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편의점 문을 열자 알바생의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대답을 할까 머뭇거리던 나는 약간 고개를 숙이고 코너를 돌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왜 이러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최근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일주일 만에 밖으로 나온 거 때문에 그러는 건가? 평소에도 대인기피증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고개를 기울여 힐끔 알바생을 쳐다봤다. 덥수룩한 머리를 기른 앳된 얼굴의 남자. 듬성듬성 올라온 여드름을 보면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사람은 사회 동물이라고 하던가? 인터넷에서 그런 말을 들은 거 같다. 대인기피증이 생긴 이유는 아마 사람을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서 일 거다. 애초에 처음부터 버려진 인생이다. 사람을 좋아할 수가 없지.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이젠 원망하지 않는다. 자아가 생길 14살이 됐을 무렵 혼자라는 걸 자각했으니까. 부모? 그게 뭔데. 태성이 그런 건지 가지고 있지 않은 걸 탐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서 부모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전에는 좀 미워하긴 했다.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하니까. 지금은 포기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게 제일 어려운 거더라. 제대로 학교도 나오지 않았으니 내 주제에 무슨. 그런 걸 꿈꿀 자격조차 없었다.
피폐한 얘기는 그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던가. 우울한 얘기만 하니까 더 우울해지는 기분이다. 때마침 뱃속에서 개소리 좀 그만하고 밥 좀 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그래. 밥 먹으러 왔으면 얌전히 밥이나 먹으면 된다. 오늘 메뉴는 뭐가 좋을까. 새로 출시된 도시락에 눈에 들어왔다. 구성이 알차다. 소시지에 치킨, 떡갈비까지 있네. 저 정도면 나한텐 진수성찬이다. 하지만 구성보다 중요한 건 역시 가격이다. 바코드 옆에 적힌 숫자를 읽었다. 6... 6900원? 이건 좀 아닌데. 거의 7천 원에 필적하는 금액. 남들에겐 밥 한 끼 먹는 것보다 적을지 몰라도 내겐 아니다. 내 잔고는 14780원. 7천 원이면 거의 전재산의 절반이다. 저걸 두 끼로 나눠 먹을 수 있을까? 지금 내겐 그 정도의 인내력이 남아있지 않다. 조금만 먹는다고 하나씩 집어먹다가 결국 그릇을 깨끗이 비워버리겠지.
하는 수 없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삼각김밥. 역시 싸면서 배 채우기 좋은 건 이쪽이지. 근데 가격이 1200원? 얼마 전에 먹을 땐 1000원이었던 거 같은데. 그 사이에 20퍼센트나 가격을 인상하다니. 하여튼 나라에 도둑놈들이 너무 많다. 이러면 서민은 뭘 먹고살라고. 뭐? 삼각김밥 사 먹을 돈도 없으면 나가 죽으라고? 엿이나 먹어라. 나는 서민 중의 서민이다. 부모 없는 천애 고아가 나라 탓하는데 보태준 거 있냐. 그렇다고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삼각김밥을 하나 챙긴 나는 매일 먹던 가장 싼 컵라면을 하나 집었다. 삼김에 컵라면이면 충분하지. 이렇게 자주 먹으면 영양실조에 걸린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내 몸은 태생적으로 튼튼한 모양이다. 일주일 내내 이렇게 처먹고 쓰러지지도 않는 걸 보면.
일용할 양식을 챙긴 나는 말없이 계산대 위에 음식을 올려두었다.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알바가 고개를 돌린다. 뭘 보고 있었는지 입가에 미소가 만연했다. 기분 좋은가 보네. 나는 이제 뭘 봐도 재밌지가 않던데.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이라 하던가. 바퀴벌레만 동침하다 보면 그런 건 없다. 그냥 하루하루가 벌레와의 전쟁이지.
"2200원입니다."
"네."
대답은 짧고 굵게. 리더기에 꽂힌 카드에서 돈이 물처럼 빠져나갔다. 항상 느끼는 건데 버는 건 어려운데 쓰는 건 참 쉽다. 돈이 다 그렇지 뭐. 나무젓가락을 챙긴 나는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식사 준비를 마쳤다. 뜨거운 물이 들어간 컵라면은 하얀 김을 줄기차게 뽑아냈다. 아 배고파 죽겠는데. 초급속 컵라면은 없나? 물 부으면 30초 만에 익어버리는. 과학적으로 힘들다는 건 안다. 그냥 배고파서 쓸데없는 망상을 했을 뿐이다. 그래도 내겐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일단 기본적으로 맛이 보장된 것들이라 아무리 먹어도 입에 들어오면 맛있긴 하거든. 3분 땡. 누구는 5분은 기다려야 된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거 없다. 배고파 죽겠는데 언제 2분이나 기다리고 앉아있어.
"잘 먹겠습니다."
습관처럼 혼자 인사말을 중얼거린 나는 삼각김밥을 한 입 베어 물고 라면을 집었다. 면발 꼬들한 거 봐라. 그래도 입에 한가득 베어 물었다. 입 안에서 터지는 김밥과 라면의 조화. 이게 천국이지. 대체 라면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인간적으로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 분명 라면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테니. 싸고 맛도 좋은데 간편하기까지 한 음식이 어디 있나. 근데 평화상이 맞나? 노벨...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쓸데없는 생각 금지. 3초도 안 돼서 깨트릴 약속이지만 누군가 그랬다. 시작이 반이라고. 그러니 나는 절반은 성공한 거다. 나머지 절반을 성공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맛있어요?"
정신없이 음식을 들이켜는데 옆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냥 무시하고 라면을 집었다. 나한테 물은 질문이 아닐 테니. 내가 누군가. 바퀴벌레의 영원한 친구이자 곰팡이를 달고 사는 남자다. 머리도 안 감고 후드를 뒤집어쓰고 나왔다. 나는 모르겠지만 아마 냄새도 나지 않을까. 그래도 심하진 않겠지. 이틀에 한 번 샤워는 하니까. 어쨌거나. 누군가 나한테 말을 건다는 건 답변지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여태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
"저기요. 그거 맛있냐고요."
그런데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이제 보니 누군가 테이블 앞에 서있었다. 어라. 방향이 내 쪽을 향하고 있는 거 같은데. 슬며시 고개를 들자 금발의 여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깨달았다. 설마 나한테 한 말이었어? 그녀의 모습을 보니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 번이나 탈색했는지 색이 다 빠진 금발의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오고.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화장은 그녀의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트렌디한 스타일도 그렇고. 한마디로 예쁜 사람이었다. SNS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인플루언서 느낌이라고 해야 될까.
나는 대답도 못하고 가만히 그녀를 쳐다봤다. 방금 뭐라고 물어봤지? 꺼지라고? 비키라고? 아닌데. 그런 심한 말을 들었다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편의점을 탈주했을 테니까. 기억을 되새긴다. 저기요. 그다음엔? 그거. 그다음에는? 맛있냐고요. 설마 내가 먹고 있는 음식 맛을 물어본 건가? 왜?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일단 대답은 했다.
"맛있습니다."
여자 앞에서 말하는 게 오랜만이라 첫음절에 삑사리가 났다. 딱히 쪽팔리진 않았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익숙하거든. 보통은 이 부분에서 비웃던데. 여자는 웃지 않았다. 삑사리난 거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라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보던 여자가 팔짱을 꼈다. 그리곤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비유하자면 뭐랄까, 수능 마지막 문제에서 막히면 저런 표정을 짓는다고 하던데. 물론 나는 모른다. 수능을 본 적이 없어서.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식어가는 라면을 쳐다보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