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 MBTI_열여섯번째

인조_이 종(생.1592~(재위 1623~1649)~졸.1641_53세)

by 서애가


1. 인조_이 종(생. 1592~(재위 1623~1649)~졸. 1641_53세)


2. 내가 느낀 그의 성격 : INFP 동일한 성격의 조선왕_6대 단종, 12대 인종

차분하고 창의적이며 낭만적인 성향으로 보이면서도, 내적 신념이 깊은 열정적인 중재자 유형이다.

인간 본연에 대한 애정으로 사람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이들의 가능성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우며,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하지만 대그룹에 있을 경우 에너지가 쉽게 고갈되는 경향이 있으며,

친밀도가 높은 소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선호한다.

목가적이고 부드러운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사려 깊고 상냥한 언어를 사용한다.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는 흥미와 진정한 의미를 느끼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음악, 예술, 문학, 철학 등

소위 인문학과 관련된 분야에 특히 재능을 보인다.

갈등을 싫어하며, 타인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과 세심함으로 중재자의 역할을 부드럽게 수행한다.

기본 성격이 유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쉽게 상처 입고 잠적하는 유형이기도 하다.

INFP 개개인마다 인생의 목적은 다르지만, 사회적인 관용을 좋아하는 면에서는 공통된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 이입과 공감 능력이 아주 출중하다.

모든 성격 중에 가장 공상에 쉽게 빠지며,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문학, 미술, 음악,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계열에서 주로 많이 활약한다.

이들의 꿈은 대부분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그야말로 소설이나 동화 속의 한 장면으로 폄하받기도 하지만 위에서 열거된 음악, 미술 등의 현실적인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근면하게 수행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이 상당수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계질서와 더불어 역할이 분명하게 주어지고 자유가 최소로 유지되는 팍팍한 관료제 사회를

겉으로 거부하지는 않지만, 천성이 그런 관료제 사회에 들어맞지 않고 겉도는 경우가 있는 편.

어떠한 분야에서든 주어진 일이라면 일 외에는 쳐다보지 않는 근면 성실함을 보이는 유형이다.

혼자만의 공상에 빠질 수 있는 고독한 자유 시간을 많이 요구하는 특유의 성격 특성상

체계가 조밀하게 짜여 있고 자유가 없거나, 우열이 존재하거나, 그룹으로 행동하고 큰 소리로 떠들며 노는 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겉돌거나 배제되기 쉬운 성격이기도 하다._출처 나무위키


3.INFP의 성경인물-삭게오


4.INFP의 유명인

남 : 월리엄셰익스피어, 빈센트, 조니뎁, 빈센트고흐, 이준석, 한동훈, 강호동, 김종민.. 등

여 : 오드리헵번, 다이에나공주, 김소연, 김숙, 김태희, 김하늘.. 등


5. 그의 삶에 결정적인 사건 : 능창군의 죽음

광해군에 의해 비참한 자살로 삶을 마감한 능창군 이는 영창대군이 죽고 겨우 1년 남짓의 시간이었다.

능창군의 형인 능양군은 악의를 품게 되고 10년의 시간을 와신상담하여 김류, 이귀, 신경진, 이서화 함께 반정을 일으킨다.


6. 그의 삶을 함께한 사람들 : 척화파의 김상헌, 개혁파의 최명길 그리고 살림꾼 이원익


7. 그의 가장 큰 업적_조선의 경제력을 키우기 위한 납세의 변화

가. 갑술양전(甲戌量田)의 실시

나. 기존 경대동의 문제점 파악 및 삼도대동사목(三道大同事目)[과 같은 추후 시행책 논의

다. 즉위 직후 강원도로 대동법(江原大同法) 확대

라. 인조 말기 흉년기의 임시방편적 구휼제도를 시행 등이 있다.

그러나 왕권이 약하여 즉위 직후 시행한 삼도대동법(三道大同法) 시행 과정에서도

그는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데다가 삼도대동법 자체도 적잖이 한계가 있었다.

비록 곡창지대인 호남과 영남에 대동법을 시행해 보았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으나,

이 지역은 주요 곡창 지대여서 흉년에 따른 리스크가 훨씬 컸고, 지주들의 반발도 거세서 삼남 중에서도 특히 호남 산군 지역 지주층들이 격심하게 반발했다.

양전이 미비하여 토지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여기에 방납업자 등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삼도대동법의 시행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던 탓에 결국 주도자였던 이원익 스스로 삼도대동법의 철폐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강원도에선 대동법 체제에 일반 백성들이 환영하고 반대 세도 크지 않아서 그대로 시행되었다.

그렇기에 여론의 악평과는 달리 실제로는 통치 안정기 이후에는 조선의 경제력이 다시 회복하고 국력이 그럭저럭 신장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역사적인 의의는 있다.


8. 그의 가장 큰 실수_이괄의 난 잔여세력의 허술한 숙청

- 이괄의 난->정묘호란->병자호란->삼전도의 굴욕

이괄의 난 이후 허술한 숙청으로 살아남은 이괄의 부하들이 청으로 투항하고 편입되었다.

북방군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고 청으로 투항하고 편입된 이괄의 부하들이 길잡이가 되어

조선은 이렇다 할 북방정책을 세우지 못했고 정묘호란 이후 8년 만에 일어난 병자호란 때에도

어떠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항복례를 시행하게 되고 소현세자까지 끌려가는 나라답지 못한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이하게도 인조는 청나라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소현세자를 미워했다.


인조병풍.JPG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仁祖)의 필적. 행서체로 쓰인 이 글은 봄날 새벽의 맑은 기운과 느낌을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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