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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스테라 May 01. 2022

떠돌이 생활의 시작

나의 집은 어디인가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게 되었다.

끝마쳐야 했던 원고도 쓰지 못한 채로 회사로 출근한 나는 일도 제 때 못하고, 민폐 끼치는 직원이 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동료들이 일을 나누어 해준 덕에 오전 중으로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이전과 달리 생각해 둔 내용이 없어 불안해했던 개인 원고는 예상보다 빨리 마무리되어 선배께서 놀란 반응을 보이셨다. 물론 빨리 쓴 것과 잘 쓴 원고는 다르지만. 서서히 바쁜 마감이 지나가고 있었고, 휴식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이 날만큼은 나의 안전을 위해 친구 집으로 퇴근했다. 아무것도 챙긴 게 없었지만 나에게 여러 가지를 챙겨준 친구 덕에 아무도 내가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무탈하게 며칠 지낼 수 있었다.


여청과 담당 경위분이 임시조치를 내려주셔서 가정과 직장 내에 가해자가 100m 이내 접근 금지가 내려졌다. 이 사실을 남동생은 모르고 있었는지, 엄마가 '네가 집에 안 들어온다면 집에 남동생을 들이겠다. 그게 맞는 것 같지 않니?'라는 어이없는 연락도 이때에 왔었다. 


친구가 아무리 챙겨줘도 한계는 있었다. 내 물건을 챙기러 본가에 한 번은 가야 했다. 불안해하던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오랜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본가에 들르기로 했고, 고등학교 친구의 출근을 위해 아침 7시에 일찍 나오기로 했다. 


본가에 들어가기 전부터 고등학교 친구는 남동생이 있으면 어떡하냐며 무서워했다. 물론 나는 더 무서웠다. 부모의 반응도 걱정됐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들이라 남 앞에서는 부끄러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날 밤, 우리가 걱정했던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방에서 편안하게 잘 수 있었고, 인사 외에는 아무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영화를 보다가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잤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조용한 본가를 빠져나와 고등학교 친구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이제 정말 혼자라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마음 단단히 먹었다. 일찍부터 여는 스타벅스에 들러 치과 예약 시간까지 기다렸다. 짐이 한 무더기여서 아마 직원들이 수상쩍게 여겨 봤을 거다. 


이 날 이후로 쭈욱 친구 집에서 지내다가 하루는 친구 생일을 맞아 예약해뒀던 호텔로 휴식을 취하러 갔다. 오랜만에 목욕도 하고, 든든한 식사도 하고,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그다음 날, 조식을 먹고 나와 카페로 향했는데 아빠가 카드를 정지했으니 버리라는 카톡을 보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빠의 카드는 내 생활비(교통비, 식비) 전용 카드였다. 심지어 그들이 최저시급을 받는 내 사정을 알기에 절반은 적금을 하라며 건넨 카드였다. 카페에서 급하게 경제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이 있나 찾아보았다. 애매하게 지금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성인이라는 이유로 지원받을 수 없었다. 


나에게 남겨진 건 대략 50만 원 남아있는 개인 카드와 친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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