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ffloresence> Virgil Abloh
전시정보
제목 Efflorescence
장소 Galerie Kreo in Paris (31 Rue Dauphine, 75006 Paris, 프랑스)
가는길 메트로 오데옹(Odéon)역 도보 10분 / 버스 58번, 70번 도보 5분
기간 2020.1.15-4.10 (화-토 11:00~19:00) 일,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작가 버질 아블로 (Virgil Abloh)
2020.1.17 금요일.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파리에서의 첫 미술전시관람을 하게되었다. 사전 조사도 없이 당일 아침 파리로 나가는 집 앞 역에서 본 에코백을 이정표삼아 방문한 갑작스런 관람이었다. 심지어 관람이 아닌 굿즈구매가 목적이었던 방문 ㅎ
아직 파리의 길거리 거리도 익숙해지지 않았던 터라, 걸음으로 향한 모든 곳들의 그림들을 놓치지 않으려 눈과 사진으로 담기 바빴다. 낯선 공기와 풍경들. 그 새로움들이 반가웠다.
낮에는 볼 일이 있는 친구를 따라 샤뜰레-르알(Châtelet - Les Halles) 역으로 향해 그 주변과 마레지구를 눈에 익혔다. 도착전에 표시해 두었던 프라이탁이 있는 편집샵을 기준으로, 근처 작은 광장의 인파들과 오래된 서점,가게들을 구경했다. 발길이 닿는 곳들을 허락하며 걷다보니 눈앞에 놓인 퐁피두센터의 글자. 두근.... 예상도 못했던 만남이라 이때 파리가 좁다는 것을 조금 체감할 수 있었다. 이날은 '처음뵙겠습니다'라고 가볍게 인사만 하고, 남은 많은 날 중 또 보기를 설렘으로 약속하며 본격적으로 마레지구를 걸어다니며 골목 골목을 탐험했다.
아침에 사진으로 남겨둔 에코백의 글자를 따라, 마레지구에서 오데옹역으로 이동했다. 역에 도착해서 출구로 나오니 노을은 어디가고 거리에 밤이 내려앉아 있었다. 프랑스에 도착했던 시간도 밤이었지만, 해가 진 시간까지 파리 한가운데 서있으니 기분이 들떴다. 아마 내려앉은 어둠만큼 거리에 가득찬 조명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도를 따라 갤러리를 향해 어둑해진 골목으로 발을 움직였다. 둘 다 초행이었던 그 길은 내가 낯선곳에 왔다는 사실을 더 체감하게했다. 갤러리의 위치를 찾아보기위해 휴대폰으로 급하게 해본 사전조사에는, 갤러리가 파리와 런던. 이렇게 두군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파리 지점의 어느 곳에도 에코백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생각치도 못했던 전시와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 예상치 못한 것들이 주는 설렘은 커다랗게 느껴진다.
㉠ 전시 많이다니기
㉡ 페이퍼 모으기
하나의 의례처럼,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데스크에 있던 팜플렛을 찾아 집었다. 프랑스에 온 기분을 내고자 불문버전의 종이를 손에 들고, 문득 여행 둘쨋날부터 이번 여행의 목표 중 이 두 가지의 시작을 끊었군! 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손에 쥔 종이에서 읽히는 것은 갤러리 로고와 전시제목, 그리고 작가이름 뿐이었지만..(비상용으로 집었던 영문도 똑같긴 매한가지..)
팜플렛은 힘을 주지 않고 전시에 관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담았다는 인상이었다. 갤러리 자체에서 갖는 팜플렛 레이아웃이 있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전시와 작가가 갖는 색보다 '갤러리의 전시'라는 인상이 더 돋보였다. 작은 종이한장에 앞뒤로 아래의 정보들이 정리감있게 들어가있다.
전시명-작가명-전시포스터-갤러리로고-전시기간-오프닝기간*-휴관일-관람시간-전시포스터-전시소개-작품소개 (*이 두가지는 런던, 파리가 서로 달랐는데 이를 구분해서 표기한 것을 보고 속으로 물개박수쳤다.)
국내 곳곳의 작은 전시들을 다닐 때마다 아쉬웠던 것이 전시장에 비치된 팜플렛이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전시를 준비하다보면 전시의 가장 중요한 내용물인 작품을 전시공간에 설치하는 것만해도 신경쓸 것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을 수록 업무여러개가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그 안에서 우선순위가 생겨버려 이런 디테일을 신경쓰고 준비하기엔 에너지가 모자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여는 전시마다의 새로운 디자인을 맞춰 만들자니 여러가지 소모되는 추가비용이 들고, 하나의 폼으로 잡게되었을 때의 전시의 색을 해칠 걱정도 무시할 수가 없다.
이렇게 고민해왔던 내용과 이 전시의 팜플렛을 놓고보니, 그럼에도 국내 작은 전시장에서 이런 괜찮은 팜플렛을 더 자주 보고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힘이 닿지않아 목록에서 놓아지는 일들은 아쉽다.. (주세요. 저에게. 일을..)
전시팜플렛과 같은, 곳곳의 페이퍼들은 자간·행간등의 텍스트 배열, 종이면의 레이아웃, 전시공간과의 매치 등 여러모로 공부가 많이 되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시팜플렛은 전시기간에만 전시장에 비치된다는 점에서 한정성이라는 가치도 있다고 볼 수 있고, 다른 페이퍼들도 예외는 아니다.
텍스트를 이해하기는 진즉 포기하고 온터라, 팜플렛을 가방에 넣고 공간에 놓인 작품들과 전시를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덕분에 나에게 익숙한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맥락의 관람을 맘껏 경험 할 수 있었다.
갤러리 문을 열면 보이는 전시전경
들어가서 오른쪽에 보이는 작품. 처음에는 갤러리에 따로 소장중인 가구인 줄 알았다.
전시장을 몇번 돌고 나서야 이것들도 이번 전시의 작품인 것. 그리고 가구와 관련된 전시임을 알았다.
ⓐ 구멍을 집중해서 보다가 전체를 보니 이거 설마 의자..? 하게 된 작품
ⓑ 의자와는 반대로, 이 작품을 보고는 '이게 왠 콘크리트 구조물이람' 하고 생각했다.
콘크리트 구조물이라고 느낀 작품 ⓑ에, 위의 의자 ⓐ를 토대로 '가구'라는 조각을 덧붙이고 여기에 놓인 가구들이 왜 이런 모습을 하게되었을까 생각하니 콘크리트 구조물의 형태를한 가구 라는 퍼즐조각이 맞춰졌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작품들이 거리에 서있는 건물의 가장 바깥쪽 부분의 일부를 떼내온 조각들처럼 보였다. 일정한 간격을 갖고 뚫려있는 원통형 구멍, 지그재그의 경사면은 건물 구조에 쓰이는 구조물의 형태들과 대조되어 가구의 큰 쉐입을 이룬다. 스프레이로 뿌려진 가구의 옆면은 건물 외벽에 가득한 '그' 그라피티. 이 조화들이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재치있게 조화로운 규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앉거나 눕기에는 불편하겠다라고 느꼈다. 이것에 어울릴 푹신한 담요나 방석 따위는 어떤 모양일까. 문득 이 가구들의 모습에서 어릴적 갖고놀던 레고의 모습이 떠올랐다. 레고세상의 사람에는 레고로 만들어진 가구, 집이 당연하고 어울리지만 그것을 실제로 갖고늘고있는 내 손이나 발은 레고를 밟았을 때 그 딱딱함이 그대로 전해져 느낀다. 그런 이질감과 동시에 이질감을 뛰어넘은 느낌이었다.
갤러리 한 쪽에 놓인 버질 아블로의 작품들을 관람하고, 데스크를 마주보고 왼켠에 있던 공간으로 들어가보았다. 그곳에는 가지각색의 조명들이 있었는데, 상설전 혹은 갤러리 소장품처럼 보였다. 조명덕후인 나는 넋을 놓고 관람하다가 마음에 드는 몇장의 사진도 찍었다.
스탠드의 구조에 눈이 갔다. 스테인 갓이 조명에 맞게 반구로 덮인 것, 조명에 이어지는 원통이 얇은 쇳대에 고정되어있는 것, 그게 위아래로 움직이며 높낮이를 바꾸어 모양을 달리할 것 같은 구조(만질 수가 없어서 확인할 수 없었다ㅜ),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떨어져 경사진 스탠드의 받침대 부분을 따라가는 눈이 즐거웠다.
갓...갓.....그 '갓'...
유독 어두웠던 칸. 이 칸을 보고 내가 지금 보고있는 컬렉션의 주제에 혼란을 느꼈다.
갓의 넓게 퍼진 면이 좋았다. 또로로 내려온 스위치 줄도... s2
저 금색 목부분의 파이프가 나무재질이었다면+받침대가 어두운 컬러였다면 더 내 취향에 맞았을 것 같다.
이렇게 전시로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음날 오전 아침을 준비하던 도중 어제 다녀온 전시에 대한 포스팅이 네이버디자인에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이런 우연이.!
관람 시 얻지 못했던 전시에 관한 세부적인 정보와 버질 아블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이 포스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위 포스팅과 찾아본 자료들에 의하면, 버질 아블로는 12년 '오프화이트'라는 의류회사를 설립한 대표 디자이너이자, 18년부터는 루이비통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를 겸임하고있는 패션디자이너라고 한다. 이번 Kreo 갤러리에서 공개한 '콘크리트 가구'들은 19년 11월에 진행했던 이케아와의 협업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케아와 버질아블로의 협업으로 탄생한 '마르케라드(MARKERAD)' 콜렉션은 그의 팬 뿐만 아니라 많은 소비자들을 열광시켰다고 한다. 패션외에도 세계적인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국내에서는 작년 5월 대림창고에서 디제잉 공연을 열었다고 한다.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는 평을 받고있는 사람인만큼, 올 4월 10일까지 파리에 머무를 계획이라면 버질 아블로가 누군지 모르더라도 이 전시를 봐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처럼.!
신기하기도 얼떨떨하기도 하다. 이렇게 유명하다는 사람을 모르고있었다니 동시대사람이 맞나 싶기도 하고, 미디어가 아닌 개인적인 경험을 계기로 알게 된 사람이라 더 반갑기도 하면서, 전시 굿즈. 그러니까 에코백이 이끈 인연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본주의 시대의 보다 높은 수익을 위한 자본의 마케팅에 걸려든 평범한 소비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얽혀져 버렸다.
하루의 반도 되지않는 2시간 가량의 관람이었지만, 관람 전부터 후까지의 경험이 모여 더 풍성하고 총체적인 하나의 경험으로 이뤄졌다. 한국어가 당연하지 않은 곳에서의 전시관람은 나에게 막막함을 안겨주었지만, 작품이 품고있는 공기의 온도와 언어에서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짜피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고 그 해석은 나의 몫이니까. 앞으로 파리에서 만날 여러 전시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감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나를 이 전시로 이끈 에코백은 현재 150파운드의 가격으로 해외거래사이트에 올라와 있다.
자료출처 |
Galerie Kreo https://www.galeriekre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