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책임
도서관 문을 조금 일찍 닫은 날이었다.
아이에게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고
나는 부랴부랴 조퇴를 신청했다.
운영 중단 안내도 했고 책 정리도 가능한 만큼 마무리했다.
문을 닫은 시각은 오후 3시 10분.
정규 운영 시간보다 겨우 50분 빠를 뿐이었다.
다음 날 들려온 말은 이랬다.
“어제 도서관 왜 닫혔대요?”
“도서관 원래 그렇게 일찍 문 닫나요?."
학부모 민원이라고 관리자는 말한다.
'선생님 , 무슨 일 있으셨어요?’라는 질문은 없었다.
그저 ‘문이 닫혔다’는 사실만이 중요했을 뿐...
학교도서관의 운영 시간은 명확하다.
나는 매일 오후 4시에 문을 닫는다.
그건 원칙이고 공지된 내용이다.
그 시간에 문을 닫는 것에 대해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정시에 닫으면 조용하다.
하지만 그보다 단 1시간 아니 30분만 빠르면
사람들은 말없이 불편해하고
그 불편은 곧 나의 책임이 된다.
사정을 설명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굳이 누가 묻지 않아도
나는 이미 불친절한 운영자 책임감 없는 관리자처럼 비친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한다.
학교도서관은 1인 운영 체제이다.
갑자기 자리를 비우게 되는 날이면
나는 혼자 ‘누가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공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도움이 필요한 날엔
학부모 자원 봉사자나 내가 평소 친하게 지낸 사람들을 떠올려야 한다.
“혹시… 그날 잠깐만 도서관 열어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요....
이 부탁은 매번 조심스럽다.
미안한 마음에 몇 번이고 메시지를 쓰다 지운다.
공적 자리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나는 학부모 자원봉사자나 개인적 인맥에 의존한다.
그런 부탁은, 결국 내가 수소문해야 하는 일이다.
공적인 구조는 없고
남는 건 사람의 눈치, 사람의 마음.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결국 나는 문을 닫고,
그 책임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남는다.
아파도 사정이 있어도,
될 수 있으면 자리를 지킨다.
문을 닫지 않기 위해
사정을 미루고 감정을 덮는다.
엄마인 나를 미루고
사서교사인 나를 앞세운다.
도서관은 매일 열려 있지만
나는 점점, 안에서 닫혀간다.
문이 닫히면 불편해지는 건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고
그 사람은 항상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