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에 결혼해서 알게 된 것들
연애 1년, 결혼 4주년이 막 지난 우리 부부는 요즘 매일 정성들여 먹는 약이 나는 여성 호르몬제, 남편은 전립선약이다.
신혼이 막 지난 부부 치고는 웃픈 현실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단언한다. 중년에 결혼하면 이게 그닥 창피하거나 슬픈 현실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을.... 처음 증상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만 살짝 눈치를 본 정도이다. 이것도 술의 힘을 살짝 빌리면 개그처럼 희화화되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무거운 소재가 아니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서로의 이런 내밀한 속사정을 공유했다. 사실 나는 별 상관 없었지만 남편은 내심 여섯살 어린 신부가 실망할까봐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성기능 보조제도 시시때때로 복용하면서 나름 노력했었다고 한다. ‘맞다, 내 남편도 한국남자이지!’ 한국남성들은 성에 대해 너무 민감하고 여성들이 죄다 밤의 능력자를 기대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름 지성파인 남편도 전혀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당시 고해성사처럼 고백하는 남편에게 ‘전~~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나는 오랫동안 남자 없이 혼자서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아온 여자이고, 무엇보다 이젠 갱년기가 시작되었으니 전혀 부담 갖을 필요도 없다고 남편 등을 토닥거리면서 격려해줬다. 순간 더없이 환하게 웃는 남편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남편은 그 이후 전립선 보조제 복용을 종종 빼먹기도 한다.
사실 성이라는 것은 개인차가 큰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누구는 평생을 섹스를 안하고도 살수 있는 반면 누구는 80대가 되어서도 자주 해야 한다. 2002년에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죽어도 좋아’에서는 80대 중후반의 실제 커플이 거의 매일같이 성생활을 즐기며 20대 못지않은 왕성함을 뽐내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다큐멘터리였는데 노년학을 전공하는 나는 매우 흥미진진하게 봤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성은 개인차가 크기에 단언하기 애매한 소지가 많다. 그러나 나는 ‘보편적’이라는 전제하에 중년에는 대부분 성생활이 그닥 이슈가 아니게 된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중년 이후엔 편하게 서로 기댈만한 룸메이트이면서 친구같은 존재가 필요한 것이지 성욕을 충족할 대상으로서의 남편은 점차 필요가 없어진다. 중년이 되어 점차 가속화되는 노화현상이 성적 능력을 비켜갈 일이 만무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완경과 함께 오는 갱년기라는 큰 도전은 성적 욕구를 거의 무력화시킨다. 해서 중년 남자들은 초라해진 성기능 때문에 주눅들 필요도 없고, 여성들도 결혼 상대로서의 남자를 고를 때 섹슈얼리티를 넘어서 룸메이트 개념으로 볼 수밖에 없어진다.
나는 남편과 처음 만난 49세경에 갱년기가 이미 시작됐다. 간헐적으로 오던 갱년기 증상이 남편과 결혼한 직후 엄청 심해졌다. 밤낮으로 오르는 열감에 불면증상도 생기고 하루종일 개그맨 김준현씨처럼 땀을 줄줄 흘리는 증상이 생기다 보니 성욕이라는 것이 뭔가 싶을 정도로 자취를 감췄다. '이럴수가! 결혼하자마자 갱년기라니!'
이런 증상은 숨기기도 힘들 뿐더러 굳이 숨길 이유도 없어 나는 술 몇잔 마신 날 남편에게 ‘오빠 미안해, 결혼하자마자 내가 갱년기가 왔네?’ 하고 발설했다. 그랬더니 남편 왈, ‘난 전립선약을 먹은지 좀 됐어’하는 것이었다. 순간 얼마나 다행이던지...
중년 커플은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티비 광고에 여성갱년기 보조제나 남성 전립선 광고가 그렇게 판치는 것을 보면 단지 우리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중년이 되면 남자들도 성기능 때문에 괜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여성들도 이팔청춘시절 알게 됐던 남성성의 안좋은 고정관념들을 신념처럼 고수할 필요가 없다.
중년이 되면... 나이가 들면.... 여자나 남자나 다 비슷해진다. 우리 모두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같은 가엾은 인간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