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전한 나에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길 버스에 올랐다.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일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피곤함을 동반한다. 이름도 뭣도 모르지만 버스에 함께 앉아 서울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이 무심한 듯 나를 위로할 뿐이다. 예전에는 버스에서 잠깐씩이라도 잠이 들곤 했는데, 언젠가부터인지 아무리 눈을 꽉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피곤함은 그대로인데 잠만 저 멀리 달아난 기분이었다. 십 분이라도 졸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니. 절망적인 아침이다,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눈으로 보면서 하기에는 체질상 멀미가 나서 할 수가 없었고, 멍하게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듣거나 생활소음을 배경으로 눈을 감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그저 그 시간에 수동적으로 존재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수년 만에 휴대폰을 바꾸면서 변화가 생겼다. 정확한 계기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쓰게 된 것이었다. 예전에는 항상 데이터가 부족해 와이파이가 없는 일상은 꿈꿀 수 없었다. 장기가입자에게 주는 데이터 리필 쿠폰을 사용하거나 무제한 요금제를 쓰는 동생에게 매달 2기가씩 얻어 쓰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출근길 버스에서도 무조건 와이파이를 연결하는데 이동 중에 연결이 끊기거나 느리면 답답해서 힘들었다. 이런 내게 데이터 무제한이라는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사실 무제한으로 바꾸면 편하고 좋을 거라는 사실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자제했을 뿐이다. 명품이 예쁜 걸 알지만 애써 관심 갖지 않으려고 했던 것처럼. 자가용이 있으면 편할 걸 알지만 뚜벅이의 장점을 생각하며 불편함을 감수했던 것처럼.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라 익숙함이라는 방패로 최대한 자족하며 살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는 출근길에 유튜브를 듣는다. 특히, 광고 없는 클래식을 듣는다. 갑자기 웬 클래식이냐. 얼마 전 티켓이 생겨 예술의 전당에서 클래식 공연을 봤는데, 가사 없는 음악이 주는 평온함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재작년엔 왠지 고리타분할 것 같았던 고전문학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면, 이번엔 고전음악이었다. 클래식하면 왠지 지루할 것 같다는 선입견에 나도 모르게 노출되어 왔고, 습관처럼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클래식을 접하고 나니 머리를 한 대 쾅 맞은 느낌이 들었다. 왜 사람들이 비용을 들여 공연을 감상하러 가는지 알겠더라.
더군다나 휴대폰을 바꾼 것과 공연을 보러 간 게 같은 날이었다. 돌이켜보니 이 날은 여러모로 타이밍이 겹친 운명 같은 하루였던 것이다. 이때 이후로 더 이상 출근길이 아쉽지 않다. 여전히 버스에서 잠이 들지는 못하지만 천재들의 음악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클래식 유튜브 댓글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었는데,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 중 가장 좋은 게 아침에 클래식을 듣는 습관이라는 내용이었다. 좋은 습관을 스스로 하나 만들어낸 것 같아 어깨가 으쓱했다. 이제야 나만의 주체적인 일과표에 출근 시간이 정식으로 합류한 느낌이 들었다.
그 총명하고 밝고 심지어는 비범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을, 주의를 기울여 자신의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전혀 주어진 과제를 하는 학생처럼 보이지 않았고, 자신만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처럼 보였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p.43
주인공이 바라보는 데미안의 모습에는 내가 원하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과제에 직면하는데, 이를 단순히 해야 해서 하는 건 재미가 없다. 그것들을 좀 더 본질적이고 주체적으로 마주하고 싶다. 주어진 과제를 하는 수동적인 학생이 아니라 자신만의 문제를 연구하는 주도적인 학자 같은 인생. 이제는 이런 인생을 살고 싶다. 긴 출근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것도 내게 주어진 하나의 과제였는데, 주도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만족스럽다.
클래식을 들으면서 마음을 달래는 출근길, 왠지 솔깃하지 않은가? 무제한 요금제라면 하루쯤 시도해보길 권한다. 왠지 좀 더 우아하고 품격 있게 하루를 시작하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 들 테니 말이다.
생활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드문 일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 와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