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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Sep 28. 2021

6년째 연애 중

동갑내기 커플 이야기


23살 겨울, 우리는 처음 만났다. 세 다리쯤 건너서 받은 소개팅이었으니 접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이였다. 남자친구는 경기도 북부에서 나고 자랐고, 나는 경기도 남부에서 태어나 쭉 살았다. 남자친구는 위로 형이 한 명 있는 막내고, 나는 삼 남매 중 장녀다. 남자친구는 과고를 준비했었고, 나는 외고를 다녔다. 남자친구는 k대 공대생이었고, 나는 s여대 어문계열을 전공했다.


혹시나 헤어지면 우연히는 절대 스칠 일이 없을 만큼 접점이 없었다. 하지만 우린 많이 닮았다. 남자친구가 어머니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남자친구 이름이 김철수라고 가정하면) '여자 김철수'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오랜 기간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닮은 점이 많다는 이유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 한다.


1) 가치관

우리는 안정적인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욜로를 외치고, 소유보다는 공유를 즐기는 요즘 젊은 세대 치고는 비교적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것에는 과감하게 지출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아끼려고 하는 편이다. 7,000원짜리 국밥도 자주 먹고 부대찌개, 미정국수, 분식집도 간간이 간다. 연애를 이제 막 시작하는 20대 후반 커플이라면 분위기 좋고 예쁜 가게나 카페를 주로 가겠지만, 짬이 있는 우리는 서로의 소탈한 모습에도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둘 다 운전면허는 있지만 차가 없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통근할 때 차를 끄는 건 오히려 고역이다. 있으면야 당연히 좋겠지만 대단히 필요한 상황은 아니기에 잘 버티고 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프라이빗한 공간에 대한 니즈가 강해지고 있긴 하다.)

 

2) 성향

화를 잘 내지 못하는 성정이다. 조용조용하게 커서, 특히 잘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에는 굉장히 깍듯하게 거리를 둔다. 그러다 보니 합당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황당해서 말문이 막힌다. 이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그 상황은 그냥 그렇게 보낸 후 나중에서야 우리가 이렇게 했어야 한다, 앞으로는 그렇게 하자,라고 반성한다. 그리고 협상의 기술이 부족하다. 흥정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호갱 커플은 더 이상 원치 않는다. 야들야들한 멘트를 함께 배워나갈 필요가 있다.


3) 생활환경

둘 다 자취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학생 때도 학교는 서울이고 본가는 경기도라 통학시간이 편도 1시간 30분이 넘었다. 그럼에도 둘 다 학교와 집을 열심히 오갔다. 나 같은 경우에는 3학년 때쯤 통학을 때려치우고 싶어 위기가 찾아왔었는데 어찌어찌 잘 넘겼다. 지금도 둘 다 서울에 근무하지만 여전히 본가에서 통근을 하고 있다. 통근시간도 여전히 편도 1시간 30분이 넘는다. 참 기특하면서 징하기도 하다. 한 명쯤 자취할 법도 한데 둘 다 생각이 비슷했다. 오래 걸려도 다닐 수 있는 거리이긴 하니, 월세를 몇 십만 원씩 내며 나와 살기가 아까웠다. 물론 우리의 공간이 생기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과 생활할 수 있을 때 함께 지내는 것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4) 직업

둘 다 수도권 근무, 특히 서울 근무를 우선순위로 원했다. 오죽하면 남자친구는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가 서울 근무의 메리트 때문이라고 했다. 공대생은 보통 지방 공장의 관리자로 가는 경우가 많기에 서울 근무가 가능한 진로가 생각보다 별로 없다고 했다. 우리가 대학 입시를 했던 2012학년도에는 지금과 달리 의전원이 많고 의대 티오가 적었다고 한다. 의대가 4개였다고. (나는 그 성적대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써본다.) 지금처럼 의전원은 줄고 의대가 많았다면 같은 성적에 충분히 수도권 의대를 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당시 지방의대는 가기 싫었고 수도권에 있는 의대는 점수가 부족해서 결국 sky 공대를 지원했고, 하필 그 해에 s대 재료공학과가 박터지는 바람에 k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부럽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많이 억울할 것 같다. 인생이 바뀔 수도 있었던 거니까. 역시 모든 일에는 운도 따라줘야 하는 것 같다.) 


6년이 흐른 지금, 남자친구는 인하우스 변리사로 일하고 있고 나는 공기업에 재직 중이다. 전문직임에도 회사의 사내 변리사로 일하는 건 안정성을 중시하는 그의 성향을 드러낸다. 나도 애초에 공기업만 지원을 했고, 중앙 공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서울에서 근무 가능한 공기업으로 이직을 했다. 중앙 공기업은 승진이나 기타 상황에 따라 지방 근무가 언제든 가능한지라 좀 더 확실한 근무 여건을 원했다. 서울 근무와 안정성을 추구하는 굵직한 줄기는 비슷했던 셈이다.






이렇게 우리는 6년을 만났다. 오늘은 비슷한 점들을 이야기했지만 닮음 속에 다름도 분명히 있었다. 사람인데 어떻게 똑-같겠나. 같은 생각은 공감하며 그 순간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반면 다른 생각은 '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해서 재밌었다. 지난 연애 기간은 공감과 재미가 잘 버무려져 우리의 지평을 넓혀주었던 시간이었다.


지난날이 함께여서 풍요로웠던 만큼 앞으로 같이 꾸려나갈 삶도 기대가 된다. 스케일이 다른 희로애락이 우리를 강타하겠지만, 단단한 우리가 되어 세상의 흐름을 스무스하게 타고 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연인이나 부부가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면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어른스러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사랑해도 가끔은 떨어져 있어야 하며, 떨어져 있어도 변치 않는 관계,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 우에니시 아키라, <혼자가 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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