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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Aug 29. 2021

미성년의 고독

적정선은 어디일까


말 잘 듣는 첫째 딸이었던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자유'와 '고독'의 참맛을 보았다. 부모님이 학업에 관해 스트레스를 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생업에 바쁘셨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식 셋을 키우려니 돈도 시간도 남아날 리 없었다. 그렇게 생존 본능의 삶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듣고 백점 맞은 시험지를 보여드리는 것이었다. 다른 것에 도전하고 부딪히는 건 당시 내 성격과도 맞지 않았기에, 말 잘 듣는 딸이 되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교실에 앉아있는 게 당연했고 의무였다. 학교 밖을 벗어나는 일은 드물었다. 학원이나 집 정도였다. 정해진 일상을 그저 학생답게 지냈다. 이 일상을 우르르 모여 함께 공유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홀로 생각의 나래를 펼칠 시간은 적었기에, 당시 고독은 남의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살고 있으니 이보다 안전해 보이는 일상은 없었다.  


#Activity, #College student, #Green film


대학에 니 수업 시간표를 내가 다. 이번 학기에 어떤 과목을 들을지, 어떤 교수의 수업을 들을지 선택할 수 있었다. 자체 종강을 할 수도 있고 휴학도 할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마음대로 일상을 주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유가 커졌다. 주인을 따라 산책하던 강아지가 갑자기 가슴 줄 없이 잔디밭에뛰놀게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익숙한 바운더리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줄에 묶여있을 때보다 훨씬 큰 자유를 얻었으니 이리저리 액티브하게 움직인다. 숨이 찰 때도 있고 바닥에 뻗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 그렇게 했다.


내가 선택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

세상 심플한 logic이다.


다만, 진로에 대한 고민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내신을 따기 쉬운 일반고를 갈지, 분위기가 좋은 특목고를 갈지. 두 번째는 어느 대학, 어떤 과에 지원할지였다. (수능 점수에 맞춰 전공을 다소 쉽게 선택한 게 지금 생각했을 때 가장 아쉬운 결정 중 하나다.) 세 번째는 직업이었다. 어떤 일을 하면서 살지. 성향과 가치관, 능력을 모두 고려해야 했다. 이를 고민하는 과정은 외로웠다. 누군가에게 묻는다고 정답이 나오는  아니었다.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에 선택과 책임의 크기가 명확했고, 그래서 두려웠다.


인생에 조력자가 있을 순 있지만,
내 인생을 누군가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의 결정이 지금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여전히 불확실한 것 투성이다. 과거와는 다른 선택을 해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으면서도, 그때의 선택이 내 삶에 미친 긍정적인 부분들을 생각하면 쉽지 않다. 성인이 되어 이렇게 십 년 가까이 살아보았는데도 어렵다. 경험을 통해 세상을 좀 더 알게 된 게, 오히려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은 하나의 길을 걸어오셨고 자식은 내가 처음이었으니 진로에 대한 조언은 서툰 게 당연했다. 내 선택을 지지하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내가 직접 경험해본  많아야 두 개의 job이다. 예비 남편이 경험한 길을 합쳐도 아직까지는 다섯 손가락을 꼽기 어렵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은 이토록 제한적인데, 미래의 아이가 편견 없이 다양한 진로를 알고 선택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도와주어야 ? 그리고 그 고독한 길을 인간으로서 당연한 과정이라 여기며, 자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당당하게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 하려면 어떻게 서포트해야 할까. 

 

요즘은 자유와 고독을 맛보는 나이가 훨씬 어려진 것 같다. 스마트폰을 통해 각종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미성년의 행동반경이 넓어졌. 하지만 가치관이 한참 정립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미성년에게 빠르게 넘쳐 나는 정보는 독이 될 있다. 또한 항상 다른 사람들과 (이제는 사물까지도) 커넥팅 할 수 있는 환경에서, 반대로 준비되지 않은 고독은 그들에게 더욱 무겁게 다가올 것이다. 과연 성년이 되기 전 자유와 고독을 얻는 건 축복일까 재앙일까.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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