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깡패라니까
곧 대학교 방학이 끝난다.
4학년이 시작될 것이며 날이 좋다며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산책할 수 있는 날들도 적어지겠지 싶다.
좋아하는 곳을 마음껏 누리고 다니는 자유로움도 적어질 것이고, 태평하게 침대 위에 누워 12시까지 낮잠을 잘 수 있는 날들도 적어질 것이다.
유난히도 날이 무척이나 좋았다. 왜인지 이런 날에는 밖에 안 나가면 손해인 거 같다. 시간과 돈을 나의 자원이라고 했을 때, 밖으로 나가는 거 자체가 더 손해일 테인데도 말이다.
나가면 교통비도 들고, 시간도 든다. 꾸미지 않아도 샤워 정도는 하고 나가야 되며, 옷도 갈아입어야 한다(파자마를 입고 나가는 건 부끄러우니까).
그래도 왠지 나가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다. 날씨가 나를 움직이게 한 걸까 아니면 내가 움직이고 싶었던 걸까. 어디에서 피어오른 마음인지 도통 모르겠다.
바깥에 나와 환하게 피기 시작한 벚꽃을 둘러본다. 사진기를 손에 들어 찍어본다. 이렇게 하면 더 예쁘게 찍히겠는데 싶어 몸을 움직인다.
전철을 타고 이동한다. 그리고 전철에 몸을 싣는 순간 후회감이 몰려든다. ‘아, 집에서 공부나 할걸…’ 하면서 말이다.
바깥에 나오는 건 시간도 돈도 필요하다. 공부하는데 시간을 쓸 수도 있고 집에서 영화를 보는 데 시간을 쓸 수도 있다. 집에서는 뭐든지 가능하다. 시간과 돈을 아끼면서 말이다.
후회가 몰려온다. 대학교 4학년, 어디 놀러 갈 시간은 없는데…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30초 정도의 시간 동안 내릴까 말까를 한 37번 정도 고민한 거 같다. 그리고 내렸다. 언제나 고민은 30초 하나 3시간 하나 비슷하다.
길을 걸으며 여러 사진을 찍는다. ‘이게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일단 찍고 본다. 날이 좋잖아.
발걸음을 옮겨 원래 가려던 카페 근처로 향한다. 이전에 일하던 카페의 사장님이 하시는 곳이다. 날씨 좋은 날, 왜 이곳이 떠올랐을까?
사진기를 들어 카페 사진을 촬영한다. ‘그래, 나는 이 카페의 사진을 찍고 사장님을 인터뷰하고 싶었어’라는 생각이 든다. 발걸음은 카페 안으로 향한다.
계산대에서 인사를 하고 주문을 한다.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는 것, 그게 정말 나의 진심일까? 좀 더 깊이 들여다본다.
과거 나는 사장님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가게 쪽에 안 좋은 영향이 갈만한 행동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한없이 어렸을 때였다(1년 전이지만 말이다).
사장님께 그 문제를 지적당한 뒤, 한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와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였다(자존심 때문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이후 후회와 함께 죄책감으로 샤워를 했다.
카페에서 일하고 싶었다. 좋은 기회였는데 제 발로 차버린 것을 후회했다.
젊고 멋스러운 나이에 멋스러운 카페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나를 채워줄 것만 같았다. 한 껏 멋스럽게 말이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용서를 사장님께 구했었다. 가게에 찾아가 언제나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반성문의 형태를 띤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한 번이 아니다. 두세 번 정도.
사장님은 그때마다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하셨다. 물론 다시 일을 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말이다(당연하다).
지금의 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대학교 4학년이다. 시간이 없다.
글을 적고 있다. 나를 채우고 있다.
책을 읽는다. 내가 채워지고 있다.
운동을 한다. 꽤나 건강하다.
잠을 잘 잤다. 정신이 말짱하다.
생활비가 충분하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곳에 와서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왜일까.
바라는 게 없을 텐데 말이다.
조금 침묵을 하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다.
내 마음 깊은 곳을 탐험하다 죽어버린 나의 수많은 시체들을 헤집어 나가면서 말이다.
조그마한 빛이 새어 나오고 어느 한 곳에 닿았다.
부끄럼 많은 시간을 보낸 죄스러운 나는 용서를 바랐다.
사장님의 아량 넓은 마음에서 나온 용서가 아닌
좁디좁은 그릇의 치사한 나에게서 나온 용서 말이다.
죄스러움에 용서보다, 좋은 기회를 버려버린 치기 어린 나 자신에 대한 용서 말이다.
그것이 특별히 날씨 좋은 날, 기분이 좋아진 나를 집 밖으로 움직이게 만들었고 오는 길을 후회하게끔 하였으며 돌고 돌아서 카페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4월의 시작, 날씨 좋은 날이다.
내일은 좀 더 좋은 날이 될 거 같다. 일기예보는 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제 그만 나를 용서해 주어도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