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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성 Jan 02. 2023

매 순간 경쟁으로 치열한 청춘에 대해 알게 되다

중년에 쇼미더머니에 빠지게 된 이유

지난 금요일 새벽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린 쇼미더머니 11! 

금요일 밤마다 1시가 넘는 시간까지 본방 사수하느라 몇달 힘들었다. 금요일 밤은 으레히 남편과 만나 거나하게 술 마시며 외식하는 날인데, 그런 과음 후 11시부터 1시까지 본방송을 사수하는 것은 사실 이 나이에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도 12시가 되면 도저히 잠 와서 안되겠다고 중간에 자러 들어가 버리곤 했는데, 남편의 숙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볼륨을 대폭 줄이면서 도둑 고양이처럼 방송을 보고 잠든 지난 몇달이었다. 정말 1회에서 10회까지 외부 모임이 늦게까지 있었던 1회를 빼고는 본방 사수를 한 듯하다. 마지막 생방송에 문자투표까지 했으니... 역시 일찌감치 우승자로 점찍어 뒀던 영지가 우승자가 돼서 좋았는데, 사실 모처럼 여성 래퍼인 영지가 우승한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힙합에 대한 내 이해와 대중 반응에 대한 안목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차원에서 더 좋았다. 연 3년째 우승자를 맞췄으니 나도 이만하면 (듣는 실력으로는) 힙합 우등생!     


아직도 반절이나 알아들을까 말까 한 그 어려운 랩과 중간 중간 너무 많은 광고 때문에 짜증나는 이 쇼프로그램을 50대의 나이에 좋아하게 된 것은 사실 딱히 음악장르가 좋아져서 라기 보다는 힙합이 가진 난이도 높음에 대한 경이와 존중, 그리고 그 쇼프로그램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청춘들의 치열한 경쟁이 애잔함으로 다가와 어느 순간 주목하게 된 것이 그 출발점이지 않나 싶다. 쇼미더머니 제목에서 느껴지는 진한 자본주의 향기와 그 자본주의가 내포하는 대표 언어, ’경쟁‘이라는 것의 속성을 이 프로그램은 적나라하게 녹여내고 있었다.


3만여명이 체육관에 벌떼처럼 모여서 빠르게 진행되는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오르는 사람은 고작 몇십명이다. 해서 본선에 뽑히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잘한 것인데, 본선에 올라오면 개인 실력으로도, 팀으로도, 팀 내외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각 단계를 올라야 한다. 가장 보기 힘든 부분이 팀 디스배틀전인데, 이게 아무리 힙합의 전통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가장 아픈 곳을 골라 찔러야 승리하는 디스배틀은 나처럼 중년 애청자들에게는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다. 면전에다 대고 상대의 랩 실력을 비난하던지, 외모를 비하하던지 하는 식의 배틀 라운드는 보는 내내 불편하고 '매번 저것 좀 안하면 안되나' 싶다. 아무리 각오한 래퍼라고 해도 저런 송곳같은 비난을 받고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난의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까지 잔인해야 승리하다니...! ’ 청춘들이 혹시 이 세상도 저렇게 잔인하게 해야 승리한다고 보는게 아닐까‘ 하는, 괜히 꼰대같은 걱정도 하곤 했다.      


암튼 내가 이 프로그램을 처음 주목하게 된 것은 도전의 ’난이도‘ 때문이었다. 예선부터 각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참가자들은 각자 새롭게 작사한 곡으로 도전해야 한다. 지정된 비트에 맞춰 매번 새로운 가사를 직접 써서 무대에 올라 라이브로 실수 없이 불러야 한다. 랩 가사는 일반적인 유행가 가사에 비해 몇배 길고 대부분의 경우 매우 빠른 속도로 그 가사를 불러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가사를 놓치면 탈락하게 된다. 저렇게 긴 것을 어떻게 외우나? 어떻게 저렇게 빨리 읊조릴수 있나 신기하기까지 하다.    


실로 우리 기성세대들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난이도의 노래경쟁인 것이다

음악은 각자 선호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우수성 순위를 논하는 것이 어불성설일테지만, 라이브 퍼포먼스의 난이도 차원에서는 단연코 힙합이 가장 어려운 장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스스로 작사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을 듯하고 좋은 음악을 고르거나 직접 만들어 가사를 입히는 일 또한 쉽지 않을 것같다. 


랩 가사 역시도 가만히 들어보면 돈 자랑이나 출세하고 싶은 욕망만 있는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각오를 다짐하는, 다소 뭉클한 가사도 많으며,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그 사회속에서의 우리의 자세를 각성시키는 가사들도 의외로 많다. 그들은 나름 그 세계에서 기성세대가 주지 못한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며, 이런 삶도 있다고 치열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힘든 경쟁이 있을까 싶다. 전신을 도배한 타투에, 코걸이에, 엉덩이에 반만 걸쳐입은 똥싼 바지 패션으로 잔뜩 생경함을 주는, 이 래퍼들이 하는 힙합이라는 것이 실은 너무도 치열한 집중과 실력을 요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진정으로 세상 그 무엇보다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었으며,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그들을 '리스펙트'하게 되었고 이렇게 매년 가을 이 프로그램을 기다리며 본방 사수하는 것으로 조용히 응원을 하게 된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세대간 차이가 존재했었고 항상 기성세대는 신세대를 이해하지 못하여 쯔쯧거리고 신세대는 기성세대의 낡은 사고를 꼰대 취급하곤 한다. 꼰대라는 한마디로 일반화되기엔 사실 우리 중년들도 너무 억울하다. 사실 맞는 말도 많은데 말이다.    


이전 세대에 비해 비교적 덜 빈곤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어려움 없이 자란 것이 아니고, 그들 대부분은 캥거루족처럼 나약한게 아니었다. 그들의 리그가 너무 난이도가 높아진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 강팍해져서, 매번 자신이 차별받는건 아닌지, 자신만 손해보는 건 아닌지 계속 따지는 것이다.

    

더 자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그래서 시장 논리가 삶 속에 깊이 침투한 우리 중년의 자녀 세대들, 쇼미더머니를 보며 그들의 정글 같은 현재를 엿보는 듯해서 안쓰러움과 놀라움을 가지고 그 프로를 즐겨보았다.  


더 풍요로운 시대지만 더 살기 어려워졌다. 모두가 능력자로 키워진 것에 비해 기회는 오히려 줄었고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를 보며 나는 이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능력은 있으나 능력에 비해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는 청춘들의 분노와 치열함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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