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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Sep 15. 2021

말 없는 하루

적극적으로 혼자되기


"안녕하세요."

"네, 맞아요."

"맛있게 드세요."

"하하."

"고생하셨습니다."


회사에 출근해서 딱 필요한 말만 한 날. 잠을 설쳐 피곤한 데다가, 때마침 내게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걸로 끝이었다. 본사가 아니라 인원도 몇 명 없고 나이도 제각기 다르다 보니 이런 날이 꽤 있다. 서로 침묵을 즐긴다. 각자의 볼일을 보며 스테이블한 상태를 유지한다. 순간적으로 답답함이 불쑥 등장할 때도 있지만 편한 게 더 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에 있는 말은 잠깐 삼키면 그만이다.


여자가 많은 직장에서는 수다스러움과 묘한 기싸움이 피곤하다고 느꼈는데, 남자가 많은 직장에 오니 결이 맞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말과 행동을 툭 던졌는데 탁하고 돌아오지 않는다. 스몰토크가 어렵다. 멋쩍고 재미없는 상황이 계속되면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도 이미  맞는 친구들이 있으니 노력이 한계에 금방 다다른.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과장님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재미있는 게 좋아. 얘기할 때 재밌어야 계속하게 되지. ㅇㅇ주임이랑 이야기하면 재밌어." 우리 회사에 이렇게 젊은 마인드의 과장님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할 만큼, 대화를 나누는 게 재밌는 분이었다. 절대적인 대화량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언제 대화를 해도 불편하지 않은 짧고 굵은 웃음보따리 같았다. 업무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아 멘토 비슷한 존재였다. 과장님의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화를 나눌 때 웃음이 난다는 건, 말이 통하고 유머 코드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상대가 있다는 건 풍요로운 삶의 요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내가 '말 없는 하루'를 박아두고 조용하게 있는 이유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초연한 상태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은 적극적으로 혼자가 되고 싶은 날이 있기 마련이다. 회사는 현재 내 일상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공간이고, 그곳에 속해있을 때도 평소처럼 '나 홀로'의 욕구가 샘솟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적어도 나는 주기적으로 '혼자'인 게 필요한 사람이라서 말이다.    






나는 이성인 친구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남자가 없는 환경에서 생활한 건 아닌데, 찰떡 같이 맞는 남자인 친구를 여태껏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지낼수록 '굳이' 남자일 필요가 있나 싶다. 괜히 애매모호하게 '친구와 연인 사이'의 그 무언가가 될 수도 있는 남자보다는 깔끔하게 동성인 여자가 친구로서 편한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물론 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여동생은 남자인 친구들을 훨씬 편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나의 유일무이한 남자인 친구이자 평생의 동반자가 될 사람을 찾아내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상대의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과 상대와 친하게 지내는 건 별개의 일이다. 친한 친구들 중에도 나랑 비슷한 성향이 있는가 하면, 확 다른 성향도 있다. 그러니, 나와 다름을 존중한다고 해도 그 관계에 흥미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멀어지는 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업무 환경에서 유쾌한 분위기를 위해 노력하는 건 좀 피곤하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단히 바라고 있지 않다. 원했다면 서로에게 시그널을 보내지 않았을 리 없다. 일방적인 노력은 하지 않는다. 내 신체 에너지 또한 질량 보존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내가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그 결과가 다시 내 에너지를 충전해줄 것이라고 믿을 때에 한한다. 다분히 계산적인 것, 맞다. 인생에는 끝이 정해져 있고, 그 끝은 알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행복하기 위한 일로 하루를 가득 채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을 '말 없는 하루'로 정했다.



문제는 고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사람을 찾고, 관계 속에서 안정을 얻으려 하는 데 있다. 외부에서 평안을 찾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행복한 인생을 이룬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했다.

- 우에니시 아키라, <혼자가 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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