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krsnrn Dec 27. 2019

건강 느끼기

몸으로부터 느낀 건강

죽는 줄 알았다. 올해 12월은 장염이 날 맞이했다. 작년 가을에도 불쑥 찾아오더니..일요일에 감기가 거의 떨어지나 싶었는데 새벽에 몸이 불편해서 자다 깼다를 반복했다. 나는 그게 바닥이 딱딱해서인줄로만 알았다.

일어나 보니 그 문제가 아니라 내 장(腸)의 문제였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땐 속이 메스껍고 숙취마냥 바닥이 빙글빙글 돌았다. 내 몸에 열이 그렇게 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월요일 아침이라 병원에는 그런지 학교, 직장에 가기전에 들른 사람들로 북적였다. 엄마가 쉬는 날이라 부탁해서 먼저 접수를 하고, 나는 10분정도 늦게 집에서 출발했다. 그랬는데도 10분은 더 기다린 것 같다.


열이나고 메스껍고 몸에 힘이없다. 고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는 열을 재고 내 목구멍을 보더니 복부사진을 찍어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감기인 줄 알았던 것이 장염일 수도 있단다.

복부사진을 찍고 의사는 배를 몇번 눌러보더니 장염이라고 확진했다. 속이 메스꺼워 뭘 먹으면 다 토해낼 것 같아 수액에 영양제도 함께 받았다. 수액 바늘을 팔에 꽂고 항생제를 위한 피부테스트까지1시간 반은 넘게 걸렸다.


수액을 다 맞고 수납을 마치고 약을 타고 밖을 나서니 언제 그랬냐는듯(이건 좀 오버지만) 울렁거리는 것도 어지러운것도 괜찮아졌다. 그리고 집에 와서 물을 마셔봤다. 의사가 약을 개워낼 수도 있으니 물을 먼저 먹어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별 이상이 없어 일단 약을 먼저 먹었다. 한 1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엄마가 만들어준 죽을 먹었다. 괜찮은 것 같아 김치도 같이 먹었다. 이게 사실은 괜찮은게 아니었다.


죽을 먹고 잠든지 겨우 두시간이 지났을 즈음, 눈을 떠보니 다시 메스꺼움이 시작되었다. 약을 먹었는데도 왜이러지. 하며 몸을 뒤척였고 간간히 물만 마시며 자다깨다를 밤 9시까지 반복한 것 같다. 조금 길게 눈을 감았다 떴을 때는 울렁거림이 본격적이었다. 나는 점점 크게 울렁거려오는 속을 겨우 붙들고 화장실로 향했고 정말 몇년만에, 먹었던 것들을 밖으로 다 개워냈다.


속을 개워내고 다시 저녁분의 약을 삼켰다. 몸이 으슬거려 장판의 온도를 조금 높이고 거실바닥에 누웠다. 조금 괜찮아질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열이 날 정신못차리게 했다. 원래 누워있었던 장판은 내 몸을 부추기는 것처럼 몸을 더 뜨겁게 데폈다. 산너머 산이구나 생각하며 가죽소파위로 자리를 옮겨 누웠다. 평소의 몸이라면 거실의 공기를 차갑게 느꼈을텐데, 그날은 정말 어디에 내 몸을 뉘여도 몸이 뜨거워 추위를 느낄 수가 없었다.

손수건을 적셔 머리위에 올려놓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내 손발을 닦아주기 바빴다. 거실보다 시원한 내 방으로 몸을 옮겨 길고 긴 밤을 겨우 보냈다.




일주일치의 건강


장염만 빼면, 그 이후의 날들은 계획해둔 것들로 채워진 평범한 일상었다.

한달 후로 다가온 파리에 있는 친구와의 재회의 선물(직접 만들기로했기에 친구와 동대문부자재시장을 방문했다.)을 준비하는 것, 일년이라는 기간동안 각각의 업무로 가까워진 친구들과의 두 계절만의 만남, 그리고 아빠의 생일. 그렇게 장염걸린 일주일을 보냈다.

내가 이 기간을 평범했던 일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하는 대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티백이 담긴 잔과 에이드를 주문했다는 것. (사실 에이드를 주문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카페인을 피하려다가 탄산을 골라버린격..결국 탄산이 빠지길 기다리고 나서야 겨우 잔을 비울 수 있었다.) 그리고 매장에 가서 '아빠 사랑해'라는 문구를 달아달라고 직접 주문해둔 케이크를 입에 대지도 못한 것. 장염 때문에.


마지막으로 가장 주된 원인은 장염으로 인해 건강을 느꼈다는 사실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장염에 좋은 음식'을 알아봤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감정과 '본죽'의 죽 외의 다른 메뉴도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따뜻함을 주어야겠다고, 그래도 괜찮아(그게 뭐든)라고 온기로 말하는 그런 따뜻함을 느끼게 된 것이 장염 덕분이라는 사실이라는 것. 그것이 내가 건강하다고 느끼게 했다.




건강의 건강


두 계절을 건너 뛰어 만난 친구 J와의 대화에서였다.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J가 건네준 쇼핑백에 든 음식들과 편지를 보며 생각했다.


J의 솔직함이 거짓이었나 하기보다 내가 거짓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진심으로 J가 나를 생각한다고 적은 만큼 J를 여겼던 적 있나. 나는 J 앞에선 단어를 고른다. J는 나에게 단어를 고를 시간을 준다. 나는 그 배려가 소중하다. J와 있는 곳이 '안'이라면, '밖'에선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게 여유를 주지않는 타인의 탓이던 고집을 밀어붙이지 않는 나의 탓이던. 나는 사람의 눈을 살피며 허겁지겁 단어고르기를 마쳐 이것이 나의 말이 맞았나?하며 내가 뱉은 단어에 의아해한다. 밖에서의 나는 고르는 시간을 재는것이 몸에 베어있다. 그러다가 사람까지도 재고말아버렸다. 어쩌다 이런 사람과 이런관계를 맺었나 신기할 정도로 나는 J 앞에서 뱉는 말들이 좋다. 돌아서서 J가 없는 곳에서의 나는 다시 다른 사람처럼 J와의 관계도 재기 시작한다. 그 점에서 나는 내가 거짓이었나 하고 의심했다.

나는 여기서 한걸음 더. 오늘 J와 나눈 대화를 연장해서.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거짓이든 아니든 그것에 연연해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J앞에서나 다른 곳에서나 미래에서 온 사람이다.

화가 나기로 했다. 무섭다 두렵다 못할것같다 자신없다 할수있을까 될까 그럴거같아요 억울하다 어렵지않을까. 아니. 나는 분명하게 화가 나기로 했다.


적어내려간 생각들은 그날 J와 나눈 대화와 연관이 있기에 원문과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주일의 내 식욕은 필연적으로 닥칠 고통으로 인해 잠잠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먹고싶은 것들을 살기 위해 먹지 않아야했다. 거기에 따뜻함을 전달받은 마음이 더해졌고, 내 모습에 스스로 시선을 머물게 했다. 그곳에서 보통의 감사를 보았다.


남겨두었던 아빠의 생일 케이크를 거뜬히 소화해내고 일주일보다 긴 이주일동안 다양한 먹거리들을 입에 넣은 지금에서는, 가끔 그때의 내 상태가 그립기도 하다. 나는 한동안 머리맡에 J의 편지를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이제 이전의 우선순위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머무르지 않는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