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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성 Aug 26. 2022

결혼의 조건, 독신의 조건

우리 중 대부분은 언젠가 혼자 살 공산이 크다. 여성의 경우 더욱 그렇다. 결혼한 경우도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무려 5살 이상 많은 현실에서 여성들이 홀로 남을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독신의 삶을 일정 기간 살다 갈 확률이 높지만, 문제는 평생 그렇게 사느냐, 일정 시점만 그렇게 사느냐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도 혼자도 살아보고, 같이도 살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생각도 든다. 생은 너무 길고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살기엔 지루하므로...      


그러면 이런 의문이 남는다. 결혼하고 싶어도 못한 사람은 어떡하냐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엔 어떡하냐고?


인생의 대부분을 애인도 없이 혼자 살다 50살에 결혼한 나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실로 오랜동안 찾아헤맸었다. 40대 중반이 지날 무렵부터는 평생 혼자 살 것으로 거의 확실해 보였기 때문에 더욱 절실한 질문이었다.      


사람마다 가치관이나 처한 환경이 다르기에 '이게 최선이다' 하고 단언할 수 없지만, 비교적 오랜 동안 이 문제를 고민한 나로서는 일단 누구나 아는 기본 생존 조건들(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살 집, 그리고 실손보험과 연금) 외에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하나는 사회적 관계를 열심히 개척하고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문명의 변화를 잘 따라가는, '과학기술 문명인'에서 이탈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 독신의 조건 1: 사회적 관계를 잘 맺는 외향적 사람이 되어야 -


먼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에 열심이어야 한다는 이유는 모든 문과적, 이과적 학술적 결과들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도 그렇고 사회학, 자연과학에서도 모두 이 사실을 입증했다. 사실 평생을 자유롭게 혼자 살아도 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외향적인 사람이다. 중년이 되어도, 노년이 되어도 온통 에너지가 밖으로 뻗어있어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게 좋은 사람은 사실 혼자 사는게 나을수 있다. 이들은 나이 들어서도 계속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에 열심이기 때문에 딱히 배우자나 가족이 없어도 잘 살수 있다.      

배우자가 없다면 형제나 친구하고라도 같이 살거나, 혹은 아주 가깝게 살아야 한다. 특히 가까운 곳에 사이좋은 형제자매가 사는 것은 매우 좋은 대안이다.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은 1930년대 말에 입학한 2학년생 268명의 삶을 무려 72년 동안 추적하면서 행복한 삶의 공식을 찾아냈는데,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지를 결정짓는 것은 지적인 뛰어남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관계”라고 단언했다. 행복의 조건에는 따뜻한 인간관계가 필수이며, 그중에서도 가족, 특히 형제자매간의 우애가 특히 큰 영향력이 있음을 밝혔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며, 다른 사람과 함께 돈을 쓸 때, 혹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사용할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결론내렸다(조지 베일런트(2010)의 '행복의 조건'에서 발췌).  


사실 이 연구팀을 비롯 많은 연구에서 노년기에 자매가 사이좋게 같이 사는 경우 행복한 노후를 보낸다는 사실이 수없이 보고되었다. 하지만 남성 형제간에는 사실 이런 증거가 특별히 없다. 남성은 나이 들어서 같이 사는 경우가 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같이 살 자매가 있으면 좋지만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경우나 자매가 없을 경우 정말 친한 이웃 친구가 있어야 한다. 친구가 많아도 이웃이 아니라면 별반 소용이 없다. 지근 거리에 살아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찐친이 얼마나 존재하느냐가 그 다음 중요한 요인이다. 


대부분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적 관계가 재편되기 마련이다. 기존 가족이나 친구가 이사하거나 내가 직장 따라 이주하여 살게 되는 경우가 많아 새롭게 관계를 개척해야 한다. 이때 지방에 사는 경우 온라인모임이나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일만 하는 외톨이가 되기 쉽다. 그럴 경우 '목마른 사람이 우울 판다'고 자신이 직접 그런 모임을 만들고 엮어나가는 수고라도 해야 외롭지 않은데 그게 웬만한 외향적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다. 인간은 혼자서 외롭게 살수 없는 종이라는 것은 이미 진화론이나 뇌과학 등 여러 자연과학적 연구에서 검증이 됐다. 사람은 모여서 사람과 함께 살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진리이다. 

     

따라서 스스로 너무 내향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이어서 사람들과 어울려 때론 관계의 피곤함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 힘든 성향의 사람이라면 사실 결혼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내향적인 사람들에겐 배우자 한 사람과 맞춰 사는게 여러 타인과 적당히 맞춰 지내는 것보다 훨씬 쉬울 수 있지 않을까?


- 독신의 조건 2: 과학기술 문명인이어야 -


다음으로 나이 들어서도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잘 따라가는 과학기술 문명인에서 이탈하지 않아야 한다.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변화속도가 너무 빠르다. 지금의 중년이 노년이 됐을 땐 어쩜 집에 자식보다 나은 로봇이 한 대씩은 있을 수 있다. 영화 ‘아이 로봇’을 보면 그런 미래 풍경이 잘 묘사됐는데 나는 그런 현실이 그렇게 먼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아마존이나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그리고 테슬라 등 빅테크 기업들에서 엄청나게 진화된 사람처럼 생긴 로봇을 만들었고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사실 사람보다 훨씬 똑똑하고 같이 지내기에 좋은 로봇이 출시돼 상용화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런 차원에서 노년기 수발 차원에서 자식이 필요한 시대는 지났다. 자식이 있어도 한두명 밖에 안낳은 현 세대는 지근에 살지 않으면 그런 수발을 기대할 수도 없으니 수발문제는 공통의 이슈일 뿐이지 독신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현재도 심부름 어플이 많이 나와서 어플을 이용하면 돈으로 얼마든지 병원에 동행해줄 '일시적 자식'을 살수도 있다. 미래에는 성능 좋은 로봇을 집에 가지고 산다면 남의 효자 안부러울 것이다. 물론 새벽에 응급상황이 발생하거나 하는 등의 복잡한 상황에서 언제나 이런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플 때 도움받을 사람이 없는 상황이 닥치면 심리적 서러움이 동반되지 않을 수가 없기는 하겠지만, 그런 일상적 필요에 의한 위기감은 미래에는 보다 최소화될 듯하다.  


4차 산업혁명기에 접어든 현재 외로움을 완화해줄 과학기기나 프로그램들이 무수히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려는 마인드와 습득능력, 그리고 그것을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렇기에 그런 변화를 부지런히 쫒아가지 않으면 온통 첨단 무인기술로 대체될 미래사회에서 혼자 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 세상에 소개한지 불과 15년도 되지 않았다. 2009년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했을 때만도 우리는 이렇게 손안의 컴퓨터에 의해 모든게 컨트롤되는 세상이 올지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러한 과학문명의 급속한 변동은 나이든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불리하다. 정보 접근 면에서도 그렇고 필연적으로 이들 기기 활용방법을 습득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혼자 살 경우 아무래도 불리하다. 그러니 혼자 사는 사람은 더욱더 세상의 변화에 민감해야 하고 앞서서 따라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경제력의 축적 외에도 사회 변동에 부지런히 쫒아가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게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은퇴하고 나면 쉽지가 않다. 해서 나는 세상의 변화를 쫒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자산시장에 대한 관심을 조심스레 추천한다. 일단 소액이라도 자산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경제의 흐름, 세계정세의 흐름, 과학문명의 변화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된다. 피 같은 내 돈이 들어가 있으므로... 물론 이과쪽 직업이거나 배움에 관심이 많아 배움 자체로도 잘 따라갈 사람은 상관 없겠지만 중년 이후 나이 들어가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게 어떤 큰 동기가 있지 않으면 쉽지 않다. 내 돈이 들어가야 억지로라도 배우게 되지 않겠는가? 다만 감당할 수 있는 소액만 투자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나이 들어가야 혼자서도 불편 없이 잘 살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결혼의 조건은 이 모든 독신의 조건에 대한 성찰을 통해 유추가 가능할 것이다. 거기에 완벽히 만족스러운 것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와 사는 일이 비즈니스처럼 정확한 이해타산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본질적인 효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려는 태도가 더불어 필요할 듯하다. 나는 여전히 결혼예찬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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