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무너짐
조금 나아졌다고 믿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적어도 그때처럼 사라지고 싶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나름대로 괜찮아 보였고
사람들도 그렇게 말해주었고
내 표정도 예전보단 조금 나아 보였으니까
그래서 정말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책을 정리하던 손끝에서
작은 먼지를 훔치던 그 순간
나는 다시 무너졌다.
기억도 없고 상처도 없는 평범한 순간이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숨이 막혔다.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는데
아무도 내게 상처 주지 않았는데
그 순간 나는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던 그 시절로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줬던 그 방 안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을 감으며 사라지고 싶었던 그때로
나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돌아가고 있었다.
버텼던 줄 알았다.
견뎠던 줄 알았다.
지나온 줄 알았다.
그런데 마음은 종종
가장 익숙한 고통을 다시 찾는다.
몸이 아플 땐 약을 먹지만
마음이 아플 땐
그 아픔에 스스로를 다시 던져버리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나를 벌주고
나를 미워하고
나를 부숴버렸다.
왜 이렇게 자주 무너지는 걸까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걸까
나는 나를 붙잡고 물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제는 조금 단단해졌다고 믿었는데
왜 자꾸
다시 돌아가려 드는 걸까.
무서웠다.
나조차도 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오늘은 괜찮은데
내일은 또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게 평온해도
단 한마디 말에
단 한 장면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두렵게 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젠 좀 나아진 것 같다고
요즘엔 예전보다 밝다고
얼굴이 펴졌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러길 바랐다.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밝은 얼굴 뒤에
아직 무너지지 않은 울음이 숨어 있다는 걸.
밤이면 더 또렷해졌다.
조용한 방 안
꺼진 불빛
숨죽인 집 안에서
나는 나를 안았다.
울지 않으려 애썼고
무너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숨을 참다가
끝내 터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사라지고 싶었던 나
말 한마디조차 꺼내기 어려웠던 나
아무도 없는 공간에 홀로 주저앉아
손을 쥐고 있던 그 아이처럼
나는 또다시
무너졌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나는 내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고
그 어둠이 얼마나 깊고 질긴지 알고 있었고
그 안에서 얼마나 아팠는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돌아갈지도 몰라
무너질지도 몰라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또 찾아올지도 몰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나를 껴안을 수 있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다르다.
나는 다시 걸어 나올 것이다.
아무리 깊은 어둠이라 해도
나는 다시
나를 안고
눈을 감고
버텨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