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만한 감정, 그 이유

감정은 바뀐다. 그걸 견뎌야 하는 이유가 있으면 버틸 수 있다.

by 아메바

불안에 휩싸이는 아침이다. 분명 어제보다는 더 나은 오늘인 거 같은데도 갑자기 불안하다. 어제는 아침이라고 하기 뭐 한 오전 11시까지 잤다. 심지어 전날 오후 7시에 취침했는데도 말이다(놀랍지 않은가?). 그에 반해 오늘은 밤 11시 30분에 자서 9시 정도에 일어났다. 요즘 유행하는 미라클 모닝 축에는 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다. 조금 더 나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샤워하고 밖으로 나와 카페로 향한다.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는데 한 가지는 집에서도 일이나 공부를 잘 해내는 사람과 다른 한 가지는 집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다. 아무래도 나는 전적으로 후자인 듯하다. 집에만 있으면 어떤 전자기기로든 유튜브를 틀어 숏츠를 보던, 영상을 보던 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물론 유튜브 영상에서도 도움이 되는 좋은 영상들이 많지만 그게 과연 공부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아무래도 영상은 떠먹여 주는 콘텐츠이니 말이다.


아무튼 밖으로 나와 카페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는다. 그러다 조금의 휴식시간에 인스타를 켜서 여러 사람의 스토리를 본다. 100명의 사람이 있음 100명의 다른 일상이 있듯 누군가는 멀리 여행을 가고 누군가는 멋진 음식을 먹는다. 그에 반해 나의 어제는 집에서 충실하게 시간을 낭비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조금 생각해 보니 누가 집에서 시간낭비 하는 것을 공개된 공간에 자랑하듯이 올릴까 싶다. 멋진 공간에 가있는 그들도 어느 날은 집에서 나처럼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희망?)을 조금 가져본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의 스토리를 발견한다. 아, 보고 싶다는 마음과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공존한다. 이상하게 진짜로 원하고 좋아하는 것은 반대의 척력이 존재하듯 원하지만 안될 것만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좋아하는 만큼 두렵게 된다고 해야 하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듯, 좋아하는 마음 이기는 나는 없다보다. 동그라미를 클릭해 마음에 드는 이의 일상을 조금 엿보았다.


평범한 카페 사진처럼 보였다. 문득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라는 기분이 든다. 어디선가 봤으면 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진짜 본 것일까 싶어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전 길을 걷다가 본 적이 있는 카페다. 오, 이거다 싶어 대화의 화두를 던진다. 구글 맵을 켜서 장소 공유를 하고 거기에 혹시 여기?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렇게라도 말을 한마디 붙여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스토리를 넘기다 보니 마음에 드는 이의 친구의 스토리가 나온다. 그리고 그 장소에 대한 정답이 나온다. 내가 생각하고 물어봤던 그곳이 맞았던 것이다. 아, 어쩌지 싶다. 왜냐하면 나는 이를 몰라서 물어본 것이고 이미 모르는 상태가 아닌 알게 돼버린 상태가 되어버렸기에 말을 걸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더 이상 스스로를 납득시킬 이유가 사라진 나는 이전에 보냈던 메시지를 취소한다.



메시지 보낸 것을 취소해야만 했던 것일까 아니면 취소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화를 하고 싶지만 답장이 오기 전까지의 살 떨리는 경험은 하기 싫다. 참 이기적이지만 그렇게 생각이 든다. 물론 하이 리스크 하이리턴이라지만 이미 잘 안될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것인가. 이상하게도 위에도 적어 두었듯 정말 좋아하는 것에는 반대로 정말 안될 것이라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더 두렵고 더 안될 거 같아서 잘 안되게끔 행동을 한다. 그러다 보니 결과도 안 좋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불안하고 싶지 않다. 그게 내가 바라는 상태였던 거 같다. 근데 이는 결코 원하는 결과는 아닐 터이다. 아이러니하다.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드는 감정은 감수해야 한다. 이는 버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 아닌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는가 아니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근데 아직도 나는 그게 미숙한가 보다. 아직도 불편한 감정, 불안한 감정이 들면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 그 마음이 잘 되고 싶은 마음보다 크다. 어쩌면 원하는 게 너무 확실하니까 더욱 두렵다고 해야 할까. 그게 아니면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시도 끝에도 내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정말 좋아했던 친구에게 고백하고 차였을 때도 내 하루는 계속되었다. 이상하게도 차이고 난 뒤에 오히려 더 홀가분했다고 해야 할까. 짝사랑이라는 상태에서 벗어나 그냥 좋아만 하는 상태가 되니 오히려 너무 행복했다. 그런 경험을 해도 두려운 건 두려운가 보다. 그런 말이 있다. 격투기 선수들도 맞으면 아프다고. 당연하게도 격투기 선수들이 때리는 파워는 어마무시하다. 재미있는 영상들 중에 프로 격투기 선수가 엄청나게 섬세하게 힘을 조절해서 킥을 차는 영상이 있는 데 거기 나오는 모든 사람이 다 그걸 맞고 쓰러질 듯이 아파한다. 연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리얼했기에 보는 입장으로서 의문이 가면서도 프로니까 라는 생각으로 납득이 갔다. 그렇게 힘조절해서 차는 발차기도 일반인들에게는 죽을 듯이 아픈데 그들이 힘조절을 안 하는 프로 경기에서 맞는 펀치나 킥들은 얼마나 아플까. 그럼에도 그들은 그저 묵묵히 싸운다. 미칠 듯이 아플 텐데도 말이다. 한 마디로 타격이 안 아픈 게 아닌 견딜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일 스파링을 하고 경기를 하면서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물론 익숙해진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프지만 그럼에도 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도 그런 거 같다. 두렵지 않은 게 아니다. 어쩌면 아직도 많이 두렵고 조금 더 두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냥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가가도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거절당해도 세상이 멸망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절이 반갑다거나 다가가는 게 쉽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그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참 감정이라는 것은 어렵다. 왜 그렇게 불안을 느끼는지 알아도 견디기가 어렵다. 이유를 알아도 피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누구나 어느 정도 그런 두려움을 안고 산다. 그리고 다들 힘을 내서 그런 감정을 견디며 매일을 살아간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매일을 살아가는 모두가 참 대단해 보인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편차는 있겠지만, 누구나 각자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매일을 살아간다. 이걸 읽고 있는 당신도 그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대단하지 않은가? 그저 마음 편히 매일을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인생은 고통이 기본 베이스인 거 같다. 그러니 존버가 답일지도 모른다. 매일 꾸준히 하다 보면, 그냥 하다 보면, 어쩌다 운이 좋아 잘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지나니 불안이 많이 사라졌다. 어쩌면 내 불안은 저 친구에게 다가가는 것만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만큼 인간이란 복잡한 생물체이니까. 나는 많은 이들과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친해지는데, 나 자신과도 어쩌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직도 나는 나를 모르겠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알기 위해서라면 어려운 심리학 공부나 철학책을 찾아 읽는 거 보면 아직 나는 나를 사랑하나 보다. 그런 노력이 쌓여가다 보면 어느새 나 스스로와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있지 않을까? 싶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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