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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Oct 05. 2021

동갑내기 커플이 타이밍을 맞춘 방법

사랑은 타이밍이라면서요


숱하게 들어본 연애의 진리 가운데 하나는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것. 그 이유인즉슨 남자들은 2년 간 군대를 다녀오니, 사회생활 연차가 비슷하거나 남자가 일한 기간이 좀 더 길다고 계산하면, 그 나이 차이는 딱 4년이 나온다. 일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지나면 업무에 적응이 끝난 것은 물론이요, 권태로울 지경까지 온다. 그 시기 즈음 그러니까 칼졸업 후 일하기 시작했다고 하면 남자 나이 28~30살, 여자 나이 26~28살 정도가 되겠다. 솔직히 남자는 여자가 어릴수록 나쁠 것 없고, 여자는 남자가 여러모로 경험과 능력이 많을수록 멋있어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위의 집합에서 가장 유력한 매칭은 30살의 남자와 26살의 여자다. 이들은? 그렇다. 네 살 차이다.


이 모든 환경을 제치고 나는 동갑내기인 남자친구와 오랜 연애 끝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동갑임에도 우리가 긴 시간 잘 만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알게 모르게 서로의 타이밍이 잘 맞춰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타이밍을 맞춰왔는지 지난 6년을 돌이켜 보았다.



1. 군인인 남자, 대학생인 여자


대학교 3학년 때 를 처음 만났다. 취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직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나간 소개팅이었다. 그는 제대를 앞두고 길게 휴가를 나온 군인이었다. 반은 민간인 상태라고 봐도 무방했다. 처음에는 아직 제대하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을 구태여 시작하는 게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세상에 남자가 반인데, 고무신이었던 것도 아니고 직업 군인도 아니고 제대를 앞둔 군인을 소개받는 일이었으 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것들을 떠나, 내가 그와의 소개팅에 나간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만나기 전에 받은 사진 속 담백한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느끼하지 않고 가벼워 보이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171인 내 를 감당할 수 있는 기럭지(180)이기도 했고, 학교도 그리 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심사숙고가 되었다. 


심사숙고
: 심각한 사이인 숙대생과 고대생 (아마도 우리 학교에서 만든 말이지 않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세상에 남자가 반이어도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이 두 가지를 만족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거기에 성향도 비슷하고 코드가 맞기까지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그런 상대를 만나는 건 기적 같은 확률이다. 만남 초기에 상대가 군인이라는 상황을 감내한 내 자신이 기특할 뿐이다.



2. 고시준비생인 공대생, 취업준비생인 여대생


남자친구는 공군 시절부터 변리사 시험을 틈틈이 준비했다. 군대에서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으뜸병장까지 했으니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는 제대 후 학교생활과 수험생활을 병행했다. 거기에 나를 만나 연애까지 추가된 것이다.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시험과 연애를 동시에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며 전화로 헤어짐을 고했다. 내가 그런 연애를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일방적인 통보였기에 나는 별 대꾸 없이 돌아섰다. 군인이었던 사람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공부하겠다며 폭탄을 던졌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내게 다시 전화했다. 자기가 한참 잘못 생각한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이미 감정이 상한 나는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했고, 일주일 후 우리는 대면했다. 사실 그때의 상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사과를 하고 결국 내가 받아줬으니 계속 만난 것 아닐까.


이렇게 출발 전 작은 위기를 통과한 우리는 드디어 타이밍이 맞춰졌다. 둘 다 학생 신분일 때, 그는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고 나는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함께 공부했다. 다음 관문을 위해 같이 달려가는 기분이 꽤나 짜릿했다. 타이밍이 맞으면 확실히 서로 이해도 잘 되고 싸울 일이 줄어든다. 사랑에 타이밍이 필요한 이유지 않을까.  



3. 고시생인 남자, 사회초년생인 여자 


대학생 커플이었던 우리의 상황은 내가 스물다섯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조금 달라졌다. 남자친구는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시기였고, 나는 첫 직장에 입사해 정신없이 일을 배우는 때였다.  다 다르게 바빴다. 그래도 내가 한눈팔거나 서운함을 느낄새 없이 그는 항상 다정했다. 연수원에 있는 동안에도 내 상황을 잘 이해해주었다. (보통 한 명이 연수원에 갔을 때 커플 브레이킹이 많이 일어난다고 하니 걱정이 됐을 것이다. 나도 후에 그가 연수원에 갔을 때 그런 감정을 느껴봐서 잘 안다.) 


보통은 여자가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고 남자는 아직 학생인 때가 동갑내기 커플의 첫 번째 위기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혹여 그가 변리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무엇이든 잘 해낼 것이라고 믿었기에,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치는 이성들에게 별로 눈이 가지 않았다. 워낙 집에 있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일하고 넉다운된 채로 집에  쉬기 바빴다. 그렇게 나는 회사-집을 오갔고, 그는 학교-독서실-집을 오갔다. 돌이켜 보니 그의 자상함과 나의 집순이 성향이 환상적인 콜라보를 선보여 가능한 타이밍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4. 사회초년생인 남자, 이직을 준비하는 여자 


수험시절과 내가 첫 직장을 다니면서 이직을 준비한 기간이 잠시 겹친다. 집에서 공부하는 걸 선호하는 내가 카페에서 공부하는 카공족이 될 줄이야. 둘 다 대학생이었던 때를 추억하며 우리는 이따금씩 함께 공부하는 데이트를 다시 했다.


변리사가 된 는 졸업 후 특허법인에서 일을 시작했고, 나는 원하던 곳에서 상반기에 최종 탈락의 고배를 마신채로 하반기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그가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나는 일을 하면서 이직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서로 다르게 바쁜 시기는 두 번째였기에 자연스럽게 잘 흘러갔다. 바쁘다고 안 만난 건 아니었다. 일주일에 1~2번은 꼭 만났다. 사는 곳이 멀고(경기 북부경기 남부), 이 때는 직장도 멀었기에 일주일에 한 번 보는 때가 좀 더 많았던 것 같긴 하다.


 

5. 권태로운 2년 차 직장인 남자, 갓 이직한 직장인 여자


남자친구는 업무에 120% 적응을 마쳤다. 나는 서울 근무가 가능한 적당한 곳으로 이직을 했다. 내가 좀 더 정신이 없으니 그는 나에게 많이 맞춰주었다. 내 일정이나 상황을 배려했다. 이런 그의 배려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 게 나의 실책이었다. 나는 안정적인 우리의 관계와 변함없는 일상이 평온해서 좋았다. 반면, 그는 업무 외의 시간에 좀 더 이색적인 것들을 하고 싶어 했다. 루틴한 일상에 지루해져 색다른 자극을 원했다. 함께 테니스도 배우고 싶어 했다. 이런 그의 말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 탓에, 나는 그로부터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고 통보받았다. (몇 년이 지나도 상황은 다르지만 통보하는 건 언제나 그였다. 나중에 이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그에게 당부했다. 혼자 끙끙 앓다가 일방적으로 통보해서 놀라게 하지 말고, 낌새를 주고 소통을 하라고. 이러이러해서 내 기분이 좋지 않다,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고 말해주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이제 둘 다 자리를 잡았고 평온한 일상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뒤통수를 크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의 배려에 익숙해진 나머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주말에 날씨가 좋은데 데이트를 못 나가고 집에 있을 때, 자기가 연애 중인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연애를 하고 있는데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건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최악의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를 떠나 연인으로서 너무 미안했다. 불찰을 인정하고 나는 그동안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설명했다. 다행히 그는 내 말과 행동에 감정이 동했고, 그 후로 조금은 어색했지만 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의 관계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유난히 길게 쓰고 있는 글이다. 동갑내기의 타이밍이 이렇게 맞추기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는 이는 지겨울지 모르지만, 우리의 신분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남자친구가 이직을 했고, 나는 다시 권태로운 2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문제는 없었다. 그가 워라밸을 찾아 사내 변리사로 거처를 옮긴 것이기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업무적으로 어려움을 느낄 게 별로 없었다. 나 또한 이직한 회사에 정착하여 잘 지내고 있다.


이제야 동갑내기인 우리의 타이밍이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다음 스텝인 결혼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같이 보낸 세월이 있어서인지 별 다툼 없이 미션을 클리어하는 중이다. 네 살 차이의 궁합만큼 동갑내기 커플도 충분히 짝짜꿍하며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커플을 포함한 이 시대 동갑내기 커플들의 찬란한 미래를 응원하며. 


동갑내기는 궁합도 안 본다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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