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정말 속이 후련해질까
유난히 짜증이 헤픈 날, 마음이 넉넉하지 못한 내가 싫어질 때가 있다. 평소에 긍정적이라는 얘기를 듣는 편이기는 하나, 사람인지라 당연히 화가 날 때도 있고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면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행동하게 된다. 평소 하던 생각에 독을 묻혀 던진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겠냐며 직설을 내뱉는다. 그저 안 좋은 내 감정을 조금씩 내려보낼 핑계에 불과했으면서 말이다.
생각과 말 중 어느 것이 먼저냐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보통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한다. 말이라는 건 듣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니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 한다. 반대로, 말을 하고 생각을 한다는 건 뇌를 거치지 않은, 날 것의 독이 든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의 장점이 있다. 예컨대, 내가 최대한 긍정적으로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다. 겉으로 보면 상대에게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말을 하고 나면 '아,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구나.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이 뒤를 잇는다.
화가 난다고 그 자리에서 모든 걸 표출해버리면 99% 후회가 남는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의 정당한 분노 같은 1%의 여지는 남겨 두었다.) 일단 분노와 짜증이라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 1차적 원인이 무엇이 됐든 본인의 과오가 생기기 쉽다. 부정적인 감정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컨트롤할 줄 알면 실수를 할 확률이 줄어든다. 후회할 만한 부끄러운 행동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본인을 위해서 좋다. 한 번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으니. 모든 행동에는 마땅한 책임이 따르니 말이다.
그렇다면 분노와 짜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본인 만의 대응 혹은 해소 방법을 찾아두면 좋다. 마이웨이가 넘쳐나는 이 세상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별난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이를 갈 만큼 억울할 때도 있고, 시간을 돌려 제대로 따져 묻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 상황을 돌이켜보는 것조차 싫을 수 있다. 너무 싫다면 그냥 잊으면 된다. 잊으려고 해도 무의식 중에 계속 떠올라 자신을 괴롭힌다면 고민을 시작해라.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가장 통쾌하면서도 깔끔할까? 그 순간을 후회 없이 보내려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면 좋을까.
나는 이런 경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극도의 분노가 담긴 정제되지 않은 글을 공개하여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힐난하려는 건 아니다. (이조차 필요할 정도의 사건이라면 응당 하는 것이 맞다. 나는 운이 좋게도 아직 그 정도 스케일의 사건은 경험하지 못했다.) 화가 난 이유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그 상황을 돌이켜보게 된다. 당시 내 감정이 어땠고, 상대는 무엇을 얘기하고자 했는지. 나와 상대의 태도를 떠올려보고, 내 감정이 그 상황에서 깔끔하게 마침표를 찍으려면 어떻게 했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말이 아닌 '글'을 통해서.
글을 쓰는 행위는 감정 해소를 돕는다. 메모장에 분노의 타이핑을 하고 나면, 쓰기 전의 기분과는 확연히 다르다. 누군가의 공감을 사거나 위로를 받은 것도 아닌데, 마치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속이 조금은 풀린 기분. 처음에 이 감정을 경험했을 때 굉장히 신기했다. 작고 귀여운 마법 같기도 했다.
글 쓰는 사람에게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니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씨는 말한다. "창조적인 에너지는 권태, 불안, 긴장, 슬픔, 우울, 외로움 등 소위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서 나온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불행 모두가 축복이다. 행복할 땐 행복을 누리고, 불행하다 싶으면 글을 쓰면 되니까. 불행할수록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니 힘든 세상살이에 글쓰기는 얼마나 달가운 선물인가.
-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그렇다. 이제 화가 날 때, 그 감정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이유가 하나 생겼다. 바로 그 순간 fresh한 글감이 몽글몽글 생겨나고 있다는 것! 쉽지 않은 세상살이지만 초연하게 견뎌내는 스킬을 다져보자. 아이러니하게도 분노할 일이 없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