가 될 수 있는 조각들이 하나 둘 흘러나오기 마련인데, 그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자꾸만 브레이크가 걸리다 보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쓰다가도 창을 닫아버리는 일이 부지기수가 되어 답답한 요즘.
그리 오래는 남지 않은 가해자의 출소 전에, 아니 아마 그보다 훨씬 더 전에 이 글은 또 지우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지우게 될지라도, 일단은 완성하여 남기는 것에 의미를 두고 앞으로의 다른 글도 부디 조금은 편해지기를.
(수정하며 덧붙이는 말_ 언젠가 지울 글 같아서 이 글의 덧글은 막아둡니다. 호의를 표시해 주시는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