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핑(WRAPPING) 하다.

상품의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보호조치를 하다.

by 서애가

저녁모임이 있어 개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큰 규모의 백화점에 가게 되었다.

성격상 약속시간보다 20분 정도 먼저 도착했지만 식당입구에서 정시에 입장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듣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거절을 당해 시간이 갑자기 붕뜨게 되었다.


"뭐 하지?"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정면에 있는 서점이 눈에 보였다.

"잘되었다! 살짝 둘러볼까?"


우리 어릴 때 서점에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굳이 책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소설이든 잡지, 아니면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을 하이라이트로 쭉 훍어보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곤 했던 경험이 나의 발걸음을 망설임없이 서점으로 움직이게 했다. 서점엄청나게 컸다. 백화점 한 층의 반정도되는 크기를 책들이 잠식하고 있었다.


"우와~!" 웅장함에 감탄이 나왔는데... 다가갈수록 내가 생각한 서점의 모습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우선,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심지어 그 사람들 중에 책을 펼쳐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뭐지?" 책장에 다가가서 섰을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탄식이 나왔다. 모든 책들이 랩핑이 되어 있었다.

누구도 열어보지 못하게... 책이라기보다는 상품으로... 그 넓은 책장... 아니 진열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그럼.. 책은 어떻게 골라야 하지...?" 새로운 문명에 노출된 미개인 인듯 난 목적을 찾지 못하고 여러 책장에서 버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


그냥 책을 보러 왔을 뿐인데... 난 패배자가 되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지?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전부 이런 기분을 느끼면 그게 과연 출판계에 도움이 될까? 좀 심한 거 아닌가? 씁쓸한 기분이 즐거워야 할 저녁시간 내내 가시지 않았다. 나 하나 이런 생각을 갖는다고 해서 그 서점이 바뀌진 않겠지만 세상의 중심이 물질 쪽으로 치우쳐지는 게 아닌가 하는 속상함을 느끼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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