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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데리야끼 Jul 03. 2023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구나

호텔에 고립 되고, 에어비엔비에 얹혀 살고..그래도 괜찮겠지

다음 날 비쌌던 기차역 옆 레오나르도 호텔을 뒤로 하고 택시를 불렀다. 내가 묵을 다른 호텔은 도심 외곽 지역에 있었는데, 위치도 고려하지 않은 채 제일 저렴하길래 덜컥 예약했다. 그러나 이건 나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짐만 옮겨두고 OT가 열리는 도심으로 다시 가려는데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 네덜란드를 비롯해 유럽은 한국만큼 택시 서비스가 잘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카카오 택시만 생각하고 변두리에 호텔을 잡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우버, 볼트 모두 깜깜 무소식이었다. 당장 OT는 가야하고, 택시는 안잡히고, 우버는 카드 등록도 안되어서 무슨 수를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참을 걸어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택시 좀 불러달라고 물어도 자기는 어떻게 부르는지 모른단다. 한 시간을 진땀을 빼고 있다가 볼트가 간신히 잡혀 OT 장소로 부랴부랴 갔다. 교직원으로 추정되는 분께 집을 사기당해 묵을 곳이 없다는 사정을 말씀 드리고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부동산을 연결해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제서야 한시름 놓고 OT를 즐기러 갔다. 늦게 합류한 탓에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무슨 인터네셔널 오티 행사에 참여했다. 미니 골프도 하고, 블럭 컬링도 하고 미션이 많았다. 게이밍 펍(?)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는데, 우리 조 사람들은 한 명 빼고 모두가 I 인간들이었는지 별 말 없이 미션 수행하는데 바빴다.


친구들은 이미 OT 시작 때부터 친해졌는지 서로서로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나는 어색한 마음에 말 없이 가만히 앉아있다가 "사진이나 한 장 찍을까?"라고 먼저 물었다. 우리 조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나는 다시 묵언수행이었다. 학교에서 준 코인들로 햄버거랑 프렌치프라이도와 맥주를 마시는데 친구들이 큐알코드를 내밀었다 !


앞으로 한 학기 동안 같이 지낼 인터네셔널들끼리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친목도 다지자며 와츠앱 단톡방에 초대했다. 이름은 Bredavengers. 드디어 나의 교환학생 생활이 시작되는 구나, 싶은 마음에 한 편으론 설레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여전히 집이 가장 큰 문제였다. 친구들은 OT가 끝나고 2차를 가는데 나는 교통 이슈 때문에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무슨 경찰에게 잡혀 기사님이 조사를 받고, 돌아와서 보니 변두리 외곽이라 즐길 것도 구경할 것도 없는 곳에서 무려 4일이나 보내야 하는 상황. 호텔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매일을 전자레인지도 없어 차가운 냉동 식품으로 밥을 떼우고, 심심하면 동네 구경을 나갔다. 와중에 이방 땅에 가있는 내가 궁금한 가족들에겐 "나 너무 즐겁고 재밌게 생활하고 있다"고 안부 문자를 보냈다. 하루 종일 유튜브 보다가 바깥 구경 갔다가 이게 한국인지 유럽인지 모를 때 즈음 첫 수업 메일을 받았다.


간단한 수업 일정과 주소를 보니 여기서 족히 20분은 걸릴 법한 거리였다. 중간중간 친구들이 "오늘 행 아웃 할 사람~?"이라는 문자를 남겨도 변두리에 있으니 합류할 수 없음에 아쉬움이 커 부랴부랴 짐을 쌌다. 다행히도 에어비앤비 예약을 할 수 있게 되어 수업 당일 한 시간 반 정도 여유를 두고 택시를 예약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기는 어디? 유럽이었다. 콜택시를 예약하려고 시도했더니 네덜란드어를 막 말하니 당황해 어찌할 수가 없었다. 1층으로 내려가 레스토랑 직원에게 전화를 부탁하고 택시를 기다렸다. 이미 수업 시간은 점점 임박해 오는데 늦어지는 택시에 스스로에게 막 화가 났다. 간신히 도착한 택시는 무려 숙소까지 10만원을 요구 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9인승 택시를 타고 짐을 옮겼다.


정말 다행이었던 건 에어비앤비 집주인 분께서 친절하셔서 짐 옮기는 것도 도와주시고, 수업까지 차를 태워다 주셨다. 본인의 자전거를 이용해도 되고, 더 머물러야 하면 미리 말해주란다. 나는 그저 빨리 집이 구해지길 바랐고, 드디어 호텔 생활을 청산했기에 요리 다운 요리를 해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쁠 뿐이었다.


유럽은 한국과 또 달랐다. 여행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교환학생으로서, 나는 이 곳의 속도와 다름을 기꺼이 감수해 내야 했다. 그렇게 나의 네덜란드 생활은 홈리스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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