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보다 먼저 설명해야 하는 일들
“도서관은 조용해서 좋으시겠어요.”
그 말이 얼마나 조용히 사람을 오해하게 하는지
나는 매일 그걸 확인하며 일한다.
도서관에서 조용한 건 책뿐이다.
사람은 다르다. 말이 있고 말보다 더 많은 뉘앙스를 남긴다.
그리고 그 뉘앙스를 조용히 감당하는 사람이 바로 사서교사다.
나는 교과가 없다.
그 말은 곧 학교에서 내 수업이 수업으로 분명하게 자리 잡기 어렵다는 뜻이다.
학교마다 해마다 편성 방식도 시수도 제각각이다.
어떤 해엔 전 학년을 형식적으로 한두 차시만 돌고
어떤 학년은 전담교사가 없다는 이유로 빈 시간을 내가 채우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과 책을 중심으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꺼내고 감정을 읽는다.
하지만 그 수업은 교과서에 없다는 이유로
‘없어도 되는 수업’처럼 취급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수업 중임에도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보내는 경우가 흔하다.
“얘들아 도서관 가서 책 빌리고 와.”
나는 수업 중인데도 갑자기 아이들이 도서관 문을 연다.
“너희 지금 수업 중 아니야?”
그러면 아이들이 말한다.
“선생님이 도서관에 가서 책 빌리고 오라고 하셨어요.”
나는 분명히 수업 중이다.
그런데 도서관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그 수업은 언제든 방해받아도 되는 일처럼 여겨진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어도
담임 선생님이 수업 중에 아이를 보내 책을 빌리게 하고
수업 중인 도서관 문이 열리며
다른 학년 아이들이 조용히 혹은 당당히 들어오기도 한다.
급하게 책을 찾으러 오는 선생님도 있다.
도서관은 학교의 공유 공간이고
나는 그 공유 공간 한가운데서 수업을 한다.
점심시간 도서관은 하루 세 타임 각각 50분씩 운영된다.
1타임은 1·2학년 2타임은 3·4학년 3타임은 5·6학년.
학년별로 분위기도 흐름도 다르고
그 속에서 나는 매일 3교시 분량의 수업을 치르듯 에너지를 쏟는다.
쉬는 시간도 없이 이어지는 점심시간 동안 말이다.
그러다 보면 가끔 학부모들이 묻는다.
“사서 선생님도 수업하세요?”
학교 행사로 아이들이 적을 때면
“도서관은 조용해서 좋으시겠어요.”라는 말도 들린다.
누군가는 “선생님 너무 바쁘시네요.” 하고 웃으며 지나간다.
그 말들은 모두 틀린 건 아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몰려오고
책을 찾고 묻고 기다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움직인다.
하지만 때때로
나는 그냥 조용한 곳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말들 안에는 나의 감정도 노동도 집중도 없다.
자원봉사자분들이 와주시는 날은 고맙다.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때때로 예상하지 못한 장면 앞에서 내가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오늘 ○○ 엄마 오신다 했는데 왜 안 왔어요?”
자기 아이는 엄마가 도서관에 있을 거라 믿고 왔다.
하지만 갑자기 사정이 생겨 못 오셨고 그 상황을 내가 설명해야 한다.
그 말이 목까지 올라오다가 멈춘다.
또 어떤 날은 아이 하나가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가 봉사자로 서 있는 순간
눈빛이 반짝이고 서로 너무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그건 자연스럽고 예쁜 장면이다.
문제는 그 장면을 다른 아이들도 함께 지켜보고 있다는 데 있다.
누구도 잘못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균형을 맞춰야 한다.
누군가는 환영받고 누군가는 조용히 책을 넘기는 공간에서
모든 아이가 똑같이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줘야 하는 사람.
그래서 나는 말없이 긴장하게 된다.
누구를 탓하지도 서운해하지도 않지만
내가 감정을 조절하고 침묵 속에서 역할을 분리하는 데 쓰는 에너지는 결코 작지 않다.
게다가 출장이나 자녀 돌봄 휴가처럼
다른 교사들이 누리는 일상적인 권리조차
사서교사에겐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도서관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하니까요.”
그 한 마디면 모든 사정, 피로, 감정은 생략된다.
그리고 나는 또 조용히 그 자리에 남는다.
나는 사서교사다.
교과는 없지만 책으로 아이들과 만나고 공간을 지키고 사람을 응시한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오늘도 문을 연다.
책보다 사람이 더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수업 중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아이들을 살피고 있다.
도서관의 문은 그렇게 하루하루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