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 모여 시간이 된다
결혼하면 한 사람이랑 평생
같이 사는 거잖아. 엄청 큰 결심인데,
뭔가 계기가 된 순간이 있었어?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어느 한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빡-하고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누적된 경험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수년간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어, 이건 이 사람의 굉장한 장점인데? 같이 살면 이런 점에서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순간들을 퍼즐 조각처럼 하나씩 모았고, 결국 그 퍼즐을 다 맞춰보니 결혼이라는 그림이 나타났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연애를 하면서 퍼즐 조각이 몇 개 모이지 않아 완성작이랄 게 없었다. (내게 퍼즐 조각은 연애를 하면서 상대와의 행복한 미래를 떠올려보게 될 때 하나씩 생긴다.)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예상해보기도 전에 대부분의 연애가 끝났다. 혹시 오랫동안 연애했지만 결국 헤어졌다면, 아마도 퍼즐 조각은 다 모았지만 완성된 그림이 결혼이 아닌 이별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을 오래 만난 이유는 그만큼 그 사람과의 미래를 떠올릴만한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퍼즐 조각은 많이 모을 수 있었겠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결혼이 아닌 다른 그림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 그림이 서로의 인생을 위한 결론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순간(瞬間)
1) 아주 짧은 동안.
2) 어떤 일이 일어난 바로 그때. 또는 두 사건이나 행동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순간이라는 단어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눈 깜짝하는 사이'라는 뜻이다. 보통 눈 깜짝할 새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표현할 만큼, '순간'이란 무언가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짧다는 이유로 눈 깜짝할 새를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장기적으로는 '순간'이 모여서 시간이 되고, 시간이 모여서 하루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하루가 모이면 내 인생이 만들어진다.
자, 그렇다면 평생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은? 같이여서 행복한 '순간'이 많았던 사람이면 된다. 같이 있을 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드는 '순간'이 많았던 사람이면 된다. 둘이 만나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 많았던 사람이면 된다.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감정의 '순간'을 같이 느끼고 싶은 사람이면 되는 것이다. 결혼을 결정한 이유를 찾아 돌고 돌다 보니, 지금의 남자친구가 이런 순간들에 대부분 함께 있었기에 여생을 함께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혼 적령기가 되어 무심결에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작은 기적 같은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낸 대단하고, 또 대단히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겨우 1초 동안 마주친 눈빛이더라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면 그 느낌이 몇 시간이고 이어지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몇 시간씩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관계라면 그 행복도 수십 년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결혼 전후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다면 말은 달라진다.) 아직 싱글인 내가 결혼 후의 관계에 대해 섣불리 예측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저 써 내려갈 뿐이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기혼자가 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지 궁금하다. 순간들이 모여 내린 결혼이라는 결정. 과연 나는 그 선택에 만족하며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을까?
근본으로 볼 때, 삶이란 기운이 모여서 된 것이다. 오래 삶과 일찍 죽음이 그 사이 얼마나 되랴. 결국은 잠깐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