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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스테라 May 23. 2021

안녕, 리투아니아

무게


8/31 Thursday


  MOLAS 옆의 Lidl이라는 iki보다 조금 더 큰 마트에 들러 플라스틱을 재활용하고 0.2유로를 캐시백 받았다. 마트 입구에 놓인 기계에 페트병, 유리병 등을 분류해 집어넣으면 무게당 얼마씩인가 계산해서 종이로 돌려준다. 이 종이를 Lidl에서 계산할 때 내밀면 그 가격만큼 할인을 해주는 형식이었다. 값어치를 꽤 많이 쳐주는 편이어서 플라스틱 주으러 다니는 홈리스들도 있다고 들었다. 어딜 둘러봐도 나무가 무성하고 새 초록의 잔디가 깔려있는 이 나라조차도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 놀라웠다. 정작 환경을 신경 써야 하는 도심지의 사람들은 컵 대신 플라스틱을 쓰고,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고, 채식보다 육식을 보다 더 하는 기분이었다. 리투아니아의 마트에는 항상 비건 식품이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는데 그중에서 내가 제일 즐겨 먹는 건 비건 너겟이었다. 고기 맛과 다를 바가 없어서 굳이 환경에도 해롭고 몸에도 해로운 고기를 먹어야 하나 싶었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알려주는 Language Exchange의 날이었다. 학생회에서 준비한 이 이벤트는 시내의 한 카페를 대관하여 진행되었다. 나는 E와 그를 통해 새로 알게 된 다른 학교에서 KTU로 교환 온 한국 G, S와 함께 시내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르만타스라는 리투아니안 친구와 친해지게 되어 리투아니아어를 잔뜩 배웠다. 안녕부터 시작해 고마워, 좋아, 가자와 같은 기본적인 말들을 배웠지만 기억나는 건 발음도 귀여운 ‘아츄’(고마워) 뿐이었다. 아르만타스는 한국 광팬이었다. 웬만한 한국 드라마를 섭렵한 그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들을 따라 하면서 날 웃겼다. 그가 제일 많이 한 말은 ‘귀엽다~’와 ‘대박~’이었다. 


 내 옆자리에는 카자흐스탄 남자애가 앉아 있었고 그는 나와 계속해서 말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가 조금 귀찮았지만 카자흐스탄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서 적절히 반응해주며 듣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에는 많은 한국 기업이 들어와 있다는 것 밖에는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다른 카자흐스탄 여자애도 있었는데 그는 나보다 E와 말을 섞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시내로 나온 제일 큰 이유는 카우나스 성에서 야외 영화 상영회가 있어서였다. 넷이서 도란도란 나들이 가려던 게 일이 커져 여섯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우리는 시내에서 가장 맛있다는 피자집에서 피자를 사서 카우나스 성으로 이동했다. 영화는 시작한 지 한창이었고 모두 리투아니아어였다. 당연히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는 조용한 야외에서 눈치를 봐가며 우걱우걱 피자를 먹으며 모두가 웃을 때 따라 웃고, 따라 박수를 쳤다. 해가 져서 어두컴컴해도 흘러가는 구름이 보이고 별빛이 아주 밝은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영화가 끝나고는 카자흐스탄 여자 친구, Fariza를 따라 그가 소개하는 카우나스 성 비밀의 공간으로 따라갔다. 카우나스 성 주변에 있는 호수였는데 물과 땅의 경계가 모호해 자칫하면 발이 빠질 수도 있었다. 물에는 반사되는 별빛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물 건너의 숲이 일렁이고 있었다. 파리자는 별자리를 여러 개 알려주며 지식을 뽐냈다. 물과 아주 가까운 그곳에서 우리는 겁먹은 서로를 놀리면서 위험을 우습게 집어삼켰다. 분위기에 한껏 취한 밤이었다. 





9/1 Friday


 개강이 2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개인 시간표 확인이 안 됐다. 아무래도 기숙사비 56유로를 안내서 그런 것 같길래 1층에 있는 기숙사 관리실로 내려갔다. 기숙사비는 관리실로 바로 내는 게 아니라 MOLAS 앞에 있는 우체국에서 처리하는 거라고 배가 울룩불룩한 남자 관리인이 알려줬다.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불안해서 한국인 단체 카카오톡 채팅 방에 물어봤더니 강의 스케줄을 조정해주는 코디네이터를 만나고 허가를 내어 줘야 볼 수 있다고 했다. 코디네이터와는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날 예정이었다. 


  Celebration of Opening Week이라고 해서 한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축하 행사가 아레나에서 진행된다고 하길래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리투아니아에서 버스를 타는 일은 익숙하고도 생소한 일이었다. 버스 안에는 모두 나보다 하얗고 노란 머리의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그 눈빛들이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시내에 도착하니 저 멀리서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나오고 있어 발길을 돌렸다. 이 도시는 밤 9시가 되면 거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아 깜깜해진다. 어제 궁금했지만 너무 늦어 구경하지 못했던 상점들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한국에도 있는 익숙한 Copenhagen Tiger Shop에 들어갔다. 여기 친구들은 간단하게 타이거 샵이라고 부르더라. 그동안 접시가 없어서 음식을 해 먹을 때마다 기숙사 부엌에 있는 누군가의 접시를 대충 썼다. 내 접시를 살 때가 되어 투명한 핑크색의 납작한 접시 하나와 밥이나 국을 담을 용도의 하늘색 작은 보울을 샀다. 둘 다 플라스틱이었는데 내가 못 찾은 건지, 이 곳에서는 도기를 파는 가게를 찾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가게를 나오다가 내가 이스탄불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친구와 마주쳐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나왔다. 행사를 마치고 들린 모양이었다. 


  시내에 나온 김에 기숙사로 돌아가기 아쉬워져 M.K. Čiurlionis Museum of Art라는 미술관에 들렀다. 테피스트리부터 시작해서 가구, 그림, 조각이 두루두루 있는 이 미술관은 리투아니아의 평화로움과 여유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미술관에 들리곤 했는데 이 나라에서도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어지러운 내 마음을 정화해주었다.



 저녁에는 파리자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Republic이라는 펍에 놀러 갔다. 이곳 밤 문화의 중심에는 펍과 클럽이 있었는데 둘 다 노래가 크게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따라 부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노래는 심각하게 구렸다. 어떻게 이 노래에 저렇게 신나게 춤을 추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케이팝이 왜 유행하게 되었는지 알만했다. 그들에게 케이팝과 케이드라마 말고도 한국에는 쿨한 문화가 더 많다고 알리고 싶었던 나는 신진작가의 그림이 그려진 폰케이스를 보여주며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멋쩍게도 그들은 무관심했다. 친구들과 테이블 축구를 하고, 어느새 구린 장단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 파리자의 친구인 남자애 한 명이 계속해서 말을 걸길래 나는 새로운 리투아니아인 친구를 사귀는 건가 들뜬 마음으로 응답했지만 그는 같이 집에 가는 거 어떻냐며 뒤통수를 쳤다. 저번에도 클럽에서 나온 뒤에 일면식 없는 리투아니아인 남자가 따라오면서 영어로 계속 말을 건 적이 있었는데 동양인 여자에 대한 가벼운 구애들이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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