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삼킨 말들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했던 이유

by 주소영

“선생님, 오늘 보고회인데요… 제가 안내를 맡았는데, 그거 좀 대신해주실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건 내 업무가 아니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오늘 우리 애 글짓기 대회 주장하는 글을 써야 해서요. 제가 안내를 못 해요.”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거절하자, 곧바로 말했다.

“그럼… 이거 좀 써주실래요?”


나는 싫다고 했지만

그 대화는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게 흘러가

결국 그 글을 써주게 되었다.

엉겁결이었다.

싫다고 했지만 어느새 일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얼마 후 그 선생님이 찾아왔다.

“우리 애 상 받았어요. 진짜 고마워요.”


그 ‘고마워요’가 그렇게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선생님이 다가왔다.

선생님은 내가 발령 오기 전 도서관 업무 담당자였다.

올해는 OO교육 담당이었지만, 여전히 도서관 관련 일처럼 이것저것 개입하고 있었다.


“선생님, PPT 할 줄 아세요?”


“네, 뭐 간단한 건요.”

그 말 한마디로 며칠 밤 9시까지 학교에 남아 PPT를 만들었다.

이게 도서관 업무인지 무엇인지도 불분명했지만

그저 도와달라는 말에 응했다.

자료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작업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교장실로 불려 갔다.


“네가 뭔데 검토를 해?”


그 말이 그대로 얼굴에 박혔다.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나는 욕을 먹었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다른 선생님들을 통해 들었다.

관리자가 며칠 전부터 계속 중간보고를 하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버티다가 완성본을 들고 갔고

그 자리에서 나와 함께 검토했다고 말한 사실을...


그저 부탁을 받고

호의를 베풀었을 뿐이었다.

검토자도 아니고 책임자도 아니었는데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어 그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지고 싶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아무 말 없이 울기 시작했다.

숨을 몰아쉬며 대성통곡이 이어졌다.


그 상황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화가 목구멍까지 차 있었지만 꺼낼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먼저 말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선생님..”


그 말을 뱉는 나를

나 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욕은 내가 먹었고

따지려고 전화를 건 것도 나였는데

위로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니...




신규라는 이유로

나는 책임도 없이 끌려 들어갔고

욕을 먹었고

검토자 역할까지 떠안았고

끝내는 울고 있는 사람을 달래게 됐다.


그날 밤

내가 왜 그 말을 했는지

진심으로 기가 막혔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참 착하게 살아보려 애쓰던 사람이었다.

어디까지가 내 일이고 어디부터가 남의 일인지

배우는 중이었던,

그저 서툰 신규였다.


이젠 안다.

모든 부탁에 ‘예’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싫다’고 말하는 것도

내 몫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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