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을 소중하게_잭 도슨
힘이 든다.
마흔일곱.. 나이를 먹으니 더 그런 거 같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군생활 2년을 빼고는 매년 여름과 겨울에 교회수련회와 함께했다. 학생 때는 학생신분으로 청년이 되어서는 교사의 신분으로 중고등부 부장이 되어서는 부서의 장으로써 한 교회를 꾸준히 지켜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굳이 횟수를 따지자면 내가 학생으로 있던 시간까지 포함하여 약 35년의 시간 동안 중고등부와 함께 했으니 70번 가까이 6개월에 한 번씩은 여행을 한 셈이다. 그동안 수많은 선배님들과 후배님들과 함께 했었고 정말로 내 삶에 있어서 참으로 소중한 추억들이다. 젊은 청년의 시절에 마음에 품었던 비전을 그대로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행복하다.
그런데... 이제는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우리나라 교회 대부분의 중고등부는 생명력을 잃었었다. 수련회는커녕 예배도 모일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잃어버린 3년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때에 느낀 것은.. 물질(돈)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물질을 쏟아부어도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매년 예산을 책정하고 집행했지만.. 코로나가 풀리고 중고등부 예배로써 의미를 갖고 정식적인 모임을 갖게 되었을 때 중학교 3개년 고등학교 3개년 총 6년 차의 모든 학생들의 숫자는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평균출석 300인의 교회가 이 정도니 더 작은 교회들의 사정은 더 어려웠으리라...
사정이 좋지 않음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을 지을수 있다.
하나는 외형적인 문제이고 또 하나는 내형적인 문제이다.
외형적이라 함은 말 그대로 학생이 줄어들었다. 신탄진이란 곳에 100년이 넘어가는 전통의 초등학교가 있는데 25년도 신입생이 34명이었다. 신탄진이란 곳은 1905년 건설된 신탄진역을 기준으로 중심지가 생겨났고 그때부터 원주민들이 농업으로 일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곳으로 3대가 모여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인구가 일정하게 유지되었으나 일자리가 많아진 지금은 새로운 젊은 층의 인구가 쉽게 유입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으로 큰 아파트 단지들이 재계발 명목으로 들어와 있지만 큰 도로를 기준으로 신도심,구도심이 나뉘어 있으며 구도심은 인구가 늘어나지 않고 신규 아파트 단지에 새로 들어온 아파트의 젊은 층을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초등학교에만 아이들이 모인다.그나마 내 나이또래(70년대~80년대생)까지는 신탄진에서 자라나며 세대의 분포를 지켜왔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아파트 단지나 인근의 신도시로 빠져나가있는 형국으로 학생들의 수가 물리적으로 적으니 전도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 쉽지 않다.
내형적이라 함은 치명적이다.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삶의 누릴 것이 많아지고 물질이 풍성해지니 교회의 역할이 모호해졌고 각 지역의 교회들은 새로운 세대들의 유입할 수 있는 방법(전도)을 몰라 갈팡질팡 헤맨다. 무관심... 풍요로움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신앙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것. 특히 코로나 시기를 보내면서 개인의 시간을 혼자 누리는 편안한 삶에 익숙해져있다 보니 더욱 그러하다.
절망감... 왜인지 나의 책임인 것 같고... 내가 부족함으로 교회의 대가 끊어지는 것은 아닌가 슬프고도 속상했다. 믿음 안에서 비전을 찾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한번 살아가는 우리의 삶가운데 어떤 종교를 갖고 어떤 철학으로 살아가는가는 각자의 선택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사랑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남자와 여자의 애틋한 에로스사랑, 친구와 친구의 우정을 표하는 필레오사랑, 그리고 부모 자식 간의 아가페적인 사랑.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 내 안에 내가 없고 하나님이 나의 중심에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하도록 인도함과 그것을 인정하고 사는 삶. 그것이 믿음의 삶이다. 세상을 향해 사랑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더욱 많아지도록 내 청춘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이런 생각을 많은 동역자들과 나누며 조금씩 이루어 나가는 것. 그것이 나의 청년시절의 비전이었고 그 비전대로 살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흐름이 있음을 안다.모든것들은 탄생했다가 융성했다가 사라진다. 아브라함부터 나사렛 예수까지 수많은 세대가 있었고 그 세대가운데 비전을 받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간 믿음의 조상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것들 중에 공톰점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세대의 흐름이다. 아무리 권세과 권능이 있던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도 결국에는 망하였고 가나안부터 블레셋, 아람, 에돔, 아말렉, 암몬, 앗수르등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상에서 잊히는 국가는 차고도 넘쳤다. 한반도로 따진다면 고조선이 있었고 삼국이 있었고 삼한이 있었고 가야가 있었고 고려가 있었으며 조선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 땅을 지켜 가고 있다.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고 그 영웅들을 추종하는 세력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니.. 모든 것은 기록으로만 남을 뿐.. 그 실체는 다 사라진다. 쉽지않았지만 결국 나도 사라질거란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실체가 없다고 해서 그 정신이 없어진 것 또한 아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슬프지만 아름다운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수련회가 어쩌면 내 인생의 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마지막순간일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마음에 맞는 동역자들과 함께 하며 일할수 있다는 그순간을 너무나 큰 축복으로 감사해 하면서 말이다.
시간은 흐른다.
그렇기에 이번행사 때 함께했던 많은 친구들이 다음 모임에도 이어지리라는 확신은 없다. 거기에 나 역시 꾸준히 이 헌신의 삶이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것이 비단 이 모임뿐만이 아니라 내가 있는 모든 곳에서 그러한 불안감이 있다. 그래서 더욱 사랑하며 살고 싶다. 불교가 자비의 종교라면,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기에 그렇게 살고 싶다.
사랑만 하고 살아도 모자를 시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몇 년 만인지 모른다. 2박 3일 동안 30여 명의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보낸 수련회라는 것이.. 이 정도 인원이 모인 행사를 주관하고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른들 말씀처럼 먹는 게 제일 큰일이었다. 만들어도 만들어도 순식간에 없어지는 음식들을 보며 요 근래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아무도 다친 이 없이 준비한 모든 행사가 잘 마무리되고 비로소 한숨을 쉴 여유를 갖게 되었을 때 몇 년간 동역자로서 이 행사를 같이 준비해 온 나보다 20년 가까이 어린 소중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부장님! 많이 힘드시죠?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부장님 엄청 행복해 보였어요!"
그랬나? 힘이 들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또 한 번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행복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오래오래 행복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