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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Oct 07. 2021

주기적으로 마음에 공급해야 하는 것

뇌에 산소 공급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답답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좋아하는 초콜릿바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무엇이 내 기분을 다운시키는지 찾아내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먹고 놀며 뒹굴거리는 시간이 지속될 테니 말이다. 이 시간을 무의미하다고 칭한 이유는 마음 어딘가에 있는 묵직한 돌덩어리를 치우지 못한 채,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맛있게 먹고 행복하다면 의미가 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행복하다면 이 또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요 며칠은 그렇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임에도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책이었다.



나는 책벌레라고 불릴 만큼 대단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마음대로 골라 읽는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됐고, 그 이후로 도서관을 다니며 책 쇼핑을 즐겨했다. 도서관을 갈 때마다 이마트 500원짜리 노랭이백을 꼭 챙겼다. 그러고는 내 아이디뿐만 아니라 아빠, 동생 아이디까지 끌어모아 책을 빌려왔다. 경제적인 부담이 전혀 없는 쇼핑이라니, 무거운 이마트 장바구니를 들고 얼마나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른다. 보통 대출 기간을 연장시켜 3주간 수십 권의 책들과 함께했다. 빌린 책을 항상 다 읽지는 않았다. 목차나 서론을 보고 느낌이 좋아서 빌렸지만, 읽다가 더 이상 이 책에 궁금한 게 없어지면 과감하게 덮었다. 예전에는 책을 펼치면 무조건 끝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몇 번을 다시 태어나 책만 읽다간다고 해도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책들이 있다. 지금도 이곳의 작가들을 통해 책은 계속 생겨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종이책만을 고집하던 나는 우연히 한 독서 공모전에 급히 참여하면서, 한 달 동안 e-book을 이용하게 되었다. 여러 권의 책을 편리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올 초부터 태블릿 크기만 한 이북리더기를 봐오긴 했는데, 굳이라는 생각에 계속 도서관을 다녔다. 그러다 e-book을 한 달 동안 이용하게 되었고, 기존의 책들을 반납한 후로는 아직까지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책이 없었다. (책장에 있는 책들은 이미 내 관심을 한 번 이상 받았던 아이들이라 나는 새로운 걸 원했다.) e-book은 리더기가 없으니 휴대폰으로 봐야 했다. 밖에서 휴대폰으로 책을 보는 건 상상 이상으로 편리했다. 친근했고 가벼웠다. 하지만 집에서 책을 읽는 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집에 오면 나는 휴대폰을 멀리 하려고 하는 편이다. 바깥세상을 다닐 때에는 의도치 않게, 마치 내 장기 중 하나인 것처럼 휴대폰을 고이 모셔야 하니, 집에서 만큼은 벗어나길 원했다. (물론, 집에서도 필요에 의해 휴대폰을 완전히 꺼둘 순 없지만 화면을 바닥으로 하고 최대한 저 멀리 두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모순이 생겼다. 집에서 휴대폰을 멀리 두려는 행위와 휴대폰으로 책을 봐야 하는 행위가 충돌했다. 집에서 책을 펼치고 싶은데, 휴대폰을 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독서 시간이 부쩍 줄었고, 일상이 빈곤해진 것이다. 한동안은 브런치 글쓰기에 몰입하느라 캐치하지 못했는데, 계속 내 안에 있는 것을 쓰려고만 하다 보니 소진된 느낌이 들었다. 내 몸과 마음이 애타게 활자 공급을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분이 안 좋았던 원인을 알게 된 나는 고민도 없이 이북리더기를 구매했다. 어차피 계속 눈여겨봤던 제품이 있었고, 구매 금액이 내 일상에 지장을 줄만큼 어려운 살림은 아니니, 지금까지 고민해온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 기대된다. 내일 배송되면 주말부터 쓸 수 있겠지? 혹시 배송이 늦어질 수 있으니 김칫국은 자제해야겠다. 음, 오늘은 내 감정이 어두웠던 이유를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해결책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는 것에 축배를 들어야겠다.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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