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지기를.
지금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곧 괜찮아지기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십 대 중반 즈음까지, 힘들 때 되뇌던 말버릇 중 하나는 "난 괜찮아"였다.
어쩌다 보니 일상에서 친숙하게 접하는 매체의 인물들이 고난이 닥칠 때마다 가장 많이 하는 대사가 그러했고, 자연스럽게 흡수된 그 말을 되뇌다 보면 정말로 괜찮은 게 맞는 것처럼 느껴져 바람직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으로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누군가 그때의 나와 같은 일을 겪어서 힘들어했다면, 나는 힘든 게 당연한 상황이라며 무리해서 괜찮다고 이야기할 필요 없다는 말을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일까. 나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괜찮다는 말로 넘어갈 수 없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 기준 미달의 인간이 된 것만 같은.
아마도 스스로 꽤나 대단한 사람이라는 허영에 가까운 자만심, 혹은 그래야 한다는 강박이 어우러진 모양새일 테다.
그것이 인생살이를 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기는 했다.
한계점에 도달한 이후 부작용으로 빠르게 무너지기 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좀처럼 겪기 어려운 아픔과 시련이 있었지만 대부분을 어떻게든 잘 이겨내 왔다고 생각했는데
상식을 벗어난 타인의 악의와 긴 시간에 걸친 치밀하고 교활한 범죄 앞에서 정신력 따위는 아무 소용도,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급기야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져 세상을 떠나는 것만이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였을 때-스스로 끝내는 것만이 그나마 최대한 덜 고통스럽게 덜 망가진 모습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인 것만 같았을 때, 불안과 공포에 내몰려 몇 번의 시도를 행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쯤엔, 어떻게든 괜찮은 것으로 만들어왔던 삶의 지난 아픔까지 모두 이전보다 더 큰 폭풍으로 몰아쳐왔다.
조각조각 찢겨 존재는 하는가 싶을 만큼 미약하고 희미해진 자아가 이따금씩 깜빡일 때면 가까스로 "난 괜찮아"를 입밖에 내려고 해 보았지만 그 짧은 한 문장이 그리도 어려웠다.
전혀 괜찮지 않은데. 여기서 괜찮다고 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거짓말이고 기만일 뿐이 아닌가. 자조 섞인 헛웃음과 눈물만 그칠 줄을 몰랐다.
거짓. 기만. 그토록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행위를 나는 마법의 주문인 양 나 자신에게 아주 오랫동안 해온 거였구나.
말의 힘은 대단한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이지는 않았고, 바람직하게 해소되었다고 여겼던 여정들이 더욱 거대한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것을 보면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높이 쌓아 올릴수록 위험한 부실 공사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또 수년의 시간이 지나, 아직도 여전히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지금의 말버릇은 "괜찮아지고 싶다".
너무나 당연한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글자로 명명하거나 음성으로 뱉고 나면 그 상태로 멈춰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고 괜찮음이라는 목적지는 아득히 머나먼 이상향으로 막연해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무너져 내릴 수 있을까 싶은 절망을 셀 수도 없이 반복하고, 괜찮지 않은 지금이 수년이 지나도록 계속되어서야 솔직하게 희망하게 되었다.
정말로 괜찮지 않아.
여전히 위험하고, 보통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보내며 현실적인 절망과 공포가 미래를 짓이긴다.
그래서 괜찮아지고 싶다. 사실은 정말로 잘 살고 싶었으니까.
이 글을 보는 누군가도 혹시나 많이 힘든 지금이라면, 괜찮지 않다고 실컷 이야기할 수 있기를. 그리고 이윽고 괜찮아지기를 부디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