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결말이 좋아서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배웠던 이야기의 끝.
닫힌 결말과 열린 결말 중 나는 닫힌 결말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드라마, 영화를 접하기 시작했을 때도 명확한 엔딩신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고 애니메이션에 나오던 'Happily ever after'를 기대하며 영화를 시청했다. 모호한 열린 결말로 끝이 나면 뭔가 찜찜한 마음이랄까.
하지만 이따금씩 욕을 먹더라도 왜 열린 결말로 끝을 내는 작품들이 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인생이 닫힌 결말로 끝나는 그런 뻔한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에.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오고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2023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희망찬 새해 보내세요!' 등과 같은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희망찬 새해가 오지 않을 것처럼 작년 연말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계획 없이 찾아오는 시련이 이렇게 괴로울 줄이야.
그렇다. 일하던 회사에서 당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어떤 노티스조차 없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기에 갑작스레 '오늘까지만 일하라'는 말이 그렇게 가슴 아프게 다가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종종 이렇게 퇴사 통보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니 더 이상 쓸모없는 부품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막상 당해보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더라.
그래도 마지막까지 할 말은 다 하고 나왔다. 이 순간을 위해 영어를 배워왔던 것일지도.
분명 출근할 때만 해도 앞으로 몇 달간은 내 책상일 것만 같았던 사무실 책상 정리를 했다. 미리 알려줬으면 가방이라도 큰 거 가져왔을 거 아니냐고.
집에 돌아와 혼자 방안에 있으니 그 적막이 더 크게 다가왔다. 캐나다로 떠나오기 전 굳게 먹은 마음이 한순간에 흔들리는 바람에 하루 이틀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물 줄줄 흘리며 풀 죽은 채 방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하지만 이대로 타인의 결정에 의해서 내 인생을 낭비하면 안 된다 싶은 생각에 자리를 털고 책상에 앉았다. 물론 눈은 퉁퉁 부은 채로.
그리고 다시 처음 캐나다로 온 그 날짜로 돌아가 다이어리를 펼쳤다. 왜 이곳으로 왔는지 그 첫 장을 다시 뒤적였다.
안정적으로 살아왔던 인생을 떠나 모든 환경이 낯선 곳으로 떠나온 이유는 단조로운 삶에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필요했고 미래에 집중하기보다는 오늘 행복해지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삶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있었고 나름 재미도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행복하지 않았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시야를 넓혀보기로 했다.
아무리 다이어리를 뒤적여도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여전히 갈피를 못 잡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았다. 분명 객관적인 조언을 듣기 위해 주변인을 찾았는데 일단 나에겐 조언보다는 위로와 치유가 필요했나 보다. 그들의 현실적인 조언에 또 한 번 주저앉아 버렸다.
조언도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 하는 것.
타지에서 외국인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여기서는 희망이 없다.'는 말로 들렸다.
물론 그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하면 되는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 결국 불가능한 건 없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언제인지 모를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당장의 행복을 위해 온 사람이기에.
최악의 시기를 지나 돌이켜 보면 그때의 나는 현실적인 조언들이 필요했고 이미 이곳에서 겪어온 사람들의 경험담은 도움이 되었다.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고 무엇이 목표였는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모진 현실적 조언 속에서도 내가 바랐던 바는 '작은 희망'이 아니었을까.
이전에 스리랑카 봉사를 갔을 때 눈물로 자신의 속을 털어놓던 한 분이 떠올랐다. 스리랑카에서 자신의 삶은 좌절과 고통 그 자체였다고, 여성으로서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오면서 본인은 죽음을 기다리며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이 자신의 삶에 희망을 주었다고.
그 희망이 무어라고 그게 사람을 살리고 살아가게 만들까.
맞아, 내가 감옥 같은 곳에서 재수생활을 견딜 수 있던 이유 또한 그거였다. 언젠간 지나가고 끝날 것이라는 희망, 믿음.
우리가 스스로 내 삶에서 그 희망을 지키지 못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그들도 모르는 사이 희망을 짓밟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은 닫힌 결말일 수 없다.
누군가 그렇다고 해서 다 같은 인생의 결말을 낼 수는 없잖아. 다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다.
2023년 새로운 다이어리를 장만했다.
23년 첫 장을 새롭게 다시 써내려 갔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찾아가면서 살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