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스테라 May 22. 2021

안녕, 리투아니아

카메라 너머


8/30 Wednesday



 여행을 갈 때는 꼭 카메라를 두 개 이상 챙겨간다. 아빠가 물려주신 오래된 삼성 필름 카메라,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선물 받은 니콘 dslr, 그리고 하나 더 챙긴다면 인스탁스 폴라로이드 카메라. 사실 제일 많이 찍는 건 어쩔 수 없이 핸드폰 카메라이지만 이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중요한 순간을 놓치게 될까 여행 내내 불안하다. 이번에도 필름 카메라와 dslr을 챙겨 왔다. 제한된 짐의 무게 때문에 폴라로이드는 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내 몸무게만 한 짐이었다. 노트북은 챙겼지만 충전기는 빼먹은 것처럼 이번에도 필름 카메라는 가져왔지만 필름은 안 챙긴 나였다. 다행히도 구글 지도에 검색해보니 기숙사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사진을 인화해주는 카메라 샵이 있었고 종류가 다양하진 않았지만 익숙한 후지 필름을 10유로 정도에 살 수 있었다.


 바로 옆에 iki라는 슈퍼마켓이 있어서 과자와 간식거리를 사 가지고 근처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 놀이터에서나 볼 수 있는, 아이들은 꺄르르 뛰어놀고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 익숙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피부색과 머리 색뿐이었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그 색깔들을 오래 담아두고 싶어 이내 필름을 장착했다. 연두색의 잔디가 무성한 언덕을 거슬러 오르는 용감한 아이와 그 옆에서 신나게 땅을 향해 내려가는 아이들. 내 눈에 띈 아이는 혼자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어릴 때 혼자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더랬지.


  나는 외로움이 많은 아이였다. 말수가 많지 않아 인기쟁이 아이도 아니었고,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놀이터에서도 구석 한 켠을 차지하고 모래를 만지거나 조용히 그네를 타는 편이었다. 그 아이를 보니 내 어린 시절이 왠지 떠올라 안쓰러웠다.

 

  카메라를 꺼내 들어 뷰파인더로 그 아이를 바라보다가 셔터를 눌렀다.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지 필름이 감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이윽고 그 아이는 나의 촬영에 답해주기라도 하는 듯이 걸어서 미끄럼틀을 역주행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웃으며 쳐다보는 그 얼굴이 꼭 ‘언니 나 대단하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 넌 대단한 아이야.’ 나도 웃음으로 답했다.


 MOLAS에 있는 H&M에 들러 어제 찜해놨던 코트를 구매했다. 사기 전에 이것저것 입어보고는 애인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6시간의 간극이 있는 한국은 지금 한창 잘 시간이었다. 역시나 그는 답장이 없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또 슬퍼졌다.



작가의 이전글 안녕, 리투아니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