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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우주 Oct 27. 2024

[시]지렁이

2023.06.06의 기억 파편

사소한 것에도 눈물이 흐르는 나날

힘겨운 발걸음 내딛다 마주친 지렁이


흠칫 놀라 옆으로 피하며 다시 본 너는

아직 말라붙지 않고 조금씩 꿈틀대며 살아있었다

몇 번을 휘감아 둘러진 몸길이를 보자면

어쩌면 너는 나보다 긴 너의 시간을 살아냈겠구나

어쩌면 너는 나보다 많은 눈물을 흘려왔겠구나


어릴 적 안락한 정원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며

공기가 축축한 날이면 꽤 많이 마주친 너희는

매서운 빗물에 지붕이 쓸려내려 맨몸으로 마주친

따가운 햇볕에 무자비한 발길질에 어떻게 살아내었을까


쉼 없는 생명의 위협을 견디고 살아낸 모든 걸

존경하고 또 경외해

그 힘을 내게도 조금만 나누어 주렴

조금 더 깨끗한 마음으로 정화된다면

꿈에서라도 너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어쩌면 흙 위에 살아가는 만물의 이야기를

너희는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수많은 지혜를 대운을 나누면

어설픈 나마저 조금은 현명해질 수 있을까

조금 더 굳세게 살아낼 수가 있을까


모종의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깨끗할 너를

밟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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