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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Sep 27. 2021

소개팅으로 로또 맞을 확률

로또가 맞겠지요?


여대를 다녀서 소개팅이나 미팅 기회가 많았다. 과팅 비슷하게 쪼인엠티도 두세 번쯤 가봤으니, 자만추와 반대되는 건 웬만큼 섭렵한 수준이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만한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다양한 루트를 통해 만나보면서 가장 편안하게 나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상황을 찾게 되었다. 소심한 나는 1 대 1 소개팅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새로운 사람 여럿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게 더 편안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도, 상대를 알아가기에도 가장 알찬 느낌이 드는 게 소개팅이었다. 대의 눈을 잘 바라볼 줄 알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도 자신이 있었기에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미팅은 그저 마음이 잘 맞는 멤버들로 꾸려서 나가기만 하면 상대방이 누가 나오든 재미있는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게임을 하고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깔깔대며 웃는 게 미팅에 나가는 목적이었다. 물론 미팅에서 만나 연애를 한 적은 있지만 몇 달 가지 않았다.   

    

내가 소개팅에 강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후에는 소개팅만 했다. 소개는 알다시피 몰리는 시즌이 있다. 계절로 보면 마음이 살랑거리는 봄이나 가을이 그러했고, 러브액츄얼리가 떠오르는 크리스마스나 연말 감성이 불을 지피는 때도 그랬다. 초반에는 사진을 공유하지 않고 만나는 소개팅도 있었지만 거의 드물었다. 처음 만나는 장소에서 전화를 걸면 전화를 받는 모습만으로 누군가를 찾는다는 게, 드라마면 모를까 현실에서는 너무나 민망했다. 그 후로 사진 공유는 필수였다. 서로의 귀한 시간을 최대한 안전하게 확보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사진과 전달받은 프로필을 통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느낌을 안고 시작하는 게 부담이 덜했다.


소개를 많이 받다 보니 상대의 스펙트럼도 넓었다. 기억에 남는 직업으로는 파일럿, 직업군인이 있다. (사실 너무 오래 전이기도 하고 겨우 하루 본 사람들이라 보니 기억이 희미하다..) 코카콜라 덕후도 있었고 카페에서 내 모습을 그려준 사람도 있었다. 상대의 눈을 잘 쳐다보고, 잘 들어주고, 질문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1 대 1의 강자라 어색한 적은 별로 없었지만 서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정말 어려웠다. 내가 소개팅을 열심히 했던 이유 중 하나는 고등학생 때 했던 연애 이후로 반년을 넘긴 연애가 없다는 게 속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연애를 오래 하면 그만큼 서로가 괜찮은 사람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아직 못 찾은 것뿐이라고,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본격적인 취업 준비 전 마지막 소개팅이라 생각하고 나간 자리에서 만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우리가 첫 만남부터 불타올랐던 건 아니다. 지내고 보니 둘 다 그런 성격도 아니다. 내가 '이것만은 용납이 안돼!'라고 생각한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인, 내가 원하는 모습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좋은 감정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방어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우리 둘의 만남은 그렇게 출발했다.


#발걸음, #한발짝, #여수


6년 동안 봐온 남자친구는 내 인생에 로또 같은 사람이다. 오래 만나면 단점도 보이고 매력이 반감될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멋이 있는 사람이다. 한결 같이 애정을 표현해주고 따뜻하게 다독여준다. 이런 그의 장점을 나는 따라 했고, 그는 나의 좋은 점을 따라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성장했다.

   

대학교 3학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던 소개팅이 내 삶에 이토록 거대한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루살이로 스쳐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중에 한 명이 내 인생의 반려자가 된다는 게 기분이 참 묘하다. 이처럼 아무도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어서 인생은 재밌는 것 같다. 예전에는 미래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우리가 내일을 꿈꾸고 기대할 수 있는 건 미래를 모르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다면 미래는 어느덧 내가 원하는 오늘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 우리의 시작을 담았으니, 다음 편부터는 우리의 연애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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