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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성 Aug 27. 2022

가지 않은 길, 결혼과 비혼 사이에서

생의 한가운데

< 가지 않은 길 >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곳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중략)


먼먼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중년은 단순히 살아온 청춘의 삶과 살아갈 노년의 삶의 중간 지점이라는 사실 외에도 실로 많은 것을 함축한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칼 융은 “중년기엔 외부로 향했던 정신에너지가 내부로 향하게 되고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색이 강화되면서 인생 전반기에 분리됐던 자아가 다시 자기에 통합되어 개성화를 이루게 된다”며 중년기를 가장 중요한 시기로 규정했다. 


그래서인지 중년이 되면 모두 철학자가 된다. 살아온 시간을 반추하며 생의 무거움에 겸손해진다. 이미 여성의 평균 수명이 86세가 된 지금 융의 이론은 더 의미심장하다. 중년 이후의 삶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이다.      


중년에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한가지 중요한 질문에 맞닥트리게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로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질문은 곧 ‘어떻게, 누구와 살고 싶은가’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사람'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으며, 지속 가능성이 높은 가장 친밀한 공동체로서의 결혼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유는 직접적, 간접적 경험의 산물 때문인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단 혼자 사는 삶을 추천할만한 이렇다 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울분 섞인 비판적 견해만 난무할 뿐 결혼이 해롭다는 과학적이고 신뢰할만한 증거는 찾기 어렵다. 물론 오랜 세월 인류가 결혼한 삶을 당연한 삶의 방식으로 고려한 탓에 독신으로 늙어간 사람의 사례가 충분치 않은 것도 사실이어서 증거 부족을 토대로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명우는 독신을 예찬하면서 현재와 같이 독신의 삶에 대해 부정적인 논조들이 가득한 것은 독신들에 대한 ‘일반화된 타자의 부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독신의 삶이 실제로 불안전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우리 사회가 독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뿐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는 해석이다. 그러나 실증적 관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힘을 잃는다.    

    

지난 몇십년의 실증적 연구들은 독신으로 살아온 사람에 비해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살며,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입증하고 있다. 일예로 영국 통계청이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20세 이상 성인 사망자 무려 5백만명을 조사해 혼인 여부에 다른 사망률의 추세를 분석했는데, 남성은 이혼한 사람의 사망률이 가장 높은 반면 여성은 미혼인 경우가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위험행동을 적게 하며 비교적 건강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고 도움이 필요할때 의료서비스에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기에 사망률을 줄였다는 전문가의 해석도 덧붙였다. 


혼자 사는 사람에 비해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한마디로 비교적 안전한 삶을 살기에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대충 알만한 내용일 것이다. 특별할게 없어서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은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장수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아 기혼자보다 더 빨리 죽는다는 식의 기사는 크게 위협이 되지도, 공감이 되지도 않을 공산이 크다. 사실 나도 박명 만큼이나 두려운 것이 장수이다.  


중요한 것은 사는 동안에도 권장할만한 증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6년 전국 조사에서 중년 1인 가구는 노년 1인 가구와 특성이 유사하다며, 신체적, 정신적 건강상태가 중년 다인가구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2016년 서울 거주 4050 여성 1인가구를 분석한 결과 중년여성 1인 가구는 빈곤계층이 높고, 근로능력이 있는 비취업자 비중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독신생활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은 50대와 사별집단의 경우에는 청년 1인 가구에 비해 부모형제와의 교류도 낮고, 이성파트너가 없는 비율이 현저히 증가하는 등 사적 네트워크가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그 많아보이던 화려한 싱글은 주로 젊은층의 이야기인듯 싶은 대목이다. 


이렇게 실증 데이터들은 비혼이 하나의 중요 현상이 된 지금도 싱글 중년 여성의 현주소를 암울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나 혼자 산다'가 티비에 보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풍요롭고 활력 넘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사실 나는 이런 계량적 조사 수치 보다도 ‘행복 추구’의 관점에서 중년 결혼을 예찬하고자 한다. 때론 지루하고 고독하며, 팍팍하기도 한 짧지 않은 인생살이, 사는 동안에는 좀 행복해야 견딜수 있지 않을까? 안그래도 생물학적으로도 자연히 우울해지는 중년, 그리고 더 우울해지는 노년에 행복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필수적이다. 우리는 보다 더 건강하게 생존하기 위해 행복해야 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미 앞서 강조했다시피 배우자, 연인이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보다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측면에서 나는 실증적 관점의 결혼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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