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지성 Jul 22. 2022

누구에게는 너무 쉽고 누구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결혼

중년의 결혼 단상

나는 남편을 만나면서 ‘결혼이 이렇게 쉬운 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생에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하고 싶었을 때는 그렇게 힘들더니... 이렇게 쉬운 거였어? 하는 생각.... 장고의 세월 실패한 연애사로 쪼글라들었던 내 자존심을 생각하니 이건 허탈하기까지 한 결과였다.      


나는 남편을 친한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우린 서울과 전주에 떨어져 사는 탓에 일주일에 한번씩만 만났는데 네다섯번 정도 만난 후 ‘이 남자랑 결혼해야겠다’ 는 생각이 대뜸 들었다. 이건 눈에 콩깍지가 씌워서도 아니고, 남자에 굶주려서도 아니며, 결혼에 목매서도 아니다. 사실 난 남편을 만나기 약 일년 전에 무려 십여년만에 하게 된 연애가 3년의 짧지 않은 기간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결별로 끝난 후 솔직히 결혼에 대해 완전히 접었었다. 사실 그 친구는 이혼한지 얼마 안되어 결혼이라면 아주 넌덜머리를 내던 친구였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30대 초반 이후 공백이었던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간만에 생긴 것이라 차마 쉽게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공일오비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가사처럼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채로 3년을 질질 끌었던 터였다. 결국 결별의 순간은 왔고 나는 당시 비장하게 ‘난 결혼 복은 없구나!’ 하는 사실을 깊이 수용한 후였다. 이후엔 혼자 잘 사는 방법이나 공동체 만들기 같은 류의 서적이나 영상물을 뒤져보곤 했었다. 결심하게 되기까지가 힘들지, 막상 운명을 받아들이고 보니 또 받아들일만 했다.      


그렇게 일년여를 지내다 우연찮게 지인으로부터 남편을 소개받은 것이다. 처음 소개팅 제안을 받았을땐 이런 실패의 경험들로 인해 이번에도 안될 것이라는 생각에 지레 거절했었고, 멀리 서울에 사는 사람과의 연애가 왠지 성공할 것 같지도 않아서도 거절했다. 소개해준 지인의 몇 번의 설득 끝에 정말 ‘술김에’ 그러자고 해서 만남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기대 없이 나간 자리에서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결혼할 인연은 쉽기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결혼은 내가 마음 먹었다고, 노력한다고 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운명인 것도 아니라고.... 어느 쪽이 더 비중이 있냐 하는 점에서는 사실 나는 운명 쪽이 더 비중이 높은 듯하다고 본다. 어느날 마법처럼 사랑에 빠지는 운명은 사실 중년엔 기대하기 어렵고 그저 만났을 때 '왠지 이 사람하고는 잘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사람을 일단 만나느냐가 관건인 듯싶다. 유난히 상대방의 말에 경청을 잘 하고 리액션이 비범하게 좋은 남편을 몇 번 만나면서 뭔가 운명적인 느낌이 어느 순간 들었다. 물론 술에 좀 취했을 때 든 생각이라서 술 기운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나이 들어 결혼할 운명을 만나면 서서히 조금씩, 그러나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듯하다.

       

20대에는 노력을 딱히 안해도 주위에 남자가 많고 연애할 기회가 꽤 있다. 그러나 30대로 접어들면 그 기회가 반이상 줄어들고, 40대가 넘어서는 현저하게 기회가 줄어든다. 기회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노력의 기획도 별로 없게 되고 그래서 절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게 딱히 능력이나 외모, 성격의 문제도 아니고 그 놈의 노~력의 문제라고도 할수 없다. 미묘하게 운명과 다소의 노력이 필요한데 그 노력이라는 것은 별 다른게 아니고 좀 피곤해도 사람 만날 기회에 노출되려는 노력, 한눈에 마음에 안들더라도 좀 시간을 두고 그 사람을 알아가려는 노력, 청춘시절 놓친 결혼상대의 프로필과 비교하지 않으려는 노력, 남들 눈을 신경 안쓰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특히 자존심을 조금은 내려놓고 상대를 온전히 바라보고 대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방도 이 나이까지 생존하느라 애쓴,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 살아온 세월의 무게 만큼 풍기는 분위기 부터가 좀 무겁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매력적이고 상큼한 연애상대로서의 느낌 보다는 부담스런 중후한 모습으로 서로 마주하기 때문에 연애가 쉽게 되기가 힘들다. 미리부터 결혼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사람 한명 안다고 생각하고 만나보면 어떨까 싶다. 결혼을 전제해버리면 만남 자체가 너무 무거워져서 첫 만남부터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주위 비혼 여성 중에는 남성을 소개받으면 곧 결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 것처럼 이것 저것 따지면서 고민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아니 누가 자기한테 결혼하자고 한다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만나기 전부터 결혼을 전제하며 혼자서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하면서 혼자서 상상의 결혼소설을 쓴다. 연애도 힘든데 결혼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레 혼자 결혼까지 너무 나가서 생각하지 말고 그냥 '친구 한명 알게 되면 좋지' 하는 마음으로 좀 가볍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소개팅이나 선을 봤을 때 애프터를 받지 못하는 것에 상처받지 말자. 어차피 인연을 만나는게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알지 않은가? 아는 언니 한명은 마흔살 중반에 선을 백번 정도 보고 결혼해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데, 그 언니를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은 그 언니의 노력에 가히 박수를 보낼 지경이었다. 그 언니는 청춘시절 아주 자유롭게 싱글라이프를 맘껏 즐기면서 연애도 여러번 한 경우였는데, 어느날 결혼을 해야겠다고 선언하더니 유료 선시장에 뛰어들었고 거의 백회의 선 끝에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성과를 거둔 경우였다. 이 언니를 보면 노력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찌감치 선이나 소개팅을 접었기 때문에 운명에 기대어 살았는데, 운명이 쉽게 그 길을 허락하여 주지는 않았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돈버는 일도, 연애하는 일도, 결혼하는 일도... 원하는 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듯이 누구에게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도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기도 한것이다. 부자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고 운명을 탓할수 없듯 남들처럼 쉽게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고 탓해봐야 소용없다. 어쩌겠는가, 운명이 나에게는 그런 쉬운 행운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나이 들어 하는 결혼을 권장하고 싶다. 남자 보는 눈이 보다 정확해진다. 그리고 남자도 이제 이전에 우리가 알던 남자들보다 많이 성숙해져있다. 예전에 만났던 철없는 남자가 아닐 확률이 높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 자신이 이젠 온전히 타인을 품을수 있을만큼 성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걸 상기하자. 둘다 결혼할 마음이, 여망이 있다면 성공 가능성이 낮지 않다. 사랑을 꿈꾸는 비혼들에게 조용히 격려를 보낸다.

이전 13화 50에 결혼할 수밖에 없는 이유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