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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쫄보 Dec 30. 2022

한국에서는 감을 말리고 나는 스카이트레인에 갇혔다

이런 일 저런 일

캐나다에서 종종 있는 일인가


집을 구하는 기준 중 가장 우선시되는 조건 중 하나가 '스카이트레인역과의 거리'이면 이 교통수단이 밴쿠버에서 살아갈 때 얼마나 중요한지 감이 올 것이다. 

특히나 스카이트레인을 타면 좋은 점이 한국에서 지하철은 보통 지하로 다닌다면 여기는 대부분 지상으로 다니기 때문에 바깥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 멍 때리며 밖을 보고 있으면 시시각각 정류장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익숙해지면 풍경만으로도 자신이 내리는 역에 다다랐다는 것을 인지 가능하다. 


친구한테 들은 정보에 의하면 스카이트레인 안에서 위험한 순간이 오거나 점검이 필요하다 싶을 때 창틀 중간에 있는 노란색 부분을 누르면 소리나 알람 없이 담당자에게 알림이 간다고 한다. 그럼 그 신호를 받고 다음역에 정차되고 보안관이 들어와서 점검이 이루어진 후 다시 출발한다는 꿀팁! 


노란색 부분을 긴급상황 시 누르면 알림이 간다.


어느 날씨 좋던 하루도 다른 날들과 똑같이 일정을 마치고 스카이트레인 안에서 풍경을 구경하며 집으로 향했다. 버스보다 배차 간격이 길지 않고 편해서 자주 이용한다. 해가 지는 순간의 하늘색이 유독 눈에 들어오던 귀갓길이었다. 


도착역에서 바로 한 정거장 직전에 갑자기 정차해버린 트레인.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들었지만 갑작스러운 정차에 긴장하며 자리에서 꿈쩍 않고 앉아있었다. 안내방송이 흐르고 역 쪽에 문제가 있어 해결이 된 후 출발한다고 승객들을 안심시킨다. 그 시간이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40분이 넘어갈 때쯤 갑자기 무서워졌다. 움직이지 않고 상공에 떠 있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같은 내용의 안내방송이 6번 나올 때였나.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열차 안으로 보안관이 들어오더니 여기서 내리란다. 

'내려야지 그럼,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순 없잖아. 근데 여기가 어딘데요?' 

깜깜해진 창에 가까이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스카이트레인이 다니는 선로 위다. 역도 아니고 그냥 공중에 떠 있는 그 다리 같은 곳이란 말이다! 

그렇게 혼자 벙찐 표정으로 이 상황이 실제상황인 건지 두리번거릴 때 스카이트레인에 함께 갇혀 있던 승객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뒷자리 커플한테 이런 사고가 자주 있는 일이냐 물어보니 10년 살아온 그들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란다. 밴쿠버살이 3개월도 안 된 나에게 벌어진 일. 

어쩔 수 없이 부들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앞의 사람들을 따라 밖으로 탈출하듯 나갔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안에서 봤을 때보다 더 무섭고 위험한 일이다. 안 해도 될 경험까지 시켜주는 밴쿠버. 


정차된 역 근처에 사는 친구한테 이 사실을 알리니

"저기 걸어가는 사람들 중 하나가 너냐" 하고 사진이 왔다. 

맞아, 나야. 살려줘


하지만 결국 나만 나를 살릴 수 있었고 바닥이 보이는 구멍 뚫린 선로를 건너 무사히 땅에 두 발을 디뎠다. 속으로는 식은땀이 났지만 앞에 있는 엄마 손 꼭 잡은 5살 남짓 되는 꼬마 뒤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싶었다. 역에 내리니 무슨 소동이 일어났는지 거리 전체가 통제되었다. 


이런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다. 스카이트레인 안에서 하도 긴장을 하고 있었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집에 와 정신없어 한동안 보지 못했던 폰을 들여다보니 배터리도 기운 없이 6%만 남아있었다. 충전기를 꽂아 톡을 확인해보니 한국에 있는 엄마한테 사진과 함께 연락이 와 있다. 


엄마는 집에서 감을 말리고 있단다. 

.

.

.

감이요? 귀여운데, 맛도 있겠는데

아까 나의 상황과는 달리 너무 평화로운 것이 심술이 났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감이 알맞게 익을 때쯤이면 다시 사진을 보내주시기로 했다.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그리워지는 캐나다 워홀러의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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