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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Sep 20. 2021

고독을 안은 연인

고독하지 않게 만들어 주겠어!


고독을 좋아하고 고독에 대해 글을 쓰는 나를 보며 남자친구가 농담하듯 말했다. 고독할 틈이 없게 만들어 주겠다고. 자긴 고독이 싫다며 고독하지 않을 거라면서 말이다. (귀여웠다.) 이에 난 지지 않고 응수했다. 고독은 모두에게 필요한 거라니까! 고독은 슬픈 게 아니야. 자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야. 고독을 통해서 인생이 얼마나 충만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고독이 전혀 나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항상 이렇게 세뇌시키다 보니 내가 느끼는 고독에 대해 남자친구가 느끼던 서운함은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 역시 뭐든 꾸준한 게 최고다.


내가 보기에 남자친구는 고독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껴서 그렇지, 실제로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결코 외롭지 않게 보낼 줄 아는 사람이다. (6년을 만나서 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남자친구와 내가 잘 맞는 이유 중 하나도 각자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함을 알고 서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만일 각자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모든 걸 맞추려고만 했다면 이렇게 오래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를 잃는 연애는 끝이 정해져 있으니 말이다.


고독과 연애는 충분히 병존할 수 있다. 아니, 사실은 두 가지가 병존해야만 고독과 연애 모두 잘할 수 있다. 낭만적인 고독을 느낄 줄 아는 이야말로 서로가 성장하는 건강한 연애를 하기 좋다. 왜 그런지 고독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글귀를 하나 발췌했다.


고독이란 마치 배가 항구를 떠나 바다를 표류하는 듯한 외로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자신을 알 수 있고, 또 이 아름다운 지구에 존재하는 동안에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어디를 향해 가려는지 알게 해주는 좋은 기회이다.  

- 앤 먼로(미국 여성 작가)


고독은 온전히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친구를 만날 때 약속을 하고 신나게 준비해서 외출하듯이, '나'를 만날 때도 설렘을 안고 고독의 문을 두드린다. 오늘은 또 어떤 나를 만나게 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삶이 우리의 기나긴 여정이라면 고독은 물이다. 삶의 여정 속에서 관계나 업무 등 무언가에 지쳤을 때 그 갈증을 해소해주는 수단이 바로 고독이다. 특히, 성과를 위한 자발적인 자기 착취가 흔한 현대 사회에서는 스스로 지치기 전의 어느 적당한 시점에 미리 물을 마실 줄 아는 현명한 처사가 필요하다. 하루에 물을 2L를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하지 않나, 고독도 꾸준히 마셔 마음을 단단하만들어보는 건 어떠한.  

 

고독의 가치에 대해 일장연절을 했으니, 고독과 연애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연애는 애정을 토대로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일이다.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면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 반대로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면 각자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과 함께 해본다. 보통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거면 진짜 싫지 않은 이상 함께 한다. 그렇게 계속하다가 새로운 재미를 깨닫기도 한다. 일례로, 나는 회를 자주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회를 좋아한다기에 딱히 싫지는 않아서 몇 번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참치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미식가인 남자친구의 입맛 덕분에 다양한 맛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연인은 관심사가 같든 다르든 그것을 함께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각자의 관심사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 이 말인즉슨 연애를 통해 다른 사람을 알아가기 전에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리고 뭘 할 때 행복한지 깊게 고민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때, 자신의 모습에 100% 몰입해야 하므로 타인의 시선과 행동은 방해가 된다. 즉, '고독'이 곁들여져야 한다. 이미 연애를 하고 있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은 적극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연애를 시작하면 각자의 일상에서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그럴 때일수록 나만의 시간을 지켜내야 한다.        


앞서 고독과 연애를 묶어 이야기했지만, 연애를 좀 더 포괄적인 단어인 '사랑'으로 바꿀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일 테니.) 고독과 사랑은 병존할 수 있다.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와의 관계는 '나'를 지키는 고독의 시간을 기반으로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와의 간격을 적당히 유지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툼이 잦다면 서로에게 고독의 시간을 주지 않은 건 아닌지 점검하라. 풍요로운 숲을 이루는 잘 큰 나무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지 않다. 나무들은 제각기 그리움의 간격으로 아름답게 서 있을 뿐이다.

- 원재훈, <고독의 힘>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할 때, 나는 나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고독'한 시간을 필요로 하고 좋아한다. 초록색과 파란색을 좋아한다. 자연의 너그러운 품과 밤의 고요함을 좋아한다. 도서관에서 '책' 쇼핑을 즐겨한다. 낭독을 좋아하고 '잘'한다. 다이어리는 며칠 만에 접고 말지만 자유롭게 '글' 쓰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 중에 '고독'도 있는 것뿐이다. 초록색과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고요한 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특히 이곳에) 정말 많다. 하지만 고독을 좋아하는 사람은 비교적 적은 것 같다. 대분분의 사람들이 고독사, 독거노인 등 고독에 대해 부정적인 것들만 접하고는 선입견을 갖는 것이 안타깝다. 언젠가 고독 앞에 아름다운 수식어들이 붙는 게 낯설지 않은 때가 왔으면 한다.  



낭만적인 고독.
건강한 고독.
따뜻한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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